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➋
저작권 사냥 vs 저작권 보호 격화 
저작권 침해 또는 사냥 사례 난무
결국 저작권자도, 침해자도 억울
관련법 개정 미룬 21대 금배지 탓

#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용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저간의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거 없이 무조건 저작권 침해 피해만 주장하는 건 합의금 장사일 뿐이다.” 저작권자의 ‘과도한 저작권 지키기’로 선의의 피해를 입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회복지사 A씨의 주장이다. 

# “내 창작물을 동의 없이 가져다 쓴 이들에게 합의금을 요구하거나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잘못인가. 그럼 저작권법은 왜 있는가?” 정당한 저작권 지키기를 ‘과도한 저작권 지키기’로 오해해선 안 된다는 일러스트 작가 B씨의 반박이다. 

# 어떤가. 당신은 누구 주장에 손을 들어주겠는가. 사실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두 주장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어서다. 문제는 B씨의 행동과 생각이 정당하더라도 누군가는 ‘저작권 사냥’이란 주홍글씨를 덧씌울 수 있다는 거다. 

# 그럼에도 우리나라엔 저작권 갈등을 막을 만한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다. 이런 제도를 구축할 수 있는 관련법이 발의된 지 오래지만 금배지들은 이번에도 일을 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저작권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는 지금, 우린 무엇을 논의해야 할까.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 2편이다. 

무분별한 글꼴저작권 소송이 정당한 저작권 지키기마저 왜곡할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무분별한 글꼴저작권 소송이 정당한 저작권 지키기마저 왜곡할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우리는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 1편에서 한 글꼴(폰트)개발업체의 저작권 소송 남용 문제를 다뤘다. 저작권 보호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도를 넘는 소송은 시장을 병들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돈벌이를 위한 무분별한 저작권 소송’은 건전한 합의를 어렵게 하고, 저작권자를 향한 반감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회적 갈등도 커질 수밖에 없다.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 2편에서는 그 갈등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봤다. 그 갈등의 단면을 살펴보자. 

“비영리법인인 사회복지기관에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활동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본의 아니게 글꼴(폰트)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이 종종 있죠. 가령, 저작권에서 비영리는 ‘철저히 개인적인 용도’에 한정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알 리 없는 자원봉사자들은 ‘비영리라면 이 글꼴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문구를 비영리법인이 사용해도 괜찮다는 의미로 오인하곤 합니다. 그럴 경우 저작권 소송이 들어오면 사회복지기관으로선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아요. 법적 대응 방식을 잘 모르고, 겁도 많아서 저작권자의 요구대로 합의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현직 사회복지사 A씨의 설명이다. 사회복지 분야의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A씨는 일부 저작권자의 ‘도 넘은 저작권 지키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영리법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유하기도 했다. 저작권은 보호받아 마땅하지만, 비영리법인의 글꼴 저작권 침해 같은 사례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글꼴 저작권 침해는 소송액이 보통 수백만원 수준인데, 이미지 저작권 침해는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대에 이르기도 해요. 글꼴보다 더 심각한 게 이미지 저작권 침해인 셈이죠. 인터넷을 검색해서 나오는 이미지를 함부로 써선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일러스트 작가의 사례를 들었다. 

일러스트 작가 B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직접 작업한 일러스트 1500여개를 올려두고 있다. 각각의 일러스트에는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이란 의미의 ‘Copyright ⓒ’가 새겨져 있다.

B씨는 블로그에 ‘이곳에 게시된 모든 작품들은 현재 국내외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업미술저작물로 무단사용을 금하며, 무단사용시 법적 책임이 주어집니다’라는 경고도 적어놨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그의 일러스트를 심심찮게 도용했다. A씨는 그 원인을 “일러스트를 하나씩 올려놓은 데다 태그(tag)를 달아서 잘 검색되도록 해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를 넘은 권리 지키기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도를 넘은 권리 지키기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B씨의 일러스트를 도용한 곳은 한두곳이 아닌데, 가장 대표적인 게 일부 지역의 벽화였다. 수년 전(2016~2020년) 일부 지역의 자원봉사센터들은 공익적 차원에서 지역 미술학원 원장과 손잡고, 특정 지역의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낙후된 지역에 예쁜 벽화가 있으면 범죄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진행한 일종의 트렌드 같은 거였다. 여기엔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B씨의 일러스트가 많이 쓰였다. 하지만 그 후 이야기는 따뜻하지 않았다. 일러스트를 도용당한 걸 알아챈 B씨는 각 기관을 형사고소하고, 내용증명을 보내 저작권 침해를 문제 삼았다.

기관들은 합의에 나섰다. B씨는 기관당 수억원대에 달하는 합의금을 내걸었다. 일부 센터는 ‘사태를 조용히 해결하겠다’면서 B씨가 제시한 금액을 주고 합의했고, 또 일부는 법적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이런 사례들을 근거로 A씨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했다”면서 “특히 B씨는 미술학원 원장들만을 상대로 합의금을 요구했는데, 사익을 추구하는 미술학원이 법망에 걸려들기 쉬운 만큼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씨는 “이렇게 합의에 성공하면 B씨는 합의서에 비밀유지 조항을 포함하도록 했다”면서 “B씨가 다른 곳에서 더 많은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 A씨의 설명만 들어보면 B씨의 행동은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 1편에서 언급한 글꼴개발업체의 ‘도 넘은 저작권 지키기’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B씨도 ‘저작권 사냥꾼’일까. 

지금부턴 B씨의 반론을 들어보자. “일러스트를 블로그에 올려놓은 건 저작물 판매를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자 원작자임을 증명할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작권을 표시한 일러스트를 도용한 사건에서 미술학원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저작권 침해자를 특정해야 했기 때문이죠. 어떤 원장들은 자신들이 저작권을 도용한 벽화 아래에 버젓이 자기 이름을 적어놓기도 했어요.”

B씨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했다는 지적엔 “계산해보면 그렇지 않다”며 반박했다. “인터넷 이미지 판매 사이트에서 내 작품의 연 사용료는 30만원에서 시작합니다. 게다가 벽화에 도용한 그림은 한두개가 아니라 수십개에 달하죠. 한 작품당 30만원씩만 잡아도 몇년간 사용했다고 하면 최소 수천만원입니다. 작품 가격을 고려하면 억대가 넘어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비밀유지는 애써 만든 작품의 가격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일러스트로 돈을 버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겁니다.” 

그러자 A씨는 이렇게 재반론했다. “B씨의 저작권 지키기가 정당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저작권 침해가 문제의 발단인 것도 맞죠. 다만 B씨는 저간의 사정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A씨는 “실수로 도용했을 때에도 B씨는 가차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면서 “합의금을 전혀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이나 영세한 비영리법인에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런 태도 탓에 누군가는 일러스트 도용에 책임을 지고 직장을 잃었어요. 특히 B씨는 너무 한정적인 상황만으로 설명하는데, 사실 담벼락 벽화가 아닌 100장짜리 A4 홍보물에 일러스트를 도용했다고 해서 합의금이 싼 것도 아니었죠. B씨가 합의금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떤가. 과연 B씨는 자신의 저작권을 지키려 한 걸까, 아니면 합의금 장사를 하려 한 걸까. 판단은 쉽지 않다. “저작자가 무단사용을 못 하게끔 사전 조치를 취하고, 무단사용이 있었을 경우에도 저간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A씨의 주장을 무시하긴 어렵지만, B씨의 저작권 지키기는 합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문제는 B씨의 태도가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현재의 환경에선 누군가에게 반감을 주기에 충분하단 거다. 이는 저작권 시장이 그만큼 왜곡돼 있다는 방증이다. 그 배경엔 무분별한 쪼개기 소송으로 합의금 장사를 하는 ‘도 넘은 저작권 지키기’가 있음이 분명하다. 가령, 글꼴개발업체들의 탐욕이 정당한 저작권 지키기에도 ‘편견’을 심어놓은 셈이다. 

그럼에도 시스템 개선은 요원하다. 2021년 1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작권 침해 정도가 경미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고발보다 조정을 우선시하는 내용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내놨다. 현행법상 저작권 침해가 친고죄로 규정된 탓에 고소권을 통해 형사벌을 무기화하는 등의 남용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같은해 2월에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한 채 계류법안으로 빠졌다. 100개가 넘는 개정안을 단시간에 검토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탓이다.

당시 문체위 회의에서 진행된 개정안 검토 내용은 단 두문장에 불과했다.  “대량의 저작물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창작ㆍ유통되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변화된 저작물의 이용 방식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의의가 있어 보인다. 다만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두고, 창작자와 이용자의 입장에 따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이해관계자 간 권익의 균형을 도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후 개정안을 검토하는 논의는 중단됐다. 좀 더 촘촘한 저작권법이 필요하지만 금배지들은 손을 놨다. 저작권에서 비롯된 사회적 갈등은 그렇게 시민의 몫으로 남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21대 국회는 사실상 문을 닫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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