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경제학 스터디카페
변종 인플레이션의 함의❸
스텔스플레이션과 번들플레이션
수수료 부과해 은밀히 가격 올려
실속형 요금제 폐지에 나서기도
묶음상품 개별가, 낱개보다 비싸
엔터사 ‘사운드체크’로 티켓값 인상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원자잿값, 자본조달비 등 비용적 측면에서 찾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찾아온 고물가 국면을 ‘비용 인플레’라 일컫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엔 비용이 아닌 다른 변수가 작동한 결과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름 아닌 기업의 탐욕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는 거다.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 번들플레이션(Bundleflation)은 이를 잘 보여주는 신조어다.

기업들이 소비자의 눈을 속이며 교묘하게 물가를 올리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업들이 소비자의 눈을 속이며 교묘하게 물가를 올리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의 덫’에 빠져들었다. 공급망 마비, 지정학적 위기, 넘치는 유동성 등이 물가상승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그래서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이 시기를 ‘비용 인상 인플레’ 국면이라고 규정했다. 원자재 가격, 자본 조달 비용,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이 확산했다는 거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날 무렵 또다른 경제학적 논리가 나왔다. ‘비용 인상 인플레’가 아니라 기업의 탐욕이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게 골자였다. 이사벨라 베버 미 매사츄세츠대 교수가 2021년 12월 가디언에 기고한 논문에서 주창했는데,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시장지배기업이 비용상승분 이상으로 제품가격을 끌어올려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를 사람들은 ‘탐욕 인플레’라고 규정했는데, 사실 기업의 탐욕이 물가를 끌어올린 흔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씩 살펴보자. 

■ 변종 인플레❶ 은밀한 상승 =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물가 상승을 뜻한다. 레이더가 탐지할 수 없는 스텔스 비행기에 통계엔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을 빗댄 신조어다. 

스텔스플레이션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건 순전히 기업들이다. 수수료를 더 부과하거나 공짜였던 서비스를 유료화하는 게 스텔스플레이션의 대표 사례다. 가령, 호텔·항공사에서 체크인 수수료를 따로 받거나 식당에서 테이크아웃을 하는 고객에게 포장 수수료를 청구하는 식이다.

국내에선 지난해 스타벅스코리아가 스텔스플레이션으로 눈총을 샀다. 국내에서 스벅이 공식적으로 제품가격을 인상한 건 2022년 1월이 마지막이다. 그런데 1년에 한번 출시하는 시즌메뉴나 한정판의 가격을 슬쩍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사실상 가격인상을 꾀했다.

예컨대, 스타벅스는 지난해 가을 특정기간에만 판매하는 시즌메뉴 ‘토피넛라떼’에 6300원의 가격을 매겼다. 2022년 가을엔 6100원이었는데, 소비자에게 공지하지 않은 채 200원을 인상한 셈이다. 

넷플릭스가 지난해 말 개편한 요금제도 스텔스플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현재 광고 없는 베이직 요금제(월 9500원)의 신규 가입을 받지 않고 있다. 이 요금제를 지난해 말 폐지하면서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는 줄었다.

광고가 붙는 ‘광고형 스탠다드(월 5500원)’를 비롯해 광고가 없는 ‘스탠다드(월 1만3500원)’와 ‘프리미엄(월 1만7000원)’ 등 3종뿐이다.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요금제(베이직)를 고르고 싶어도 이젠 그럴 수 없다.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이 오른 셈이나 다름없다. 

이런 스텔스플레이션이 우리나라만의 문제인 건 아니다. 미국에서도 ‘정크 수수료(junk fee)’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지 오래다. 제품을 구매할 때 결제화면에 도달할 때까지 업체들이 숨겨놓은 수수료, 인터넷 서비스를 해지할 때 부과되는 추가 수수료 등이 정크(쓸데 없는) 수수료인데, 지난해 2월 바이든 정부는 ‘정크 수수료’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 변종 인플레❷ 교묘한 상승 = 스텔스플레이션의 초점이 ‘은밀함’에 있다면 번들플레이션(Bundleflation)은 ‘교묘한 상승’을 일컫는다. 묶음상품(Bundl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번들플레이션은 지난해 11월 국내 식품업계가 묶음상품을 낱개상품보다 비싸게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두에 올랐다.

예를 들어보자. 농심이 네이버스토어에서 판매했던 신라면 컵라면 6개 묶음은 개당 817원이었는데, 12개 묶음의 개당 값은 1017원으로 더 비쌌다. CJ제일제당은 자체 온라인 스토어에서 소비자의 눈을 속였다. 당시 이 회사는 햇반 12개입 1만1100원, 18개입 1만8450원, 24개입 2만4900원으로 구성해 판매했다. 계산해 보면 각각 1개당 925원, 1025원, 1038원의 가격이었다. 더 많이 구매할수록 개당 가격이 교묘하게 비싸진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묶음’을 악용한 눈속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유통공간에서 단위가격 표시를 의무화하는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비자로선 온라인몰에서도 ‘그램(g) 당 가격’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이 조치를 순조롭게 이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정부가 ‘온라인 유통공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다.

가령, 쿠팡이나 대형마트 온라인몰은 ‘직매입 기반 온라인 쇼핑몰’이다. 이들은 제품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가격 표시제를 운영하는 게 쉽고, 실제로 이미 대부분 시행 중이다. 반면, 네이버쇼핑이나 티몬, 위메프와 같이 오픈마켓 방식의 플랫폼 사업자는 제품 판매를 중개만 한다. 플랫폼 사업자에 가격 표시 의무를 부여하고 책임지게 하는 건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정부가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가격 변동 정보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소비자에게 이런 정보가 투명하게 제공돼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각지대도 있다. 공정위의 이번 대책은 ‘유통채널’에 국한돼 있다. 문제는 엔터테인업계에서도 ‘번들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콘서트 사운드체크 입장권’이다. ‘사운드체크’를 구매한 팬은 리허설을 볼 수 있다. 미리 공연장에 들어가 아티스트가 음향 상태와 퍼포먼스를 점검하는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사운드체크 입장권을 별도로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앞 열의 ‘일반 티켓’에 묶어 VIP석으로 판매한다. 일반석보다 30%가량 비싸다. 사운드체크를 원하지 않아도 아티스트를 좀 더 가까이서 보길 원하는 팬으로선 ‘비싼 값’을 주고 VIP석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VIP사운드체크 입장권은 2022년 3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인 서울’ 공연에서 처음 도입했다. 지금은 대형 엔터사 소속 아티스트 대부분이 VIP 입장권을 ‘번들’로 팔고 있다.

K-팝 팬덤 관계자는 “말이 리허설이지 5~6곡을 20분 안팎에서 진행하는 게 전부”라면서 “굳이 보고 싶지 않은데도 팬 입장에선 선택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제품이나 티켓값을 올리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syvho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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