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소셜기록제작소
2023 스타트업 열전 6편
권순배 티지이엔엠 대표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
롤투롤 공정의 핵심 기술
국내 최초 전용 시스템 개발
기술력 하나로 당찬 승부수

# 롤투롤(Roll To Roll) 공정을 알고 있는가. 두루마리 휴지처럼 말린 강판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롤투롤 공정은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 쓰인다. 우리가 입는 옷의 원단,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꼭 먹는 라면의 봉지, 하루종일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에 붙이는 보호필름을 만들 때도 롤투롤 공정을 거쳐야 한다. 

# 단순히 제품을 말아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롤투롤 공정에는 다양한 기계설비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제품을 말아주는 힘(장력·張力)을 컨트롤하는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은 가장 중요한 기술력 중 하나다. 

# 이 낯선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다. 권순배(48) 티지이엔엠 대표다. 더스쿠프 소셜기록제작소가 회사 홈페이지 하나 만들지 않고 오로지 ‘기술력’ 하나로 승부를 걸고 있는 그를 만났다. 2023 스타트업 열전 여섯번째 편이다.

권순배 티지이엔엠 대표는 롤투롤(Roll to Roll) 공정 전용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권순배 티지이엔엠 대표는 롤투롤(Roll to Roll) 공정 전용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1995년 고등학교 취업반이었던 한 청년이 공장으로 실습을 나갔다. 청년은 그곳에서 처음 접한 기계설비에 매료됐다. 커다란 크기에 굉음을 내면서 돌아가는 기계였지만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게 흥미로웠다. 군대를 다녀온 후 뒤늦게 대학에 진학할 만큼 기계설비의 매력에 빠졌다. 

그렇게 기계설비 산업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은 26년이 흐른 2021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일한 경험과 기술력을 앞세워 험난한 창업시장에 뛰어들었다. 장력 제어 인버터(Inverter·일종의 변환장치) 시스템을 개발 중인 권순배 티지이엔엠 대표의 이야기다.

권 대표의 무기는 화려한 이력도, 현란한 언변도 아니다. 한가지 분야를 끝까지 파고드는 끈기와 노력이다. 홍보가 생명인 요즘 그 흔한 회사 홈페이지도 없지만, 권 대표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저 “기술력이 있으면 알아봐 주는 곳은 생기게 마련”이라고 덤덤하게 말할 뿐이다.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 분야 선두자리를 노리는 티지이엔엠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보자. 

✚ 티지이엔엠은 어떤 회사인가요.
“우리 회사의 정체성은 이엔엠(E&M)에 담겨 있어요. 이엔엠은 일렉트로닉 앤드 머신(Electronic & Machine)의 약자예요. 제조업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기기계를 생산하는 게 주요 사업 분야죠.” 

✚ 쉽게 볼 수 있는 스타트업과는 성격이 조금 달라 보입니다.
“제조업 기반이어서 낯설 수 있어요. 기계설비를 만들 때 필요한 핵심 부품을 개발·생산하는 업체이니까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 주력 제품은 무엇인가요.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입니다.”

✚ 기계설비 분야를 모르는 사람에겐 조금 어렵게 느껴집니다. 
“제철소에서 휴지처럼 말아놓은 강판 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컨베이어 벨트처럼 생긴 기계설비 위를 지나가는 강판을 둥글게 말아주는 기계설비를 롤투롤(Roll To Roll)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이를 제어하는 기술이 장력 인버터예요.”

✚ 롤투롤 시스템에서 장력을 제어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그럼요. 장력은 양쪽 끝이 힘을 받아 팽팽함을 유지하는 정도를 의미해요. 이 장력을 적정하게 유지해야 제품이 잘 감기고, 불량도 적죠.”

✚ 롤투롤 시스템을 사용하는 제조업이 많이 있나요. 
“롤투롤 시스템은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 사용하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강판 롤은 대형 기계설비가 필요한 곳이죠. 작은 공장에서도 롤투롤 시스템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 어떤 곳이 있나요. 
“인쇄를 하는 대형 프린트기기도 롤투롤 시스템이 필요하죠. 원단 가공 공장을 비롯해 종이·실·비닐·테이프·필름 등 다양한 공장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2020년 코로나19 탓에 많이 사용했던 마스크를 만드는 공정에도 롤투롤 시스템은 필수였죠. 롤투롤 기계설비가 있는 곳이라면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어요.”

✚ 창업을 하기 전에도 기계설비 일을 하셨나요.
“네. 20대부터 엔지니어로 일을 했으니 20년이 넘었네요. 마지막 직장인 평택 반도체 공장에선 웨이퍼 저장 장치에 들어가는 컨트롤러를 담당했어요.”

✚ 기계설비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반에 있었어요. 현장 실습을 나가면서 처음 취업한 곳이 금형제품과 기계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였어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일을 하면서 기계설비와 설비를 가동하는 모터의 매력에 빠졌죠.”

✚ 그럼 현장에서 노하우를 쌓으신 건가요.
“아니에요. 그렇게 1년 정도 일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기계설비 분야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욕심이 생겼죠.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해 관련 기술을 공부했어요. 당시 절 가르치시던 교수님이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권유하셨고, 제어계측공학과로 편입해 학업을 이어갔죠. 이후 관련 기업에 취업해 엔지니어로 계속 일했어요.”

✚ 창업을 결정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사실 모터와 같은 기계설비 다루는 엔지니어 분야는 진입 장벽이 높아요. 기술·학력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죠. 모터 제어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일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창업시장에 뛰어들었어요.”

✚ 두려움은 없었나요. 
“네,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겁 없이 뛰어들었으니까요. 사실 솜씨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요.”

✚ 다시 제품 얘기로 돌아가 보죠.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을 개발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은 모터와 제어기술이 집약된 분야예요. 제가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하죠. 좋아하는 걸 개발하면 남들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티지이엔엠의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의 차별성은 무엇인가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기계설비의 특성을 알아야 해요. 흔히 공장에서 사용하는 기계설비는 일반적인 기계와는 달라요. 특정한 공정에 맞춰 만든 기계설비 제품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공정에 필요한 큰 틀을 갖추고, 여러 부품을 가져와서 필요한 기계설비를 만들어서 사용해요. 부품이 늘어날수록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거죠. 장력 제어 시스템도 기계설비와 비슷해요. 여기에 바로 차별성이 있어요.”

✚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세요.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도 하나의 제품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에요. ▲설비 시설을 돌아가게 만드는 모터, ▲장력을 제어하는 시스템, ▲제품이 지나가는 속도를 측정하는 센서 등 다양한 부품이 필요하죠. 문제는 이런 설비를 모두 갖추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티지이엔엠의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은 이런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어요. 롤투롤 공정 전용 부품이라고 할 수 있죠. 다양한 부품을 조합해서 쓰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저렴해요.” 

✚ 얼마나 저렴한가요.
“기존처럼 부품을 조합해 설비를 만들면 적어도 300만~400만원의 비용이 들어요. 기계를 제어하는 프로그램 비용은 별도로 필요하죠. 하지만 우리 회사가 1차로 개발 완료한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을 사용하면 비용을 많게는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요. 가격 경쟁력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듯해요.” 

비닐‧직물‧인쇄 등 롤투롤 공정이 필요한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사진=뉴시스] 
비닐‧직물‧인쇄 등 롤투롤 공정이 필요한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사진=뉴시스] 

✚ 기존엔 공장에 맞게 만들어야 했다면, 티지이엔엠의 제품은 ‘전용’이라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 시장에 롤투롤 ‘전용 제품’이 없나요?  
“네, 없습니다. 큰 공장에서 쓰는 대형 설비는 있지만 롤투롤 공정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력 제어 인버터 시스템은 없어요. 해외 제품 중에선 일본 기업의 미쓰비시에서 개발한 제품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남들이 공략하지 않는 시장을 노리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일종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거죠. 대기업엔 작은 시장이지만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엔 충분히 파고들 가치가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 1차 제품 개발은 끝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품 개발을 100% 끝내진 못했어요. 지난해 특허 신청까지 마쳤는데 지금은 개발이 잠시 멈춰있어요.”

✚ 왜 그런 건가요. 
“자금 문제예요. 2021년 창업을 하고 정부지원 사업인 예비창업패키지와 초기창업패키지를 통해 총 1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았어요. 2년 동안 제품을 개발하면서 지원받은 돈을 모두 썼어요. 자금이 필요해졌죠. 그래서 지금은 우선 돈을 벌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 어떤 제품을 만들고 있나요.
“농기계에 들어가는 인버터 제품을 OEM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으로 만들어 납품하고 있어요. 여기서 발생한 매출을 제품개발에 사용할 예정이에요.”

✚ 제품 개발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거의 끝났어요. 마지막으로 필요한 게 롤투롤 공정에서 제품이 말리거나 왜곡이 생기는 걸 막아주는 엣지 포지션 컨트롤(EPC ·Edge Position Control) 시스템이에요. 이 기술을 합치면 하나의 세트가 되는 거죠. 1년 정도 연구개발(R&D)에 매진하면 제품 개발은 끝날 것 같아요.” 

✚ 투자를 받으면 기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나요.
“그렇죠. 하지만 아직은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어요. 남의 돈으로 사업하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져요. 저는 기업을 빠르게 키우기보단 안정적으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빠르게 크면 놓치고 가는 게 있을까 싶어 두렵기도 하고요. 엔지니어의 고집이라고 할 수 있죠.”

✚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해요. 
“제가 노리는 내수 시장의 규모는 300억원이에요. 여기에서 1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인버터 제어기술을 계속 연구해 고용량 제품도 개발할 계획이에요. 인버터 제어기술은 규모가 커질수록 어려워지죠. 앞으로 2~3년 안에 제품 개발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 사명이 티지이엔엠인 이유가 궁금해요. 
“티지이엔엠에서 TG는 타이거(Tiger)에서 따왔어요. 창업을 준비하면서 자주 꿨던 꿈이 호랑이에게 물리는 거였어요. 사업이 잘 풀리거나 성공하는 길몽이라고 하더라고요. 호랑이의 기운을 받기 위해 TG를 붙였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좋아하는 일을 좇다가 창업 시장에 뛰어들었어요. 최근에는 협력업체에서 개발 일정을 물어볼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죠. 회사 홈페이지도 아직 없지만,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더 열심히 제품 개발에 나설 생각입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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