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아픔으로 남아있는 건 그때의 사건을 여전히 풀지 못해서다. 5.18광주민주화운동, 형제복지원 사건. 폭력적인 공권력이 개입한 이 사건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은 사과와 인정, 반성을 원했다. 또 누군가는 그 사건을 직접 기록하고 나섰다. 광주 독립서점 '소년의 서'는 그런 아픔이 서사처럼 흐르는 곳이다. 광주의 시간은 1980년에 멈춰 있습니다. KTX를 타고 송정역에 내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5·18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광주는 5월 18일이 되면 많은 가게가 문을 닫습니다. 그날 제사를 지
# 우리는 ‘딥보이스 보이스피싱의 덫’ 1편과 2편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딥보이스 보이스피싱’의 위험성을 알아봤습니다. 한 직장인은 AI로 만든 고2 막냇동생의 절규에 속아 넘어가 6000만원을 빼앗겼습니다. 해외의 어느 은행 지점장은 수백억원의 돈을 사기범의 계좌로 송금하기도 했죠. 이처럼 사기꾼들은 AI에 자녀, 동생, 지인, 직장 동료의 목소리를 학습시켜 사기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혹자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AI 기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딥보이스 보이스피싱은 흔한 일이 아니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지
1970년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도로는 2017년에 새 이름을 얻었다. 서울로7017이다. 차만 다니던 고가도로가 사람이 걷는 그렇게 ‘선형線型 공원’으로 변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이곳을 찾던 사람들은 반토막이 난 반면, “흉물이니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서울역 일대를 바꾸겠다”는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로7017의 가치는 이어질 수 있을까.서울역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을 보면 서울역 서쪽 만리ㆍ청파ㆍ서계동과 서울역 동쪽 숭례문을 잇는 ‘서울로7017’이 보입니다.
도심 한복판에 매일매일을 새롭게 기록하는 역사책이 서 있습니다. 국가등록문화재인 옛 백제병원에 만들어진 출판사 창비의 문화공간 ‘창비문화’입니다. 젊은 작가의 작업 공간을 재연한 방과 세월을 품은 ‘창작과비평’ 잡지들, 그리고 1920년대 옛 건물이 함께 있다는 건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경험을 선물합니다. 더스쿠프 Lab. 리터러시팀이 이곳에 가봤습니다.부산역 7번 출구로 나가 5분쯤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 이질적인 건축물을 나타납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이 건물은 옛 백제병원이라고 불립니다. 처음 세울 땐 5층 건물이었
국민의힘 계열(한나라당ㆍ새누리당ㆍ미래통합당) 정당이 2008년 18대 총선부터 2016년 20대 총선까지 빠뜨리지 않고 내놓은 부동산 공약이 있다. 바로 세입자를 위한 공약이다. 하지만 이런 세입자 정책은 21대 총선 공약에서는 그 색이 조금 바랬다. 신혼부부를 위한 완화된 전월세 임차보증금 정책 대출이 나왔지만 공공임대를 늘린다는 약속은 없었다.[※ 참고: 22대 4ㆍ10 총선에서 가장 어린 유권자는 2006년 4월 11일생이다. 의회 권력을 사실상 독점해온 두 거대 정당은 이들이 첫 선거권을 가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공약을 내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영화 ‘파이트 클럽’ 초반에 꽤 흥미로운 ‘갈등과 협상’ 장면을 배치한다. 생각과 이해관계, 상황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면 서로 부딪히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주인공인 ‘화자’도 영화 속에서 두번의 갈등 상황에 봉착하는데, 첫번째 갈등은 협상을 통해 무난하게 해결한다. 하지만 2번째 갈등은 해결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는다.# 갈등➊ = 주인공인 화자는 타인들의 극심한 고통을 보면서 자신의 고통을 시나마 잊고 숙면을 취하기 위해 타인들의 고통 ‘눈팅’에 나선다. ‘고환을 제거한 남자들의 모임’ ‘말
# 2023년 4월 인천 검단의 아파트 지하주차장(GS건설)이 무너졌다. 무량판 구조인 공공분양 현장이었다. 국토교통부는 LH의 무량판 구조 아파트를 전수조사했다. 벽식 구조 아파트는 검사 대상서 배제됐다. # 하지만 나중에서야 이 단지에서도 철근이 빠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동부건설이 시공하는 AA21 블록 현장이었다. 이 단지는 철거를 할지 보강공사를 할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진행이 더딜수록 피해를 보는 건 입주예정자들이다.지난 4월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던 아파트 현장. 지금은 ‘조용함’이 지배하고 있다. 8일 오전 인천 원당사거
2024년 3월 31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문을 닫는다. 예산이 부족해서도, 방문자가 적어서도 아니다. 임대 계약 종료로 ‘갈 곳이 없어서’란 납득 못할 이유 때문이다. 2027년 다시 개관한다곤 하지만 3년간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센터에 있는 3만~4만권의 만화책을 보관할 장소를 찾지 못한 것도 문제다. 서울시의 오락가락 정책도 논쟁의 도마에 올려야 할 이슈다.1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 1층에 있는 ‘만화의 집’은 초등학생 저학년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만화의 집’에는
인류세라는 것이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지질이나 생태계에 미친 시대를 이야기한다. 인류세의 지질은 인류의 흔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핵실험 이후의 방사능, 플라스틱, 닭뼈가 땅에 묻히면서 생겼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인류가 생겨난 이래의 흔적이 땅에 남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세다. 보통 인류세는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를 상징한다. 하지만 나는 인류세를 생각할 때마다 거대하고 오래된 역사책의 측면을 떠올린다.누구에게나 지층이 있다. 그것은 경험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다. 레코드가 테이프가 되고 MP3 기기가 스마트폰이 됐듯
“저는 설운도와 빅뱅, 르세라핌을 좋아합니다!” 아이돌 지망생이 소속사 면접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말하라고 했을 때 이렇게 답변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음악을 많이 듣지 않아 알고 있는 가수 이름을 모두 댔거나 음악 취향이 오락가락하거나 아예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15살 아니면 16살쯤 됐을까. 날 찾아온 학생은 베이지톤의 스웨터를 말끔하게 입고 있었다. 낯을 가리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자기소개를 했다.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어서 왔어요.” 웅얼거리듯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난 20년 전 혜화동을 생각했다. 나도 저 나이쯤
여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서울의 한 연립주택 단지로 이사를 했다. 1987년 준공했다는 이곳은 시간이 멈춰있다. 주택 단지를 지키는 경비실과 3층을 넘지 않는 낮은 건물들. 편의점이나 대기업 마켓 대신 금고를 열고 계산해주는 작은 슈퍼마켓이 있다. 15개동의 건물에 338세대가 모여 산다는 이곳은 서울에서 한발짝 떨어져 나와 시간을 비껴간 것 같았다.이곳에는 유난히 노인들과 초등학교를 아직 가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봄이 돼 날씨가 풀리자 노인들은 밖에 나와 빛을 쐬고 있었다. 높은 건물들이 주변에 없어 단지에는 언제나 볕이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원자잿값, 자본조달비 등 비용적 측면에서 찾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찾아온 고물가 국면을 ‘비용 인플레’라 일컫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엔 비용이 아닌 다른 변수가 작동한 결과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름 아닌 기업의 탐욕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는 거다.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 번들플레이션(Bundleflation)은 이를 잘 보여주는 신조어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의 덫’에 빠져들었다. 공급망 마비, 지정학적 위기, 넘치는 유동성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 1960.3.
2023년 국정감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동네북’이 됐다. 산업부 직원들이 피감기관인 지역난방공사의 법인카드를 흥청망청 썼기 때문이다. 난방공사가 일찌감치 이 사실을 파악하고도 묵인하면서 이들의 ‘법카 찬스’는 3년이나 이어졌다. 결국 감사원이 뒤늦게 비위를 발견했고 징계 요청을 했지만, 후속조치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환수 여부도 ‘깜깜이’다. 더스쿠프 視리즈 법카: 부당한 사용과 구멍 네번째 편이다. 공공기관의 법인카드 유용은 대표적인 ‘혈세 빼먹기’다. 매년 국정감사에선 단골처럼 오르는 비위 이슈이기도 하다. 경영진이나
# 분명 국민이 만들어준 돈인데, 얼마만큼 사용하는지 모른다. 2006년 이후 17년간 공식 집계한 적도 없다. 총규모를 모르니, 다른 정보가 투명할 리 없다. 불·편법으로 결제한 돈을 제대로 회수했는지, 나랏돈을 쌈짓돈 취급한 이들을 엄정하게 처벌했는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공공기관 법인카드의 ‘비뚤어진 자화상自畵像’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 답을 찾기 위해 더스쿠프가 視리즈 「법인카드: 부당 사용과 구멍」을 기획했다. 공공기관 사람들이 법인카드를 불·편법적으로 사용한 흔적을 탐사하고, 거기에 숨은 허점을
우리 앞 사물과 존재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늘 변하고, 점차 사라지며, 다시 형상화한다. 그러다가 쓰임이 필요 없는 순간이 오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듯 사라져버린다. 이를 불교에선 ‘일체만물이 공하다’고 표현한다.이렇게 영원하지 않은 세상을 영원한 진리란 관념으로 시각화하는 여성 작가가 있다. 대지미술(earthworks) 작가인 지나 손이다. 갤러리 엑스투(Gallery X2)가 ‘疊疊: 첩첩’으로 명명한 그녀의 작품을 2024년 1월 7일까지 전시한다. 지나 손을 알아보기 전에 조금은 낯선 대지미술의 장르부터 살펴보자. 대
유행을 주도하는 패션 브랜드와 플래그십 스토어가 줄지어 있는 가로수길(서울 신사동)과 명동. 한국을 대표하는 두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 성장했지만, 그 때문에 팬데믹 국면에선 어려움을 겪었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사라진 지금, 두 상권의 모습은 극과 극이다. 명동은 활기를 되찾고 있는 반면, 가로수길은 그렇지 못하다. 왜일까. 서울 상권을 140개로 나눠보자. 이중 가장 매출이 잘 나오는 상권은 어딜까. 많은 이들이 명동을 꼽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인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의 명동월
심우장 가는 길 김유조마음 답답한 날은심우장 오르던 길을되새긴다저 기억의 꼬불꼬불 힘든 언덕길선종 깨달음의 경로처럼소를 찾아 떠나는 험로삶이 그렇듯 어찌 넓고 곧기만 하랴옛 총독부를 뒤로 하고 앉은팔작지붕 민도리 일자 집은만해 대선승(大禪僧)의 항일 독립의지의 표상일진데거기 닿는 비좁고 가파른 길을 예지한 데에는수행의 깊은 뜻 서려삼 년 기거의 마지막 흔적은오도송(悟道頌) 친필에 담아 벽에 걸고손수 심은 마당의 향나무도이제 백년을 헤아리는데모진 속세의 인연이런가일본 대사관이 저 아래 건너편에다시 따라와 앉아 있고부자 동네가 된 성북
# 한때는 패션의 성지였다.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뷰티와 패션의 영감을 얻는 거리이기도 했다. 최근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간판을 떼어낸 흔적이 너저분하게 남아 있는 공실 상가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가게에선 상인의 짙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상권이 죽어가는데도 건물주는 높은 임대료를 고집해 상황을 더 나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2023년 겨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얘기다. # 한때는 주택가였다. 가로수길의 어두운 뒷골목 취급을 받았다. 최근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골목에 자리 잡은 식당과 서점, 편집숍 등이 입소문을 타
「나의 작고 부드러운 세계」신아영 지음 | 책과이음 펴냄신아영 작가는 부산에서 독립문학잡지 비릿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마을 활동가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을 펴냈다. 그간의 작품들은 자신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이들과 소통하고 또 공동체를 기록하기 위해 썼다. 이번 책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내면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잊고 있던 작은 속삭임과 진실을 만나길 원한다. 그의 작고 여린 유년시의 문장과 사랑은 다른 이에게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여러 날」고성만 외 9명 지음 | 다인숲 펴냄광주의 로컬리티(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