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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장시간 근로 보고서’ 발표
“韓 장시간 근로 안한다” 주장
OECD에서 5번째로 장시간 근무

경총이 보고서를 내고 우리나라가 장시간 근로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근로시간 5위로 여전히 장시간 근로국가다. 한국은 GDP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 호주, 캐나다보다 20% 이상 오래 일한다. 경총 보고서를 검증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 [사진=연합뉴스]
손경식 경총 회장.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전제부터 결론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한 근로시간 관련 보고서를 냈다. 경총 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이용해 우리나라가 더는 주50시간, 주60시간씩 일하는 장시간 근로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기준으로 삼은 2022년 기준 주당 52시간 초과 근무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선 불법이다. 주당 52시간 법정 근로시간은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민간 사업장과 공기업에서 시행했고, 2019년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했다.

보고서는 연장근무를 합친 연간 실근로시간을 활용했다. 경총은 보고서에서 장기간에 걸쳐 우리나라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기업의 근로시간 확대 욕망을 막을 수단이 법 제정밖에는 없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 경총의 복잡한 분석=보고서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경총이 13일 발표한 ‘장시간 근로자 비중 현황 및 추이 국제비교’ 보고서는 2022년 실근로시간 기준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우리나라 임금근로자가 253만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2111만명의 12.0% 수준이라고 말했다.

근로자와 회사가 미리 합의한 근로시간을 뜻하는 소정근로시간 기준으로 주당 50시간 이상 일한 임금근로자는 224만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10.3%였다. OECD 국가들의 장시간 근로자 평균 비중은 10.2%다. 2022년 실근로시간 기준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우리나라 임금근로자가 67만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2%고, 소정근로시간 기준 주당 60시간 이상 임금근로자는 58만명으로, 전체의 2.7%기 때문에 OECD 평균인 3.8%보다 낮다고 주장했다. 

■ 복잡한 분석 이유=그런데 경총은 왜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OECD 회원국들과 비교를 했을까. OECD가 발표하는 실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삼으면 한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장시간 근로 국가이기 때문이다.

OECD의 2022년 근로자당 실질 근로시간을 국가별로 보면 한국은 1901시간으로 38개 회원국 중에서 5위에 해당했다. 근로자당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 가장 높은 나라는 2405시간의 콜롬비아다. 멕시코가 2226시간으로 2위, 코스타리카가 2149시간으로 3위, 칠레가 1963시간으로 4위다.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의 근로자당 연간 근무시간은 모두 1600시간대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보다 최소 20% 이상 더 오래 일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주69시간 근무제도’라는 연장근로 확대 방안을 들고나왔다가 반발 여론에 부닥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해명했던 게 2022년 6월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부총리가 민간연구회라든가 이런 분들의 조언을 받아서 노동부에 ‘노동시장 유연성’을 좀 검토해보라고 이야기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러 조사에서 구직자들은 근로시간이 취업 여부를 결정할 주요 요인이라고 답했다. 기업들이 구인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젊은 세대일수록 장기 근로를 기피하는 것도 사실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2022년 3월 발표한 ‘청년들이 기피하는 5대 일자리 조건’에서 근로시간 관련 조건은 2개나 해당됐다. 청년들은 ‘근무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는 회사에 취업하고 싶지 않다’ ‘주5일 근무를 지키지 않는 회사에 취업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도 MZ세대의 46.7%가 보상이 있어도 희망 근로시간보다 더 오래 일해야 하는 기업에 취업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들이 희망하는 연장근로를 합친 주당 근로시간은 42.28시간이다. 

■ 인식의 묘한 흐름=경총의 인식은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친기업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우려를 사고 있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비교할 만하다. 아르헨티나 법원은 지난 1월 30일 밀레이 대통령의 노동 입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극우 자유주의 경제학자 출신인 밀레이 대통령은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성공적인 기업가는 영웅”이라며 “아르헨티나는 당신의 무조건적이고 확고한 동맹국”이라고 연설했다. 밀레이 대통령이 스스로 ‘자유 기업 자본주의’라고 명명한 정치철학을 실현한 게 이번에 위헌 판정을 받은 노동 개편안이다.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노동 관련 법안 11개를 개정하고, 300여개 규정을 기업에 유리하도록 바꿀 계획이었다. 해고 사유를 추가하고, 수습 기간을 3개월에서 8개월 연장하고, 초과근무 수당을 기업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분배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난달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난달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위헌 판정을 받은 밀레이 대통령의 노동 개편안에도 현재 주당 48시간, 하루 8시간인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안案은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기준 6218억3300만 달러로 우리나라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세계 24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은 ILO 기준으로 40위이고, 아르헨티나는 61위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근로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조업의 비중도 한국이 25%로 더 높지만, 아르헨티나의 비중도 16%로 낮지 않다. 연장근로의 기준은 우리가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주당 40시간을 적용하게 됐지만, 아르헨티나는 1일 8시간 기준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1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주69시간) 근로시간 문제는 설명이 부족해서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지 내용은 나무랄 것 없다”고 극찬했다. 경총 보고서의 주장과 달리 우리는 여전히 OECD에서 5번째로 오래 일하고 있다. 구직자들도 장시간 근무, 주말 근무를 기피한다. 근로시간 문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국민이 아닌 경총일지 모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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