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마켓분석
하림 컨소시엄 HMM 인수 무산 
재무적 한계 극복 못했기 때문
영구채 인수 못하면 인수 어려워
세계 해운업 시황까지 악화일로
HMM 재매각 당분간 어려울 듯

“HMM의 재매각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 나오는 관측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HMM 인수 조건을 갖춘 기업이 아니라면 M&A가 쉽지 않다는 걸 하림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HMM의 인수 조건이 까다로운 이유는 뭘까. 답은 영구채에서 찾을 수 있다.

산은ㆍ해진공과 하림 컨소시엄의 협상 결렬은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사진=뉴시스]
산은ㆍ해진공과 하림 컨소시엄의 협상 결렬은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사진=뉴시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HMM 매각 작업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지 어느덧 한달째다. HMM은 HMM대로,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하림은 하림대로 아직은 어수선하지만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이제 본업 경쟁력 강화와 내실 다지기가 필요한 때”란 시장의 지적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HMM 매각을 준비했던 산업은행(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의 분위기는 다르다. 풀지 못한 숙제가 많은 만큼 여전히 분주하다.

일례로, 해진공 안팎에선 “HMM 보유 지분을 전부 매각하는 기존 방안 대신 ‘전부 또는 일부’를 보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HMM 재매각을 위한 조율이 한창이라는 방증이다. 이번과 같은 협상 결렬을 막겠다는 의도일 거다.

사실 산은ㆍ해진공과 하림-JK파트너스 컨소시엄의 ‘협상 결렬’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일부에선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헤어질 명분’을 챙겼다는 분석까지 내놓는다. 문제는 ‘협상 결렬’을 예상하게 했던 변수들이 향후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변수들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제2, 제3의 협상 결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 

그럼 그 변수는 뭘까. 바로 HMM 인수자가 특별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느냐다. 당초 HMM 인수자의 조건은 명확했다. HMM 인수 후에도 국적 해운사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해운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함과 동시에, 현금이 충분해야 한다는 거다. 그 조건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 HMM 인수 조건 = HMM은 한진해운이 무너진 후 국내 유일의 국적 선사로 발돋움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화물을 안정적으로 책임져 줄 국적 선사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래서 HMM 인수의 첫째 조건은 ‘국적 선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산은ㆍ해진공이 예비입찰에 응했던 독일의 하파크로이트를 배제한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조건은 해운업과의 시너지인데, 이를 충족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번 입찰에서도 인수후보기업들은 모두 물류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하림도 벌크선사인 팬오션을 갖고 있었다.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건 마지막 조건, 현금이다. HMM에 현금이 많은 인수자가 필요한 건 인수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산은과 해진공이 가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영구채 탓으로 봐야 한다. 

뒤탈 없는 HMM 매각을 위해서는 현금을 충분히 확보한 인수자가 필요하다.[사진=뉴시스]
뒤탈 없는 HMM 매각을 위해서는 현금을 충분히 확보한 인수자가 필요하다.[사진=뉴시스]

이번 입찰 당시 산은과 해진공은 1주당 5000원짜리 HMM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2조6800억원어치의 영구채를 갖고 있었다. 주식 전환 시 5만3600주에 해당한다. 매각 진행 전 HMM 총 발행주식(4억8903만9496주)보다도 많았다.

이에 따라 HMM 인수 후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산은과 해진공의 영구채를 모두 인수할 만큼의 자금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표면적으로 인수할 HMM의 지분은 전체의 40.6%였지만, 실제 인수해야 할 지분은 그 두배에 가까워서다. 

더구나 산은과 해진공은 인수 후에도 HMM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인수자가 필요했다. HMM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HMM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기면 또다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다. HMM에 현금 두둑한 인수자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HMM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던 후보기업들은 현금성 자산을 아무리 끌어모아도 HMM 인수가격의 절반조차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와야 하는 상황에서 영구채의 온전한 인수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하림 컨소시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림지주와 팬오션의 현금성 자산을 합쳐도 2조원대(2023년 3분기 기준)에 불과했다. 협상 결렬 후 하림 측은 “매도자(산은ㆍ해진공) 측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주지 않아 HMM 인수 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영에 간섭할 우려가 있었다”면서 협상 결렬 배경을 설명했지만, 재무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애초부터 조건에 맞지 않았다는 거다.

[※참고: 하림 측은 ▲주주 간 계약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한정해줄 것, ▲컨소시엄에 함께 참여한 JKL파트너스의 지분 매각 제한을 예외로 해줄 것, ▲매도자 측이 보유한 HMM 영구채의 주식 전환 기한을 3년간 유예해줄 것(공정성 논란으로 자진 철회)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영구채는 향후 HMM 재매각에서도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현재 산은과 해진공은 1조원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산은과 해진공의 합산 지분율은 종전 40.6%에서 57.9%로 확대됐다.

산은과 해진공은 나머지 1조6800억원의 영구채도 2025년 4월까지 모두 주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그러면 산은과 해진공의 지분율은 71.7%가 된다. 21일 주가에 지분율을 대입하면 가격은 9조원대가 넘어간다. 종전 하림 컨소시엄의 제시 가격(6조4000억원)보다 훨씬 높다. 

■ HMM 대외 변수 = 그렇다면 인수자가 세가지 조건을 모조리 맞추면 HMM 인수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까. 그렇지도 않다. HMM을 둘러싼 대외 변수를 살펴봐야 한다. 다름 아닌 해운업 시황이다. 지난 몇년간 해운업 시황은 좋았다. 특히 컨테이너선이 주력인 HMM은 팬데믹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하지만 지금 해운업은 그렇지 않다. 글로벌 해상운송 운임 수준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022년 평균 3410포인트에서 2023년 평균 1006포인트로 70.5% 하락했다.

HMM의 실적도 크게 악화했다. HMM은 지난해 매출 8조4010억원, 영업이익 5849억원을 기록했을 전망인데, 맞아떨어진다면 매출은 전년보다 절반 이상 줄고, 영업이익은 17분의 1이 된다. 중국의 경기 회복 지연, 글로벌 소비 위축과 수요 둔화, 그로 인한 운임 하락, 지정학적 불확실성 증대 등 악재가 영향을 미친 탓이다.  

이 때문인지 시장에서 “당분간 HMM 재매각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필수조건을 충족하려면 현금 두둑한 기업이 등장해야 하는데 나설 만한 곳이 보이지 않고, 업황 개선은 기대하기 힘들어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번 매각 불발을 두고 “매각 불확실성으로 인해 당분간 HMM의 영업활동에도 제약이 있을 것이다” “가장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등의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현재로선 ‘숨고르기’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고 있는 HMM의 현주소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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