김경자의 探스러운 소비학
유럽 가정 에어컨 보급율 5% 이내
전기요금 비싸고, 규제 심하지만
환경과 문화 존중하는 자발적 선택

유럽에서 에어컨을 보유한 가정은 5% 내외다. 일찌감치 80%를 넘긴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믿을 수 없는 숫자다. 그렇다고 유럽 국가들을 가난하다고 볼 수 있는가. 아니다. 그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는 대신 환경과 문화를 지키는 쪽을 택한 거다. 어딜 가나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누리는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유럽에는 에어컨 없는 곳이 많다.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는 그들의 선택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럽에는 에어컨 없는 곳이 많다.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는 그들의 선택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여름, 방학을 이용해 유럽에 다녀왔다. 여행이 주목적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유럽의 소비자와 소비시장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약 한달 동안 필자는 자동차 한대를 렌트해 유럽의 소도시 위주로 돌아다녔다. 현대적인 시장은 물론 편의점, 슈퍼마켓, 로컬시장을 탐험가처럼 구석구석 탐색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음식이나 생필품 가격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물가의 대리지표로 쓰이는 빅맥지수(Big Mac index·맥도날드의 빅맥을 각국의 환율로 환산한 수치)로 물가를 가늠해 봐도 소시민들이 먹고사는데 드는 비용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 외의 영역에서도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유럽 선진국의 일상은 기대했던 것만큼 풍요롭지도, 편리해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부터 열거해보자면 이렇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 돈을 내야 하고, 웬만한 도시에서는 주차하는 것도 매우 불편했다. 식당에선 물 한모금마저 다 돈인데, 꽤 비쌌다. 이뿐만이 아니다. 호텔이나 식당에서 대부분 와이파이(Wi-Fi)를 제공하지만, 속도가 느리거나 강도가 약해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장 황당했던 건 냉방시설이다. 한국이 유례없는 폭염으로 들끓는 동안, 유럽도 연일 30도 중반을 넘는 날씨가 이어졌다. 하지만 4성급 호텔에도 에어컨 없는 곳이 많았다. 객실이 견딜 수 없이 더워 호텔 측에 선풍기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잠시 후 선풍기를 들고 온 호텔직원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너무 더우면 창문을 열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대로 창문을 열어보니 웬걸, 방충망이 없었다. 나무로 울창한 사방에서 무당벌레가 날아 들어왔다.

이런 일들은 특정 국가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프랑스·독일·스위스 등에서 빈번하게 벌어졌다. 필자는 이해가 전혀 되질 않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국가들인데 이렇다고?” 버벅거리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유럽에 살았던 지인들에게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물었다. 잠시 후, 그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나는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설명은 이랬다. 여름에 평균 기온이 아주 높은 일부 남부 유럽지역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도 에어컨을 보유한 가구는 5% 안팎이다. 과거엔 지금처럼 무덥지 않았다는 게 일차적인 이유였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 전기요금이 비싸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2배가량 전기요금이 비싸다. 냉방요금이 난방요금보다 더 비싸다는 특징도 있다.[※참고: OECD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OECD 가입 38개국 중 우리나라보다 전기요금(가정용)이 싼 국가는 헝가리·튀르키예·멕시코뿐이다(2023년 8월 기준).] 

유럽의 건축양식도 에어컨을 구경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유럽의 건물들은 대부분 오래전 돌이나 두꺼운 벽돌로 지었다. 에어컨을 설치하기 힘든 환경이다. 뜨거운 열을 내뿜고,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실외기를 주택 외부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도 있다. 

이제 우리의 환경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마시는 물은 품질이 좋은 데다 값도 무척 싸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공짜다. 화장실은 또 어떤가. 공짜이면서도 깨끗하다. 무선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팡팡 터지는 와이파이를 받아 가족들에게 무사귀국을 알리면서 이구동성으로 “역시 한국이 최고야”를 외쳤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과 물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2019년 기준)은 1만878㎾h로, 독일(6606㎾h), 프랑스(7043㎾h), 일본(7935㎾h) 등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사용량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사용량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사진=뉴시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는 전기며 물을 마음껏 쓰면서 ‘우리나라 최고’를 외치는데, 프랑스·독일·네덜란드인들은 어떨까. 그들도 자기 나라가 가장 살기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맥줏값과 비슷한 비용을 지불해서 물을 사먹어야 하고, 화장실 갈 땐 동전이 필요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마저 그늘을 찾아 앉아야 하지만 사회와 환경을 배려하고 보존한다는 면에선 뿌듯하지 않을까. 

그들의 일상이 불편한 건 결코 기술이나 자본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거다. 유럽의 부자 나라들이 뜨거웠던 지난여름을 에어컨도 없이 불편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보고 오니 그동안 익숙하게 소비하고 향유해온 풍요로운 일상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됐다.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
kimkj@catholic.ac.kr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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