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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관계 이론으로 해석한
정몽규와 클린스만의 행보
대리인 문제 연장선에 있어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시민단체로부터 배임 혐의로 고발까지 당했다. 핵심은 클린스만의 계약 내용상 발생할 위약금이다. 경제학의 계약 이론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 위임자와 대리인의 문제는 결국 기업 혹은 단체의 지배구조와 맞닿아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 [사진=뉴시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 [사진=뉴시스]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 10일 통보 없이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알려진 후 경질 여론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0일 폐막한 아시안컵에서 직전 대회보다 한 단계 높은 4강에 진출했지만, 경기력 문제와 태도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을 향한 여론도 악화하고 있다. 아시안컵 4강 패배 이후 여러 매체와 축구 관련 인플루언서들은 클린스만과 함께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축구협회가 13일 임원회의를 열고 아시안컵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정 회장은 임원회의 불참을 통보했다. 임원회의는 책임자들이 참석하지 않은 채 비공개로 진행됐고, 사퇴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정 회장은 13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도 당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제기한 고발장에는 “클린스만 감독을 해임할 때의 위약금을 비롯해 해임하지 않을 때 2년 반 동안 지불해야 하는 연봉, 계약 후 지금까지 지급한 연봉이 모두 공금임에도 피고발인(정몽규 회장)의 일방적 연봉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클린스만의 연봉은 29억원으로 추정되며, 경질시 발생하는 위약금은 7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거액의 연봉과 만만찮은 위약금 때문에 축구협회는 클린스만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클린스만이 자진사퇴해 주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클린스만은 귀국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4강 성적’을 강조하면서 사퇴를 거부하고 미국으로 날아가버렸다.

[비주얼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비주얼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이는 경제학의 ‘계약관계 이론’에서 지적되는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다. 비교적 쉽게 달성할 수 있고, 측정이 용이한 목표(4강)를 강조해 과오를 덮으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좀 더 깊게 들어간다면, 클린스만의 계약 문제는 1976년 젠센과 맥클링이 기업내 계약관계를 연구한 ‘대리인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 

‘대리인 문제’란 주주들이 자신들을 대신하는 다른 사람(경영자)에게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의사결정권을 넘겨줘서 발생하는 문제다. 대표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있다. 대리인(경영자)이 주주보다 정보 접근에 유리해 정보의 불균형이 생기면서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위임자인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을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주주들은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 막대한 성과급 체계를 세우고, 대리인을 감시하는 제도를 만들어 의사결정의 차이로 발생하는 잔여손실을 감수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을 ‘대리인 비용’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클린스만과의 계약관계에서 설정된 위약금 정도를 대리인 비용으로 간주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시민단체의 고발장에 따르면 이런 비용들은 축구협회가 대리인인 협회장을 선임한 데 따른 것이다. 

대리인 이론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으로 대리인과 위임자의 이익을 일치시키라고 조언한다. 성과 기반의 계약을 맺으라는 얘기다. 이번 축협 사태에서는 감독 해임 위약금을 설정하기보단 16강, 8강, 4강 등 목표를 달성했을 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 좋았다는 얘기다. 다만, 감독 해임 위약금은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것인 만큼 성과급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계약 자체가 이뤄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계약 이론을 발전시켜 201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 벵트 홀름스트룀 MIT대 교수는 이처럼 잘못 설계된 성과급 체계가 문제를 악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들은 성과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만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클린스만 감독이 사임 불가의 이유로 4강 진출을 꼽고, 축구팬들은 경기력과 직업윤리라는 측정하기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경제학자들이 계약 이론에서 지적하는 여러 문제는 결국 기업 지배구조 문제로 귀결된다. 계약서가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므로 모든 계약은 불완전계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 클린스만의 국내 거주 조항, 위약금 세부 설정 등은 계약서에 적시돼 있지 않을지 모른다. 이런 경우엔 계약 이론에 따라 상급자가 결정권을 가진다. 

[비주얼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비주얼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그런데 협회 지분이 0%인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사임 여론이 높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정 회장이 클린스만의 불투명했던 선임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있고, 자신의 경질 안건이 논의될 수도 있는 임원회의조차 간단하게 불참을 통보하면서, 마치 최대 지분 소유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기업에서도 최종결정권과 지분은 꼭 정비례하지 않는다. 하트와 홀름스트룀 교수는 불완전계약에서는 최종결정권이 있는 사람과 지분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소수의 지분으로 기업집단을 통치하는 재벌 총수들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82개 재벌의 주식소유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벌 총수와 그 일가의 지분율은 각각 1.7%, 1.9%에 불과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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