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안창남의 생각 21편
상속세 완화 논쟁 불거진 정치권
주가에 부정적 영향 미친단 건데
개정 논의 필요하지만 대안도 필요
부담 줄이면 재정 어디서 보충하나
사주 잘산다고 주가 오르지 않아
오너의 부는 국민 이익과는 무관
대안 없는 논의 포퓰리즘에 불과

때아닌 상속세 논란에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영향을 주는 상속세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서다.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법의 개정을 두고 의견이 오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상속세를 완화하거나 폐지할 경우’ 국가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도는 고려해야 한다. 그런 논의도 없이 선거를 앞두고 상속세 완화나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사주가 잘살면 정말 주가가 오를까. 한번 따져볼 문제다.[사진=뉴시스]
사주가 잘살면 정말 주가가 오를까. 한번 따져볼 문제다.[사진=뉴시스]

상속세는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세금보다 비장하다. “상속은 사망으로 인해 개시된다”란 민법(제997조) 조항처럼, 상속세는 사람의 호흡이 멎는 순간 그가 평생 애써 이룩한 재산이 ‘남의 차지’가 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장례식장 상속인들 가운데에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자기 몫을 계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죽은 자의 코를 솜으로 막고, 손과 발을 꽁꽁 묶고 관에 못질하며, 그것도 모자라 땅속 깊은 곳에 묻는 이유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한 체코 출신 소설작가 밀란 쿤데라의 지적은 이런 상속자의 속내를 쉽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 같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순간 그들이 공짜로 얻을 재산상속의 꿈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어렵사리 얻은 상속재산에 갑자기 국가가 끼어들어 일부를 세금으로 떼어간다고 하니 상속자들의 심사가 뒤틀릴 만도 하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간파한 일부 정치인과 세금 전문가들은 자주 상속세율을 인하하거나 아예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상속권은 국가권력이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과 전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용기 있고 정신이 올곧은 젊은이라면 부모 도움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어 남보다 잘사는 것이 보장되는 사회를 원할 것이다. 이들은 ‘부모의 재산은 부모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뜻에 따라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든지 상속세로 국가에 환원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이같은 태도는 ‘모든 인간은 동등한 인권을 부여받은 채로 태어나며 그들의 출발점이 비슷해야 한다’라는 영국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를 비롯한 자유주의(liberalism) 학파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상속세 제도는 재산 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라고 판단해 합헌 결정했다(96헌바72). 

윤석열 정부는 세수가 부족한데도 부자감세에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는 세수가 부족한데도 부자감세에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따지고 보면 재벌이나 부자들이 형성한 상속재산에는 다른 집 자식들이 엄동설한에 휴전선을 지켜낸 부분도 있고,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들이 선진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흘린 피와 땀도 존재한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이므로 상속세법의 개정을 통해 상속세를 낮추거나 아예 폐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판단의 기준점에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의 고려가 있어야 한다. 상속세 부담을 줄이려면 이를 어디서 보충할 것인가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 대안도 없이 선거를 앞두고 상속세 완화나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ㆍPopulism)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필자는 현행 상속세 과세체계는 유지하되,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을 참작해 피상속인이 실제 거주한 1주택에 부과하는 상속세 부담은 완화 또는 폐지해야 하고, 고액 상속세의 연부연납年賦延納 기간을 좀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연부연납은 납세의무자가 납세자금을 준비할 수 있도록 상속세 납부를 연기해주는 제도다. 상속세및증여세법은 상속세ㆍ증여세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납세지관할세무서장에 신청해 허가를 받아 연부연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지할 것은 ‘상속세’란 세목이 없는 국가라고 해서 상속재산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상속재산을 상속인의 소득으로 간주해 소득세로 과세한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인데 소득세 최고세율도 45%라서 상속세를 소득세로 과세한들 세 부담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정치권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증시의 최대 리스크는 남북간 긴장 등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치권의 타협 없는 정쟁으로 인식돼 있다. 

정치권과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는 ‘기업’ 친화적이어야 하지 ‘기업주’ 친화적이어서는 국가의 장래가 어두워진다.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그 기업의 오너와 주주가 누구인지는 국민 이익과 큰 상관이 없다. 기업이 잘되면 자연스레 주가는 오르지만, 사주가 잘산다고 해서 주가는 오르지 않는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신분을 물려받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의 기저에는 신분 세습을 하고픈 ‘추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이는 헌법 제11조의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는 조항과 상치된다고 본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사족이지만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 더스쿠프 
acnanp@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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