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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빚 3분기 역대 최대로 증가
한은 금통위 10개월간 회의록 분석
은행 금리인하‧부동산 완화책 문제
7월 금통위 “가계대출 늘어난 건 韓‧日뿐”
10월 “기업부채 외환위기 수준 상회” 경고

올해 3분기 가계빚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올해 1월 시작한 부동산 연착륙 정책, 시중 금리 인하 유도 정책의 결과다.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등 긴축에 한창인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는 걸까.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통위의 올해 회의록을 토대로 긴축 효과가 실종된 이유와 그 영향을 알아봤다. 

올해 3분기 소비가 다시 큰 폭으로 위축됐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모습. [사진=뉴시스]
올해 3분기 소비가 다시 큰 폭으로 위축됐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모습. [사진=뉴시스]

■ 가계 빚의 명암=한국은행이 지난 21일 발표한 3분기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대출에 카드대출 등 판매신용을 합친 게 가계신용이다. 

우리나라도 올해 1분기엔 긴축 흐름에 동참했지만 가계빚은 되레 늘어났다. 가계신용 증감 추이를 보면, 올해 1분기 14조4000억원 감소했지만, 2분기에 8조2000억원 증가하더니, 3분기엔 14조3000억원으로 더 늘어났다. 이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2022년 4분기 1013조4000억원에서 2023년 1분기 1017조7000억원, 2분기 1031조8000억원, 3분기 1049조1000억원으로 급증한 결과다. 

금리인상기에 동반해야 하는 부채축소(디레버리징)가 실종된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부동산 연착륙 정책이 지나치게 완화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올해 1월 부동산 규제를 대거 완화하고, 50년 주담대나 특례보금자리론과 같은 정책금융상품을 출시했다. 이는 부동산 가격하락의 폭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서울 지역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을 오히려 반등시켰다. 

둘째, 은행들이 올해 2월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강도 높은 비난에 몸 사리기식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통화정책이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시장 원칙이 아닌 권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바람에 시중 금리는 일시적으로 기준금리보다 낮아졌고, 이는 다시 투심投心을 자극해 대출이 늘어났다.  

■ 금통위 10개월의 기록=그렇다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더스쿠프가 한은 금통위의 1~10월 의사록을 분석해 월별 주요 내용을 정리해봤다. 

올 1월 금통위에서 한 위원은 “최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조치가 주택경기의 과도한 침체를 막기 위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경기가 개선되거나 금리가 낮아지는 시점에 주택수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위원은 “최근 가계부채가 중‧고소득층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비 감소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월 금통위에서 한 위원은 “통화정책의 의도대로 시중 금리가 형성됐을까”란 의문을 제기하면서 가산금리를 구성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관찰할 것을 제안했다. 은행의 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정해지는데, 가산금리의 주요 요소는 디폴트 가능성인 리스크 프리미엄이다. 당시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조절해 대출금리를 낮췄다. 

4월에는 좀 더 노골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일부 위원은 “최근 시장금리가 정책금리보다 낮은 현상의 이면에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내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금통위는 5월에도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들이 금리를 낮추고,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을 도입한 결과 “가계대출이 증가로 전환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가계대출 금리가 하락하면서 기업의 이자 부담이 더 커졌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이 주담대 금리를 낮춰주고, 그 손해를 기업대출을 통해 만회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6월 금통위에서는 “2022년 3분기 이후 줄어들던 가계부채 규모가 올해 4월 들어 다시 늘어났다”는 언급이 나왔다. 7월에는 “전 세계적인 고금리 기간에 유일하게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하지 않은 나라가 우리나라와 일본”이라는 지적이 등장했다. 또 “규제 당국이 예전의 방식대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면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기 어려워 보인다”는 강한 메시지도 담겨있다. 

한 위원은 “서울 주택가격이 상승해 가계대출도 증가 전환했다”며 “과거 국내외 사례에 비춰볼 때 규제 완화와 금리 하락이 동시에 진행되면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대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8월에는 “현재 가계대출 증가에 정책금융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발언이 나왔다. 또 “가계·기업 등 민간부문 부채가 성장과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누증됐다”고 우려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0월 19일 금통위 의사록에는 “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 증가가 가계소비를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외환위기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는 경고가 등장했다. 

■ 악순환의 고리=한국은행은 지난 11월 20일 ‘BOK 경제연구’에 우리나라 가계부채와 소득불평등(김수현·황설웅)이란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은 “2004~2021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사용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분석한 결과 2018년 이후 신규 부채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었다”며 “고소득 가구가 주담대를 늘려 원리금 상환액 증가로 소비가 감소했고, 이는 소득불평등도를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월 19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월 19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등 주요국들에서 고소득층은 소비하려고 빚을 내지만, 우리나라 고소득층은 오히려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사치재 격인 사교육비·외식비 등 소비를 줄였다. 논문은 “우리나라는 현재 소비재원을 희생하면서까지 비금융자산(부동산)을 취득함으로써 미래소득 또는 항상소득을 증가시키고 차후 소득불평등가 증가하는 역의 인과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가계 빚이 늘어나면서 소비는 하락하고 있다. 소비는 수출동력이 사라진 현재 우리가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 중 하나다. 우리 소매판매(소비)는 올해 1·2분기에 각각 0.4%, 0.2% 감소에 그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통계청이 지난 20일 발표한 지역경제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 전국 소비는 1년 전보다 2.7%나 축소됐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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