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2021년 강원도 골프장 사건
티샷 눈에 맞은 여성 시력 잃어
골프카트에 앉아있다가 날벼락
골프장 대표, 타구자 등 고소
홀 앞에 있던 카트 주차위치 논란
골프장, 사고 후 주차위치 변경해
경찰, 대표·타구자 등 기소의견 송치
검찰, 2년 만에 캐디만 기소해 논란
가장 약한 고리 캐디만 잘못 했을까

#  골프장의 구조는 위험해 보였다. 일행의 골프 실력도 뛰어나지 않았다. 두 변수는 결국 큰 사고를 유발했다. 일행이 친 공이 골프카트에 앉아있던 여성의 눈을 강타했고, 여성은 시력을 잃었다. 2021년 강원도 골프장에서 벌어진 사고는 이렇게 터졌다. 

# 피해자 여성은 타구자와 골프장 대표, 경기팀장, 캐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였다. 피해자의 의견을 받아들인 경찰은 네명 모두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달랐다. 2년 만인 지난해 10월 판단을 내린 검찰은 캐디를 뺀 나머지 사람을 무혐의 처분했다.

# 이를 두고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약한 고리인 캐디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 게 아니냐는 거다. 그날 골프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날의 사고에 펜을 집어넣었다. 

2021년 강원도 골프장에서 30대 여성이 골프공에 왼쪽 눈을 맞아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강원도 골프장에서 30대 여성이 골프공에 왼쪽 눈을 맞아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2009년 전남 담양의 한 골프장에서 50대 G씨가 골프카트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골프카트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 때 아스팔트 도로로 떨어진 G씨는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이 사건으로 골프카트를 운전한 캐디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주의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캐디는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켰다”며 “지병이 있던 G씨가 의식을 잃고 떨어진 탓이 컸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고 당시 골프카트의 덜컹거림이 심하지 않았고, G씨가 지병을 앓았다는 걸 재판부도 인정했지만 판결은 달라지지 않았다. 

# 2018년 경기도 골프장에서 남성 H씨가 ‘안구 파열’ 사고를 당했다. 자신이 친 골프공이 바위에 맞고 튕겨 나와 왼쪽 눈을 강타한 사고였다. H씨는 “캐디가 바위 앞에서 공을 치는 걸 말리지 않고, ‘바위를 넘겨서 치라’고 말했다”며 캐디와 골프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캐디가 바위 해저드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려주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캐디가 안전배려 의무를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가 밝힌 이유는 이렇다. “캐디는 아마추어 골퍼의 경기를 보조할 때는 더욱 적극적으로 경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알리거나 안전을 배려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골프공을 다른 장소로 옮겨서 치게끔 유도하거나 더욱 주의해서 칠 수 있도록 충분한 주의를 줬어야 했다.” 

골프 경기를 보조하는 ‘캐디’를 둘러싼 판결들이다. ‘캐디’의 역할은 경기를 보조하는 데 머물지만, 정작 사고가 터졌을 땐 ‘처벌’의 중심에 놓이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캐디는 ‘법적 사각지대’에 놓일 때가 많다.[※참고: 캐디는 택배기사·배달원·대리운전기사 등과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불린다.]

사례로 언급한 판결에서 보듯, 캐디는 골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1차 책임’을 질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온전히 캐디의 책임인지는 의문이다. 법적으로 약한 고리인 캐디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21년 강원도 F 골프장 사건이다. 그날의 사고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21년 10월 3일(일요일), 30대 여성 A씨는 강원도 소재 F 골프장을 찾았다. A씨를 포함한 4명이 라운드에 나섰고, 캐디 E씨가 경기를 보조했다. 하지만 즐거웠던 휴일 라운드가 악몽으로 변한 건 한순간이었다. 

사고는 4번홀에서 터졌다. 이 홀은 296야드(약 270m), 파4홀로 길진 않지만 초보자에겐 생각보다 까다로운 코스다. 언듈레이션(지형의 높낮이)이 심한 데다 티샷을 치는 것도 쉽지 않다. 티박스에서 정면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은 낭떠러지, 왼쪽은 산이기 때문이었다.

공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선 산이 있는 왼쪽으로 티샷을 날려야 한다. 골프장 홈페이지의 코스 소개에서도 ‘좌측으로 티샷을 하신 후…’라면서 공략법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건 골프카트를 주차하는 위치다. 4번 홀의 주차 위치는 공교롭게도 티박스 정면 왼쪽에 있었다. 카트 도로가 티박스 뒤가 아닌 앞으로 나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가 터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A씨 일행은 카트를 타고 4번홀에 도착했다. 캐디가 카트를 티박스 정면 왼쪽에 주차했고, 남자 일행 두명이 티샷을 치러 갔다. A씨는 다른 일행과 함께 골프카트에 앉아 있었다.  

남자 일행 중 한명인 B씨가 첫 티샷을 쳤지만 왼쪽으로 심하게 휘면서 OB(Out of Bounds·규정된 지역을 벗어나는 것)가 났다. 이후 캐디 E씨로부터 멀리건(티샷을 잘못 쳤을 때 벌타 없이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 받아 두번째 티샷을 했다. 공은 이번에도 왼쪽으로 향했고, 카트에 타고 있던 A씨의 눈을 강타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안구가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날벼락 같은 사고를 당한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티샷을 친 B씨와 골프장 대표 C씨, 경기팀장 D씨, 캐디 E씨 네명을 과실치상 및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4번홀 구조를 생각하면 소를 제기할 이유는 충분했다. 경찰 조사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네 사람을 모두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럼 A씨는 억울함을 풀고, 적정한 보상을 받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사고가 터진 지 2년이 훌쩍 흐른 지난해 10월 검찰은 캐디 E씨만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했다. 샷을 잘못 날린 B씨, 골프장 대표 C씨와 경기팀장 D씨는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사고의 책임을 캐디에게만 물었다는 건데, 이유가 뭘까. 

B씨의 무혐의 이유부터 보자. 검찰은 B씨가 캐디 E씨로부터 ‘멀리건’을 받아 티샷을 했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고 봤다. 티샷을 날린 행위보다 캐디의 지시를 중하게 판단한 셈이다. 더 쉽게 말하면, 캐디를 골퍼에게 지시를 내리는 감독이나 코치쯤으로 해석했다는 얘기다. 골프장에서 캐디의 역할이 ‘조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골프장 경기팀장 D씨의 무혐의 이유는 뭘까. 검찰은 D씨가 평소 사고 예방교육을 철저히 해왔다는 걸 근거로 삼았다. 아울러 사고와 경기팀장의 역할의 인과관계도 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역시 사고의 책임을 오로지 캐디에게 전가한 결과지만,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골프장 대표 C씨의 무혐의 이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많다. 검찰의 ‘불기소처분 통지서’에 적인 C씨의 무혐의 처분 사유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 골프장은 2005년 8월 ○○도시관리계획(체육시설: 골프장) 지형도면 승인고시에 의거해 전문가가 구조와 운영 설계를 했고, 관계기관의 승인을 득하고 준공했다. 이를 근거로 2006년 10월 체육시설업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그 시설물에 하자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사고가 터진 골프장이 15년 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체육시설로 등록됐기 때문에 골프장 D씨에겐 책임이 없다’는 거다. 

그럼 골프장엔 정말 책임이 없는 걸까. 여기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언급했듯 사고가 발생한 4번홀은 골프카트 주차 위치가 티박스 앞에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주차 위치를 티박스 뒤에 뒀다면, 사고는 터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점은 골프장도 잘 알고 있었다. 사고가 터진 후 골프장이 티박스 위치를 골프카트 도로 앞쪽으로 옮긴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골프장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지금까지 골프장이 각종 사고에서 책임을 피해온 것도 아니다. 
유사한 사고에서 골프장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사례는 적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2008년 K씨는 경기도 용인시의 한 골프장에서 남편이 멀리건을 받아 친 티샷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었다.

K씨는 사고의 책임을 물어 골프장과 캐디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사고의 책임이 공을 친 남편 35.0%, 골프장 30.0%, 아내 30.0%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안전상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골프장에도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➊ 사고 전 티박스 전방 좌측에 카트 주차 ➋ 사고 후 카트 도로 티박스 뒤로 이전 → 사고 난 홀 안정상 문제점 인지했다는 의미.[사진=더스쿠프 포토]
➊ 사고 전 티박스 전방 좌측에 카트 주차 ➋ 사고 후 카트 도로 티박스 뒤로 이전 → 사고 난 홀 안정상 문제점 인지했다는 의미.[사진=더스쿠프 포토]

A씨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항고를 제기했다. A씨의 소송을 맡은 김영미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명백하게 부당한 판단을 내린 사건”이라며 “타구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A씨가 억울함을 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검찰은 한번 처분을 내린 사건을 좀처럼 번복하지 않는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검찰 항고 사건의 재기수사명령(항고 인용) 비율은 8.3%에 불과했다. 항고 인용 비중이 가장 높았던 2018년에도 ‘10% 벽(9.7%)’을 넘지 못했다. 억울하게 다친 A씨는 억울함을 풀기 어렵고, 힘없는 캐디 E씨만 책임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과연 이 사건의 결론은 어디로 향할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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