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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스타트업 열전 2편
정지수 랜포랄 대표
한글에 꽃 매칭한 디자인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사계절 꽃 모티브로 한
사계화는 국내시장 겨냥
투 트랙 전략으로 세계 공략

# 외국인 친구에게 선물할 때,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는가. 단박에 떠오르는 게 있다면 좋겠지만, 대개는 몇번 고민을 한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는 건 그만큼 쉽지 않는 일이다.

# 정지수 랜포랄(34) 대표는 중국 유학시절 외국인 친구들에게 손수 그려 만든 엽서를 선물했다. 한국의 언어인 ‘한글’과 만국의 언어인 ‘꽃’을 결합해 건넨 그 선물에 친구들은 환호했다. 그렇게 한명 두명, 마음을 움직이던 그 한 장의 엽서는 이후 ‘훈민정화(花)’라는 브랜드로 꽃피웠다. 

# ‘훈민정화’를 들고 해외 전시회에 나갈 때마다 그는 현지인들에게 붙잡고 물었다. 그때마다 “한글의 형태가 무척 아름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 대표는 한글 제품의 시장성을 확인했고, 꽃과 만난 한글은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피고 있다. 

정지수 랜포랄 대표는 제품에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담아 세계 시장에 알리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정지수 랜포랄 대표는 제품에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담아 세계 시장에 알리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해외여행을 하면 그곳에서의 경험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기념품을 사오곤 한다. 이 기념품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기도 하지만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기념품을 그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 상품으로 인식하곤 한다. 가령,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인형 안에서 인형이 계속 나오는 ‘마트료시카(Matryoshka)’를 사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무엇을 사갈까. 각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주로 화장품·김·커피믹스 등을 사간다. 누군가는 “화장품·김·커피믹스가 과연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알려주는 대표 상품일까”란 질문을 던지면서 고개를 갸웃할 거다.

정지수 랜포랄(Lanforal) 대표 역시 그랬다. “화장품·김·커피믹스가 우리나라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것보다 좀 더 한국적인 선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고민 끝에 그가 떠올린 건 뜻밖에도 ‘한글’이었다. 

✚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꽃으로 디자인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했어요.”

✚ 어떤 경험이었나요?
“중국 칭화대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베이징北京에서 직장생활을 했어요. 글로벌 건축회사(AECOM)였는데, 그곳에서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만났죠. 저는 유일한 한국인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어떨 땐 국가를 대표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들기도 했어요. 한국에 한번씩 다녀갈 때마다 선물을 고민했던 것도 그런 환경 때문이었어요.”

✚ 그래서 뭘 선물했나요?
“아무리 떠올려도 마땅한 게 없었어요. 한국 기념품이라고 사도 중국산이거나 베트남산이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하면 뭐가 떠오르느냐’고 물으면 ‘성형’ ‘화장품’이란 답이 돌아오곤 했어요. 우리도 역사가 있는 민족인데, 왜 이럴까 많이 답답하기만 했죠.”

✚ 그 답답한 마음으로 한글을 모티브로 삼은 제품을 만드셨군요.
“처음부터 사업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중국에 몇년 있었는데, 거기서 생활하다 보니 중국인들은 그게 무엇이든 ‘원래는 다 우리 것이었어’라고 우기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당시 문화 상품으로 곤룡포가 꽤 인기였는데, 그걸 보고도 ‘우리 것’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치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유일하게 반박을 못한 게 한글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한글을  소재로 한 상품이 무조건 많아져야 한다’ ‘언젠가 한글을 모티브로 한 제품을 만들어 봐야겠다’ 정도만 생각했죠.”

✚ 사업은 언제부터 계획하신 거죠?
“당시 회사에서 친하게 지낸 외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꽃을 무척 좋아했어요. 제가 성인이 된 후에 유학을 간 터라 언어가 유창하지 않았거든요. 중국으로 공부하러 가서 중국어는 열심히 배웠지만, 영어는 솔직히 좀 서툴렀어요.”

✚ 소통이 쉽지 않으셨군요.
“그런데 꽃이 소통의 매개체가 되더라고요. 꽃은 만국의 언어라고 하잖아요. 꽃마다 꽃말과 스토리도 있고요. 마음을 표현하는 데 꽃만큼 적합한 게 없다고 생각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한글’과 ‘꽃’이라는 막연한 주제만 갖고 있었고, 이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각 자음과 모음으로 시작하는 꽃과 매칭을 해서 작업에 들어갔죠.”


✚ 예를 들자면요?
“ㄱ(기역)은 개나리, ㄴ(니은)은 나팔꽃, ㅏ(아)는 작약…, 이런 식으로 자음과 모음마다 꽃을 정했습니다.”

✚ 작업이 만만치 않았겠네요.
“한글 자음과 모음을 꽃으로 디자인하는 작업은 어렵다기보다는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모두 수채화 작업을 통해 디자인했죠. 다만, 그 작업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판매할 제품을 만들고, 수익을 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훈민정화는 한글에 꽃을 매칭한 브랜드다.[사진=랜포랄 제공]
훈민정화는 한글에 꽃을 매칭한 브랜드다.[사진=랜포랄 제공]

✚ 첫 제품은 무엇이었나요?
“친구들에게 선물할 엽서를 만들다가 ‘혹시 구매할 수 있냐’는 문의를 제법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둘 생활용품을 만들어봤죠.”

✚ 그러다 어떻게 창업을 하셨나요?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잠시 쉬는 기간이 있었어요. 그때 소소하게 외주 작업을 받아서 했는데, 의뢰한 회사에서 비용처리를 하려면 사업자번호가 필요하다더라고요. 그래서 준비를 하다가 이왕 하는 거라면 정부의 창업지원제도를 활용해보자 했던 게 사업의 첫걸음입니다.”

✚ 창업지원제도를 활용하셨군요.
“네,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2019년에 랜포랄을 창업했습니다. 계획한 일은 아니었지만 창업하자마자 좋은 일들이 연이어 생겼습니다.”

정지수 대표는 2019년 ‘모두를 위한 디자인 언어(Language for all)’라는 의미를 담아 랜포랄(Lanforal)을 창업했다. 친구를 위해 선물을 만들던 경험을 살려 처음 제품화한 건 여권케이스였다. 이름 속 한글 자음을 꽃으로 디자인해 맞춤 제작하는 제품이었는데, 2019년 10월 9일부터 27일까지 와디즈몰에서 펀딩을 진행해 목표액의 1322%를 달성했다. 그가 말한 ‘좋은 일’은 바로 여기서 출발했다.

✚ 좋은 일이라면?
“와디즈펀딩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뒤, 처음 출시한 여권케이스 매출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어요. 유명 화장품 회사의 연락도 받았고요.”

✚ 무슨 제안이 있었나요?
“그 회사에서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와 컬래버하자는 제안이었어요. 전국 오프라인 매장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도 수출할 거란 계획까지 얘기가 됐어요. 사실상 로열티 계약이었죠.”

✚ 창업 첫해였는데, 굉장한 성과 아닌가요?
“잘됐다면 그랬겠죠.”

✚ 왜요? 계약이 불발됐나요?
“얘기가 오가던 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어요. 아시다시피 화장품 업계가 깊은 수렁에 빠졌고, 우리가 얘기 나누던 장밋빛 미래는 없던 일이 됐죠.”

✚ 많이 아쉬웠겠어요.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기대가 컸는데 모든 게 멈춰버렸으니까요.”

✚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사실 그때 복직 제안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원래 있던 베이징지사뿐만 아니라 홍콩에서도 제안이 왔어요.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텐데요.
“2년 동안은 기업 로고, 패키지, 브랜딩 작업 등을 맡아서 했습니다. 그걸로 버텼죠. 회사엔 위기였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 또 다른 기회라면?
“그사이에 K-컬처, K-콘텐츠가 굉장히 흥행했어요. 그 시장을 겨냥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한글 콘텐츠를 밀고 나가야겠다는 확신이 점점 강하게 들었습니다.”

정지수 대표는 최근 해외 전시회에서 K-콘텐츠의 높은 인기를 실감했다.[사진=랜포랄 제공]
정지수 대표는 최근 해외 전시회에서 K-콘텐츠의 높은 인기를 실감했다.[사진=랜포랄 제공]

✚ 현재 랜포랄에선 ‘훈민정화’와 ‘사계:화’라는 두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듯해요.
“‘훈민정화(花)’는 한글을 꽃으로 디자인하는 브랜드입니다. ‘한글로 세계평화; 소중한 마음을 한글에 담아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관광문화상품(기념품)을 비롯해 문구, 패션잡화, 인테리어 제품 등 다양합니다. 교육용 제품도 있고요.” 

✚ 교육용이라면 어떤 것들이죠?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위한 색칠놀이가 있고요. DIY 키링 세트도 있답니다.”


✚ ‘훈민정화’가 한글을 모티브로 삼은 브랜드라면 ‘사계:화’는요? 
“‘사계:화(花)’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나리부터 겨울의 끝을 함께하는 동백까지 한국의 사계절 사이사이에 피는 꽃을 소재로 만드는 생활용품 브랜드입니다. 휴대전화 케이스, 유리컵 등의 제품이 있고요. ‘이 계절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당신에게 선물합니다’란 슬로건을 갖고 있습니다.”

✚ ‘사계:화’의 탄생 배경도 궁금합니다.
“‘사계:화’는 사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나온 브랜드입니다.”

✚ 무슨 의미인가요?
“창업 후 바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잖아요. 저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꽃을 보면 위안이 되더라고요. 꽃을 키우는 어머님들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할까요. 그림 그리는 게 취미이기도 해서 그럴 때면 꽃을 그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죠.”

✚ 그걸 제품으로 만든 건가요?
“처음 만든 ‘사계:화’ 제품이 동백을 모티브로 한 제품이었습니다. 동백은 매서운 추운 겨울에 피는 꽃입니다. 그 의미가 제게 크게 다가왔어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던 이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꽃이라고 생각해 첫번째로 동백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 ‘훈민정화’와 ‘사계:화’는 타깃 고객층이 다른가요?
“그렇습니다. 고객 분석을 해보면 외국인과 내국인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확실히 달라요. 외국인들에겐 ‘훈민정화’ 제품이 더 인기지만, 국내 시장에선 ‘사계:화’ 매출이 훨씬 많습니다.”

✚ 회사 차원에서 보면, 투 트랙 전략이 되는 셈이군요.
“‘훈민정화’가 랜포랄의 정체성에 더 가깝지만, 국내 시장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제품을 개발할 때도 고민을 더 합니다. 기호가 워낙 달라서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아직까지도 조금 어려워요.”

✚ 제품은 몇 가지나 있나요?
“‘훈민정화’와 ‘사계:화’ 합쳐서 현재 50여종의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N서울타워나 롯데백화점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에 주로 입점해있어요. 올해에는 국립한글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숍에 입점하는 성과도 거뒀습니다.”

✚ 출시 예정인 추가 제품도 있나요?
“저는 CS(Customer Service)를 직접 합니다. 리뷰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걸 즐기죠. 고객들 의견을 제품 개발할 때 반영하기도 하고요. 교육용 제품을 만든 것도 사업 초기에 몇몇 국어 선생님께서 우리 제품을 구매하신 게 계기가 됐어요. 그때 제가 ‘이 제품을 어디에 어떻게 쓰실 건지’ ‘더 필요하신 건 없는지’ 귀찮게 여쭤봤고, 그걸 토대로 교육용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외국인 고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제품을 왜 좋아하는지, 왜 구매를 하는지 꼭 물어봅니다. 앞으로도 그런 과정들을 통해 제품을 개발해나갈 예정입니다.”

✚ 랜포랄의 목표는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인가요?
“비슷합니다. 한국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무엇보다 한글 하면 ‘훈민정화’란 브랜드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무산됐던 기업 컬래버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고요.”

✚ 다시 랜포랄에 좋은 기회가 되겠네요.
“우리 제품과 랜포랄의 아이덴티티가 더 커지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품 중에 의류도 있는데, 랜포랄이 더 성장하면 글로벌 브랜드인 나이키와도 컬래버해보고 싶어요. 훈민정화로 ‘할 수 있다(Just Do It)’가 새겨진 티셔츠, 멋지지 않나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랜포랄의 꿈도 무한합니다. 그래서 지금이 무척 중요한 시기입니다.”

✚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야 하는 시기군요.
“지금껏 한글을 모티브로 이렇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운영해온 회사는 없었습니다. 한국에 없었으니까 해외에도 없겠죠. 랜포랄은 기존엔 없던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사명 같은 걸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해내면 후발주자도 등장하겠죠? 그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랜포랄의 경쟁력을 키워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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