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예식비 부담에 결혼 기피
값싼 공공 예식장 있지만
추가 비용 1000만원 넘어
비싼 가격에 이용률 적어
여가부 선정 공공 예식장
15곳 중 8곳 운영 중단
지자체 지원사업도 종료

저렴한 가격으로 예식을 올릴 수 있다는 공공 예식장.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예비부부의 수요가 적다. 2016년 여성가족부가 ‘으뜸’이라면서 선정했던 공공 예식장 15곳 중 8곳은 운영을 중단했다. 예식장을 대관 중인 나머지 7곳의 이용률은 저조하다. 왜일까. 더스쿠프가 공공 예식장의 허점을 살펴봤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에 선정한 공공 예식장 15곳 중 8곳이 운영을 중단했다.[사진=서울시 제공]
여성가족부가 2016년에 선정한 공공 예식장 15곳 중 8곳이 운영을 중단했다.[사진=서울시 제공]

1390만원. 결혼 준비 회사 ‘듀오’가 조사한 2023년 평균 결혼식 비용이다. 예비부부가 수개월치 월급을 쏟아부어도 감당하기가 힘든 수준이다. 값비싼 결혼식 비용은 젊은 세대의 결혼 기피를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합리적인 비용만 내고 식을 올리고 싶은 예비부부를 위한 선택지는 없는 걸까. 8년 전엔 있었다. 2016년 여성가족부는 ‘작은 결혼식장 으뜸명소’ 15곳을 선정했다. 이를 통해 소규모로 진행하는 예식을 일컫는 ‘작은 결혼식’을 하기 편한 ‘공공 예식장’을 지역별로 추천해줬다.

공공 예식장은 지자체에서 무료부터 10만원 안팎의 저렴한 대관료를 받고 공공시설을 예식장으로 개방하는 곳이다. 당시 여가부는 “허례허식이나 겉치레에서 벗어난 새로운 혼례문화를 만들어 가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며 작은 결혼식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럼 ‘으뜸’ 공공 예식장 15곳은 잘 운영되고 있을까. 더스쿠프 취재팀의 조사 결과, 15곳 중 8곳이 운영을 중단했다. 구체적으로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서울 청와대사랑채, 경기 굿모닝하우스(현 도담소)와 경기 국립아세안 자연휴양림, 전북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경남도민의 집은 운영을 중단했다.

대구교육연수원 연리지홀은 지난해 말 폐관했다. 2013년 95건의 예식을 치를 만큼 잘나갔던 울산 중구컨벤션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한 2020년 이후 예식이 0건으로 줄면서 지난해 말 예식장 대관 운영을 종료했다.

지금까지 운영 중이긴 하지만, 나머지 7곳의 상황도 신통치 않다. 부산 서구청 서구웨딩홀, 인천 월미공원 양진당, 전남 농업박물관 혼례청, 광주 공무원 교육원 등의 지난해 예식 대관 건수는 2~4건에 불과하다. 광주 공무원 교육원 관계자는 “2017년엔 예식 대관이 14건이었지만, 예식장이 점점 낡고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지난해엔 2건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여가부가 ‘으뜸’으로 선정한 공공 예식장만 그런 게 아니다. 서울 23곳, 대구 12곳, 부산 14곳 등에 있는 공공 예식장은 대관료가 무료이거나 10만원 안팎의 소액만 받고 있는데도 운영이 신통치 않다.

왜일까. 가장 큰 문제는 지자체의 역할이 장소를 제공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대관료 부담이 없다지만, 막상 결혼식을 진행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인천시 공공 예식장인 인천도호부관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관료는 10만원이지만, 전통혼례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럼 전통혼례업체에 내야 하는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전문업체가 내준 견적은 이렇다. ▲웨딩플랜(공간 기획 및 연출) 66만원, ▲전통혼례 기본 비용(초례상ㆍ혼례복 등) 250만원, ▲야외 음향 장비 30만원, ▲운송ㆍ세팅비 30만원, ▲혼구용품(접수테이블ㆍ안내문) 15만원이다.

출장뷔페를 이용할 경우엔 1인 6만원으로 하객 100명을 초대할 경우엔 600만원이다. 여기에 인천도호부관아 대관료 10만원까지 더하면 총 1001만원으로 싼 가격이라고 볼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평균 예식 비용(1390만원)보다 크게 싸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식당이나 주차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미연(가명)씨는 지난해 여름 보라매시민안전체험관 공공 예식장에서 혼례를 치르려 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하객들이 식당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선 도시락이나 출장 뷔페를 이용해야 했다. 이마저도 공간이 협소해 100명 이하만 식사가 가능했다.

김씨는 “인생에 한번 하는 결혼식인데 식사 인원이 100명 이하만 가능하다고 해서 계획을 변경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생각보다 비싼 가격과 기대치를 밑도는 서비스 탓인지 지자체의 ‘작은 결혼식’ 지원사업도 하나둘씩 종료되고 있다.

인천시는 2022년 ‘인천형 작은 결혼식’ 지원 사업을 중단했다. 이는 공공 예식장에서 혼인식을 갖길 희망하는 예비부부를 선정해 스튜디오촬영ㆍ드레스ㆍ메이크업 비용(100만원 이내)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인천시 관계자는 “관련 공고를 냈는데도 지원이 들어오지 않았다”며 “작은 결혼식이지만 비용을 다 합치면 일반 예식장에서의 비용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울산 중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예비부부 4쌍을 선정해 지역 내 공공기관을 무료로 대여하고 한 쌍당 4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하는 ‘작은 결혼식’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1년 만에 종료했다. 신청자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예식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 그린웨딩포럼 이광렬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휑한 강당에서 일생에 한번뿐인 결혼을 하고 싶은 예비부부는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이 이어지면 공공 예식장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비용문제로 결혼을 머뭇거리는 MZ세대에게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한국경제의 문제 중 하나는 ‘저출산’이다. 2023년 3분기 현재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그 배경엔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청년 세대가 있다. 공공 예식장을 잘 활용하면 부담스러운 결혼비용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 세대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해법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얼마 전 발표한 거대 양당의 저출산 대책에도 ‘공공 예식장’은 없었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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