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국토부 이상한 철산법 개정 명분
철도 업무 이원화 사고 키운다더니
대책은 철도시설 유지보수 독점 타파
현실성 없는 대안에 관련 논의 전무
국민 안전에 직결된 법개정 신중해야

2023년 12월 14일 국토교통부가 “철도안전 강화를 위해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이하 철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의 핵심은 한국철도공사가 독점하던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거다. 언뜻 보면 적절한 구조개혁인 것 같지만, 함정이 숨어 있다. 더스쿠프가 그 허점들을 짚어봤다. 

철산법과 철도안전의 문제는 이미 20여년 전 철도 업무가 이원화하면서 시작됐다.[사진=연합뉴스]
철산법과 철도안전의 문제는 이미 20여년 전 철도 업무가 이원화하면서 시작됐다.[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장관은 이 법에 따른 권한의 일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광역지자체장 등에) 위임하거나 (관계 행정기관과 국가철도공단ㆍ철도공사 등에) 위탁할 수 있다. 다만, 철도시설유지보수 시행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 현행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이하 철산법) 제38조의 내용이다. 

이 조항의 핵심은 ‘다른 업무들은 위임ㆍ위탁할 수 있어도 철도시설의 유지보수 업무만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맡겨야 한다’는 단서다. 철산법을 제정한 2003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존재해온 조항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가 2023년 12월 14일 “철도안전 강화를 위해 철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코레일의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 독점을 막고, 이를 경쟁체제로 돌리겠다는 거다.[※참고: 개정안은 2022년 12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물론 12월 19일 열린 국회 국토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 철산법은 상정되지 않았다. 교통소위가 다시 열리지 않는다면 철산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하지만 법 개정 여부와 무관하게 철산법의 내용을 바꾸려 했던 국토부의 절차에 허점이 너무 많았다는 건 곱씹어볼 문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먼저 철산법 개정안이 등장한 이유를 살펴보자. 국가(철도청)가 맡고 있던 철도 관련 업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론’에 휩싸였다. 사회 각계의 시민단체와 철도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민영화는 안 된다”고 반대하자 참여정부는 민영화 대신 공사화를 택했다. 참여정부는 2003년 철산법을 제정하고, ▲철도운영은 코레일, ▲철도시설의 건설ㆍ관리는 국가철도공단(옛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넘겼다.

이때 앞서 언급했던 철도시설 유지보수 관련 단서조항이 생겼다. ‘철도운영사가 유지보수를 해야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다’는 이유에서였다. 철도는 선로 외에도 신호와 차량ㆍ역 등이 연계된 네트워크 산업이기 때문이다. 당시 철도운영사는 코레일밖에 없었으니 코레일이 철도시설 유지보수를 맡는 건 당연했다. 

국토부는 ‘철도 업무 이원화’가 문제라면서 ‘철도시설 유지보수의 독점 페지’를 과제로 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토부는 ‘철도 업무 이원화’가 문제라면서 ‘철도시설 유지보수의 독점 페지’를 과제로 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런데 환경이 바뀌었다. 이제 철도운영사는 코레일만이 아니다.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SR, 진접선(서울 노원구 당고개역~경기 남양주 진접역 구간 4호선 연장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다양한 철도운영사가 생겼다. 앞서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는 운영사가 담당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으니, 철도시설 유지보수 독점 조항은 폐지하는 게 마땅해 보인다.

최근 몇년간 철도 관련 사고가 늘어난 게 유지보수 독점의 폐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일례로 코레일 탈선사고 발생 건수는 2019년 5건에서 2020년 2건으로 줄었다가 2021년 9건, 2022년 15건으로 늘었다. 올해도 지난 9월 말까지 집계된 것만 15건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철산법 개정의 필요성과 명분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철도 관련 사고의 원인과 대안이 잘못 연결돼 있다. 국토부는 사고 발생의 원인을 ‘철도시설 유지보수의 독점’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가 철산법 개정의 근거로 인용한 해외 컨설팅업체의 분석은 다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코레일과 국가철도공단이 공동 발주한 ‘철도안전체계 심층진단 및 개선방안’의 연구를 진행해 2023년 11월 분석 결과를 내놨는데, 국토부 측은 그 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지보수와 관제는 코레일로, 건설과 개량은 국가철도공단으로 위탁한 시설관리의 파편화가 철도사고의 근본적 원인이다. 업무의 일관성 부족, 시스템 적기 개선 지연, 사고 시 책임 공방 치중 등으로 즉각적 원인 해결이 곤란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철도시설 유지보수의 독점’이 아니라 ‘코레일과 국가철도공단의 업무 이원화’가 문제라고 짚은 거다. 20년 전의 결정이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건데, 국토부는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에서의 경쟁체제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으니 동문서답을 내놓은 셈이다.

둘째, 법 개정을 주장하는 이들이 철산법 단서조항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철도시설 유지보수 관련 단서조항은 단순히 철도운영사가 직접 철도시설 유지보수를 담당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생겨난 게 아니다.

언급한 것처럼 철산법은 철도청의 민영화에서 공사화로 구조개혁의 방향을 트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이에 따라 철도시설 유지보수 독점은 밀어붙이기식 민영화를 막는 장치이기도 했다.

“철도운영사가 많아지더라도 안전과 직결되는 철도시설 유지보수를 공공이 맡고 있으면 일방적인 민영화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는 거다. 국토부가 철산법을 개정하겠다고 하자, 철도노조가 곧바로 “민영화를 멈추라”고 반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철도운영사가 자신들이 맡고 있는 철도시설 유지보수까지 담당하면 그 자체로 ‘민영화 효과’가 나온다. 민간자본은 수익성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게 될 테고, 그러다보면 철도시설에 하자가 생기거나 철도시설 유지보수 비용을 요금으로 전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철도를 민영화한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 이미 나타난 폐해다. 

셋째, 현실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사실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는 지난 20여년간 코레일이 독점했다. 노하우도, 전문 인력도, 장비도, 네트워크도 코레일에 집중돼 있다. 유지보수 업무를 분할하고 싶다면 SR이나 서울교통공사 등이 코레일의 전문 인력들을 고용승계하고, 코레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경쟁체제 구축을 위한 장기 플랜을 짜지 않으면 각 운영사가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맡고 싶어도 맡을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단서조항 폐지부터 꺼내 드는 건 순서가 맞지 않다. 

넷째, 개정안 추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이다. 원래 법 개정은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게 마련인 만큼 의견을 청취해보는 게 순서다. 국토부도 ‘철산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보도자료에 이해관계자인 철도노조를 지속적으로 설득할 계획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철도노조 관계자는 “철산법 개정안을 추진하기 전이나 개정안 추진을 밝힌 후나, 국토부로부터 어떤 설명도 들은 적 없다”면서 “개정안 추진 소식도 뉴스를 통해 접했다”고 말했다. 

물론 철산법은 이번엔 상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또다시 공론의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가 보건ㆍ의료, 에너지 등 다양한 공공 분야에서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이런 과정을 두고 일부에선 ‘사실상 민영화’가 아니냐는 비평도 내놓는다. 철산법 역시 같은 맥락에 서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하다. 철산법 개정이 왜 필요한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무엇인지 등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법이 왜 생겼는지, 현실이 어떤지도 따져봐야 한다. 철산법이 국민의 삶과 안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신중해야 한다. 철산법 개정을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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