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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목적과 방법 다를 때➊
尹 정부 물가관리정책의 한계
“물가 잡겠다” 시장지배기업 관리
2021년 미국서 벌어진 논란 데자뷔

정부가 7개 품목의 가격을 집중 관리하고, 공매도를 6개월간 전면 금지했다. 그런데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대상이 대부분 반독점법상 시장지배적 지위의 기업들이다. 공매도는 세밀한 조율과 구조적 개편이 아닌 전면 금지라는 강수를 택해 주가 부양책을 의심케 한다. 경제정책의 목적과 방법이 일치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모순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봤다. 1편에선 물가 관리, 2편에선 공매도를 다룬다. 

라면 제조사들은 지난 7월 대표 제품 가격을 일제히 인하했다. [사진=뉴시스]
라면 제조사들은 지난 7월 대표 제품 가격을 일제히 인하했다. [사진=뉴시스]

목적이 같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을까. 적어도 경제정책에서 방법은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를 역임한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2004년 IMF 관료들 앞에서 멕시코 재무장관의 말을 인용해 신흥경제국 경제정책의 모순을 지적했다. 

“만약 우리가 시장경제를 그저 하나의 제도적인 틀로 취급하면, 정책들은 시장 경제가 정말 어때야 하는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지금 멕시코에서 시행되는 정책들은 시장경제를 기괴하게 희화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크루거 교수가 인용한 프란시스코 힐 디아스 멕시코 재무장관은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멕시코 통신회사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디아스 재무장관은 당시 비센테 폭스 대통령이 추진한 개혁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었다. 디아스는 취임 직후부터 시장경제를 주창하고, 탈세를 통한 부정부패 척결을 추진했다. 

그런데 멕시코 제도혁명당의 71년 장기 집권을 무너뜨린 비센테 폭스 정권도 6년 후 퇴임할 때는 ‘경제 실정’으로 비난받았다. 폭스 행정부는 매년 7%씩 성장하고, 새로운 일자리 130만개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실제론 국내총생산(GDP)이 연 0.9% 증가하는데 그쳤고,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물가 상승과 주식시장 신뢰를 관리하겠다며 두가지 경제정책을 제시했다. 그런데, 특정 부처의 태스크포스(TF)로 물가를 잡고, 공매도 금지로 주가 상승을 꾀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읽혀 논란이 일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6일 라면‧빵‧과자‧커피‧아이스크림‧설탕‧우유 7개 품목 가격을 TF를 꾸려서 집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2일 비상 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모든 부처가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즉시 가동하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이 깊다. 민생과 직결된 품목의 가격을 정부 부처를 동원해 잡겠다는 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2일 비상 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2일 비상 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언뜻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정책은 어떤 한계를 갖고 있을까. 먼저 정부가 TF를 통해 실현하려는 물가안정책부터 살펴보자. 농림축산식품부의 물가하락 TF가 관리한다는 품목 대부분은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기업들이 생산한다.

공정거래법 제6조는 “연간 매출액 또는 구매액이 40억원 이상인 사업자들 중에서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라면 시장 1위 농심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시장점유율이 55.7%다(닐슨코리아 조사). 설탕은 CJ가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2020년 기준). 아이스크림(빙과)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빙그레가 42.2%, 롯데제과가 40.7%를 차지하고 있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 제빵 시장은 SPC 계열사 5개의 시장점유율이 83.0%에 이른다.[※참고: SPC는 통계 누락으로 자사 점유율이 40%라고 주장한다.]

반독점법을 예외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우유 시장조차 2022년 기준으로 서울우유의 점유율이 42.0%, 빙그레 14.0%, 남양유업 13.0%, 매일유업 11.0% 등 4개 회사 점유율이 80.0%다.

이런 시장지배적 점유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가하락 TF가 독점기업을 압박해 물가를 안정화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독점’을 활용해 물가를 잡으려는 시도는 공정거래법의 원칙을 흔드는 행위다. 공정거래법 등 ‘반독점’의 취지는 경쟁을 유도해 신규 사업자의 진출을 유도하고, 가격 인하의 혜택을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간과한 채 정부가 불법적인 행위가 없었는데도 가격 하락을 유도하면 시장 경쟁 구도가 비틀어질 수 있다. 일례로 많은 기업은 이제 가격 책정에 수학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정부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공급가격 중에 어떤 것은 비싸고, 어떤 것은 싸다고 판단할 수 없다. 

이와 유사한 논란은 미국에서 먼저 있었다. 2021년 미 바이든 정부는 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서 농무부‧연방거래위원회(FTC) 등 반독점 기관에 의존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자 경제단체들이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등 논란이 일었다. 생각보다 논란이 커지자 미 정부는 이를 철회했다.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8%였다. 통계청은 지난 11월 2일 10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8%였다. 통계청은 지난 11월 2일 10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자료 | 통계청, 참고 | 전년 동월 대비]
[자료 | 통계청, 참고 | 전년 동월 대비]

정부가 물가 하락을 목표로 한다면 기준금리를 인상해 총수요를 줄이는 통화정책이나 추가 긴축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여파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올 7월 2.3%에서 8월 3.4%, 9월 3.7%, 10월 3.8%로 다시 뛰어올랐다. 

그런데 정부는 물가 하락이라는 목적에 맞는 방법인 긴축 정책 대신 농식품부의 TF를 꺼내 들었다. 기준금리를 더 올리는 긴축 통화정책도, 세율을 올리거나 정부지출을 더 줄여야 하는 긴축 재정정책도 쓰기 싫은데, 물가는 잡고 싶다는 얘기다. 이래서는 행정편의주의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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