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제조업 視리즈 9편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카페에 밀려나는 공장들
산업무형자산 허무한 퇴장
‘도심 속 공장’ 가치 따져봐야

# 도시재생과 함께 산업적 유산을 보존하자는 이야기는 수없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산업적 유산 중 하나인 산업무형자산은 갈 곳이 없다. 제조업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문래동 작은 공장이 한껏 치솟은 임대료와 개발바람에 휘청이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 물론 개발론자들은 문래동 작은 공장을 도심 외곽으로 밀어내면 ‘4차 산업거점’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게 작은 공장을 보존하는 가치보다 크다는 분석도 함께 내놓는다. 

# 하지만 ‘4차 산업’은 작은 공장 없이 돌아갈 수 없다. 문래동 작은 공장을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과 김현수 서울대BK연구소 연구원을 만나 문래동 작은 공장의 가치를 물어봤다.

문래동의 생태계는 산업무형자산 그 자체다.[사진=천막사진관]
문래동의 생태계는 산업무형자산 그 자체다.[사진=천막사진관]

이곳의 생태계는 ‘분업’이 특징이다. 작은 공장에서 생산한 각기 다른 부품들은 생산 과정에 따라 이 공장에서 저 공장으로 옮겨간다. 각 과정에 해당하는 작은 공장은 그 공정에서만은 전문가다. 제아무리 공장 규모가 크더라도 대응하기 어려운 일을 작은 공장들이 해내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문래동의 작은 공장은 요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음식점ㆍ커피전문점 등이 줄줄이 둥지를 틀면서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탓이다. 임대료 때문만은 아니다.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낡은 공장을 밀어버리는 게 낫다’는 개발론도 작은 공장들의 이전을 부추기는 요소다. 

문래동 작은 공장은 그렇게 가치가 없는 걸까. 만약 떠나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논의를 해야 할까.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과 김현수 서울대BK연구소 연구원은 각각 ‘젠트리피케이션’과 ‘산업무형자산’이라는 두 시선으로 문래동을 바라봤다. 두 전문가의 인터뷰는 따로 진행됐지만 독자 편의를 위해 한 기사에 담았다.

✚ 문래동 작은 공장은 이제 ‘떠나야 할’ 운명을 맞은 듯합니다. 주변에 카페음식점 등이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을 멈출 수 있을까요?
구본기 소장(이하 구 소장) : “몹시 어렵습니다. 2010년대 후반 청계천 세운상가 일대에 카페나 식당이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문래동도 그때 이미 비슷한 상황이었고요. 한번 오르기 시작한 임대료를 다시 억누르는 건 불가능합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요.”

✚ 그 방법이란 게 뭔가요? 
구 소장 :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보세요. 원래 5년이었는데 이게 10년으로 늘어났습니다. 만약 더 늘어난다면? 그만큼 또 보호를 받겠죠. 이렇게 법망을 개선하면 시기를 늦출 수는 있습니다.” 

✚ 그저 ‘늦추는 건’ 미봉책 아닐까요?
구 소장 : “민간의 임대료는 건물주가 정합니다. 그래서 한번 오른 임대료는 다시 내려갈 수 없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이 한번 발동하면 질기게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김현수 연구원께선 문래동 작은 공장의 이전 이슈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현수 연구원(이하 김 연구원) : “우리 사회는 산업무형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요.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을지로 재개발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을지로에 있던 크고 작은 공장, 문래동에 둥지를 틀고 있는 작은 공장을 산업무형자산으로 보질 못하니까 그 땅을 ‘부동산 가치’로만 판단하는 겁니다.” 

✚ 산업무형자산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김 연구원 : “우리는 흔히 무형자산을 전통예술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술자의 노하우와 경험도 ‘무형자산’의 한 종류입니다. 이를 학술적 용어론 ‘산업무형자산’이라고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전통예술과 마찬가지로 산업무형자산도 보존해야 마땅합니다. 문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산업무형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 문래동 작은 공장 같은 산업무형자산을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 소장 : “행정이 개입해야 합니다. 문래동 작은 공장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나 개발바람에 흔들릴 소지가 있다면, 행정이 나서 막아줘야 하죠.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프랑스 파리의 어떤 거리는 ‘특정 산업’만 들어오게 만들었어요. 카페나 음식점이 진입할 수 없는 상권도 있죠.”

✚ 이제 관점을 ‘문래동 작은 공장’이 떠난 이후로 돌려볼까요? 영등포구는 작은 공장들을 이전시킨 뒤 그 자리에 ‘4차 산업거점’을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할까요?
김 연구원 :  “전 어렵다고 봅니다. 사람들의 착각 때문입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 연구원 : “사람들은 흔히 ‘4차 산업’이라고 하면 지식을 떠올려요. 소음도 발생하지 않는 ‘깨끗한’ 산업이라고 믿습니다. 전통의 제조업과 4차 산업을 완전히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는 거죠.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김 연구원 :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봇 등 4차 산업의 밑바탕엔 ‘전통적 제조업’이 깔려 있습니다. IoT나 AI 등 4차 산업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필연적으로 ‘시제품’이 필요하고, 이런 시제품을 만드는 곳은 전통적 제조업체죠. 4차 산업과 전통적 제조업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 4차 산업이 전통적 제조업과 연계돼 있다는 거군요. 
김 연구원 : “그렇습니다. 4차 산업도 일종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결과를 내려면 과정이 필요하죠. 작은 공장들은 그 과정에 해당하는 일을 합니다. 결과가 나오려면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겪어야 합니다. 시제품을 만들고 필요한 부품을 다시 가공하는 일은 ‘도심형 제조업’처럼 유연한 생태계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사실 일본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1980년대 오타구도 마을공장들을 도심 밖으로 밀어내려다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죠. 지금은 마을공장이 오타구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 연구원 : “일본의 지자체는 조례를 만드는 관官, 공장주인 민간, 시민, 그리고 교육을 책임지는 대학교가 한데 섞여서 일종의 ‘거버넌스’를 만들었습니다. 그 ‘거버넌스’를 통해 마을공장을 지키는 해법을 찾았죠. 우리나라 역시 생각을 모아야 무형적 가치가 있는 작은 공장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구 소장 : “옳은 말입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계획을 짤 때부터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 결국 한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야 작은 공장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거군요. 
김 연구원  : “그런 자리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이벤트에 그쳐서 문제였죠.”
구 소장 : “테이블을 만들더라도 기존 방식을 답습하면 안 됩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작은 공장 사람들의 ‘삶’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거기엔 사장도 있지만, 노동자, 그리고 가족이 숨쉬고 있으니까요.”

✚ 공장이 옮기면 생활 터전도 함께 옮겨야 하니까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군요. 
구 소장 : “맞습니다. 공간은 사람과 별도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간과 사람을 떼놓고 생각해왔죠. 둘을 한 테이블에 놓고 정책을 짜야 효과적인 해법이 나올 겁니다.”

영등포구는 제조업의 뿌리인 문래동 작은 공장을 이전하고 4차 산업거점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사진 | 더스쿠프 포토]
영등포구는 제조업의 뿌리인 문래동 작은 공장을 이전하고 4차 산업거점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사진 | 더스쿠프 포토]

✚ 문래동 작은 공장은 결국 이전을 피하지 못할까요?
김 연구원 :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겁니다. 다만 큰 산업 생태계의 일환으로 문래동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등포구 문래동에 공장이 있지만 이건 영등포구만의 일도, 서울시만의 일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산업 밑단의 이야기입니다. 중앙부처까지 나서 이전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공장을 여태 흉물처럼 생각했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나 지자체는 공장을 부수고 높다란 빌딩을 새로 지으면 더 나을 것이란 밑그림을 그려댔다. 그렇게 청계천과 을지로에 있던 작은 공장의 명맥은 약해졌다. 

영등포구 문래동의 기계금속집적단지를 보전하는 일은 단순히 ‘문래동’만의 일은 아니다. 이건 ‘문래동’이 아니라 ‘작은 공장’, 결국 제조업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제조업의 실핏줄을 보전하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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