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금융사건해결사
비상장주식 사기사건 別傳 2편
계좌지급정지 악용 사례
증가하는 ‘통장협박’ 사기
보이스피싱 범죄 줄었지만
계좌지급정지 요청은 늘어
법까지 악용하는 사기꾼들
계좌지급정지 확대 막나
관련 법안 국회에서 ‘낮잠’

계좌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피해자는 ‘보이스피싱’에 국한한다. 비상장주식 등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계좌지급정지를 요청했다가 되레 사법처리를 당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계좌지급정지의 요건을 확대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관련 개정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데다, 계좌지급정지의 요건을 확대했다간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새어 나오고 있어서다. 그중 대표적인 게 ‘통장협박’ 사례다.

계좌지급정지 요청을 악용해 ‘통장협박’을 벌이는 보이스피싱이 증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계좌지급정지 요청을 악용해 ‘통장협박’을 벌이는 보이스피싱이 증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암호 같은 ‘HE942’란 이름이 자영업자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최명준(가명·35)씨가 겪은 일을 쫓아가보자. 남성 의류를 판매하는 명준씨는 다른 사업자들처럼 ‘계좌 이체’로 결제액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러던 지난 9월 명준씨는 자신의 통장에 ‘HE942’란 이름으로 10만원이 들어온 걸 확인했다. “왜 고객 이름이 없지?” 명준씨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그는 이틀 뒤 은행으로부터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명준씨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돼 지급정지했습니다.” 명준씨는 “무슨 말이냐”며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보이스피싱 의심계좌로 신고가 들어온 이상 신청인이 계좌지급정지를 해지하지 않으면 은행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보이스피싱과 무관하다는 자료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이의가 받아들여지더라도 통장을 다시 사용하는 데 3개월가량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사업에 사용하는 통장이 묶인 명준씨로선 답답하기만 했다. 

바로 그때 HE942로부터 연락이 왔다. 텔레그램 아이디였던 HE942는 계좌지급정지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150만원을 요구했다. 이른바 ‘통장협박’을 당한 거였다. 당장 계좌를 이용해야 하는 명준씨는 사기꾼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통장협박범과 계좌지급정지를 신청한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지급정지를 풀기 위해 사기꾼에게 돈을 줘봤자 통장협박범과 지급정지를 신청한 사람이 다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묶인 계좌를 그대로 두기로 했죠.” 


통장협박은 보이스피싱 사기꾼이 자영업자 명의의 통장에 소액을 입금한 다음 보이스피싱으로 신고해 계좌를 묶은 후 ‘계좌지급정지’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범죄행위다. 

통장협박범이 피해자에게 소액의 돈을 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다른 사람의 통장을 해킹해 돈을 보내거나, 또다른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하여금 ‘통장협박’을 할 만한 대상에게 소액을 입금하도록 한다. 피해자의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중고거래 형태로 입금을 유도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이 황당한 범죄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윤창현 의원실(국민의힘)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4040억원이었던 통장협박 사기 피해금액은 지난해 5438억원으로 커졌다. 

문제는 이같은 통장협박이 “계좌지급정지 요건을 완화해 달라”는 사이버피싱 피해자의 요구를 무력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사이버피싱 피해자들의 요구대로 계좌지급정지 범위를 확대했다가, 자칫 통장협박과 같은 악용사례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계좌지급정지 문턱이 낮아지면 그만큼 사기꾼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여지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참고: 이 지점에서 우리가 1편에서 말했던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 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사기꾼의 통장을 묶을 수 있는 ‘계좌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사기꾼이 재화나 용역을 제공했다면, ‘계좌지급정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주식을 추천받거나 비상장주식을 받은 피해자들이 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통장협박’이 계좌지급정지 요건의 완화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이는 따져볼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면 ‘통장협박’은 예방할 수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일단 발의된 법이 있다. 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윤창현 의원은 지난 3월과 7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는데, 골자는 다음과 같다. “명의자가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면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제외한 금액은 지급정지 조치를 해지할 수 있도록 한다.” 

보이스피싱으로 신고한 금액만 지급정지를 유지하고 계좌는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관련법만 마련된다면 통장협박 탓에 계좌지급정지를 당한 명의자는 통장 전체가 묶이는 걸 피할 수 있다. 

경찰의 수사단계에서도 통장협박과 보이스피싱은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계좌지급정지를 요청한 후 3일 이내에 경찰서에서 발급한 피해신고확인서·신분증 사본·피해구제신청서 등을 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허위 신고자라면 애써 경찰서를 찾아갈 이유가 없다. 제3자의 통장을 해킹하거나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입금을 유도해 계좌지급정지가 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급 정지된 계좌의 자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살펴보면, 보이스피싱에 사용한 계좌인지 아닌지는 얼마든지 구분할 수 있다. 

‘통장협박’을 막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통장협박’을 막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정미 사이버 금융사기 피해복구 및 예방을 위한 시민모임 대표는 “계좌지급정지 대상을 확대하는 게 현재로선 순리다”면서 말을 이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서 제외하고 있는 재화와 용역의 공급을 최근 유행하는 사이버피싱에 일괄 적용하는 건 맞지 않는다. 사기꾼이 피해자에게 넘기는 비상장주식·가상화폐·급등주 정보 등은 재화나 용역의 공급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피해자를 철저하게 속이기 위해 사용하는 사기 수단에 불과하다. 게다가 통장협박 등의 부작용은 제도 개선으로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2~3개월씩 걸리는 계좌 명의자의 이의신청 처리기간을 단축하고, 발의된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통장협박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관련 개정법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관련법은 해당 상임위원회인 정무위를 넘지 못했다. 여야가 민생은 뒷전에 밀어둔 채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데다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개정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경찰에 기댈 수도 없다. 여전히 기계적인 수사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서다. 과연 계좌지급정지 대상은 확대될 수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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