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숭인동 영하우스 르포

11·19 전세대책에서 언론이 가장 관심을 가진 건 다름 아닌 ‘호텔’이었다. 비주택을 리모델링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는 대책이 나와서다. 많은 미디어와 야권은 이를 두고 ‘닭장’ ‘21세기형 쪽방’을 만든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호텔 개조 임대주택은 그렇게 살 만한 곳이 아닐까. 서울에서 2년째 월세로 살고 있고, 지금은 전세를 찾고 있는 더스쿠프(The SCOOP) 기자가 비주택 리모델링 공공임대주택 중 한곳인 서울 숭인동 영하우스에 가봤다.

숭인동 가죽시장이 있는 골목은 주거지역이 아닌 탓에 정비되지 않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숭인동 가죽시장이 있는 골목은 주거지역이 아닌 탓에 정비되지 않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난 11월 19일 발표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이하 11·19 전세대책)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비주택 공실 리모델링’이다. 정부는 공실 상가·오피스·숙박시설을 개조해 1만3000호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1인 가구의 전세 수요가 증가하는 현실에 맞춰 공실 상가·오피스·숙박시설을 주거 공간으로 적극 전환하는 방법으로 주택 순증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다.”

집 아닌 건물을 집으로 바꿔 주택 수급을 빠르게 늘리겠다는 거다. 이 방안을 두고 여당은 “닭장에 살라는 것” “21세기형 쪽방촌을 만든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주목받은 곳이 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역세권 청년주택 ‘영하우스’다. 영하우스는 비주택 건물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한 첫 사례다. 비주택 공실을 주택으로 전환한 ‘견본’인 셈이다. 미디어가 유독 영하우스에 집중한 이유다. 

하지만 평가는 썩 좋지 않았다. “호텔 개조 주택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의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었다. 시행사 측은 올초 리모델링을 마쳤지만 바닥의 카펫조차 빼지 않는 우를 범했다.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월세를 비싸게 받는 바람에 계약포기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시행사는 결국 서비스 비용을 없애고 바닥을 원목자재로 바꾸는 등 재정비를 거쳐 지난 7~8월 세입자를 다시 받았지만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비주택의 주택화는 잘못된 정책일까. 기자는 1인 가구이자 월세 세입자다. 지금은 ‘적당히 살기 좋으면서 저렴한’ 전셋집을 찾고 있는 수요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셋집을 찾는 20대 1인 가구’의 눈으로 영하우스를 직접 보기로 했다. 

11월 23일 오후 3시께, 버스를 타고 ‘동묘 앞’ 정거장에 내렸다. 영하우스는 큰길 뒤편에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빌딩 옆 샛길을 통하니 영하우스까진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청년들이 한창 바깥활동을 할 시간이어서일까. 한동안 지켜봤지만 건물에 드나드는 세입자는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가 있는 사람은 입주할 수 없어서인지 건물 주위엔 오토바이들만 주차돼 있었다. 

‘주위 환경이 거주지로 좋지 않다’는 평이 많았던 만큼 건물 주변을 먼저 살폈다. 골목은 대낮이지만 빌딩이 촘촘히 들어선 탓인지 살짝 어둡다. 영하우스의 맞은편엔 숙박시설 2곳이, 옆 건물엔 오래된 노래방이 있다. 골목은 분식집·고깃집·한식집 등 크고 작은 식당들이 메우고 있다. 청계천 방향으로 가니 수많은 가죽제품 가공업체들과 각종 상사商社가 줄지어 자리 잡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때문인지 오토바이나 소형 트럭이 끊임없이 골목 안을 질주했다.


다음날 저녁까지 이틀에 걸쳐 돌아보니, 호텔을 리모델링한 주택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나뉘었다. 일단 관광객이 찾기 쉬운 곳에 있는 만큼 접근성이 좋다. 버스 정류장에선 걸어서 3분 이내, 지하철역(동묘앞역)에선 7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주변 편의시설도 괜찮다. 건물 가까이에 편의점 3개(이마트24·GS25·세븐일레븐)와 마트 2개가 있고, 청계천 방향으로 내려가면 대형마트(이마트 청계천점)가 나온다. 이들 모두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있다. 

지하철·마트 걸어서 10분 이내


호텔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영하우스가 제공하는 TV(42인치)·비데·욕조 등은 일반 원룸에선 쉽게 찾을 수 없는 옵션이다. 복도의 CCTV나 야외 휴게공간도 마찬가지다. 건물의 입구엔 관리실이 있다. 입구는 두곳으로 나뉘는데, 배달기사 등 외부인은 관리실 옆의 문으로만 드나들 수 있다. 관리실이 없는 대부분의 원룸을 떠올리면 보안이 괜찮은 셈이다. 
 

숭인동 청년주택  ‘영하우스’는 폐업한 베니키아 호텔 동대문을 리모델링해 만든 공공임대주택이다. [사진=영하우스 홈페이지]
숭인동 청년주택 ‘영하우스’는 폐업한 베니키아 호텔 동대문을 리모델링해 만든 공공임대주택이다. [사진=영하우스 홈페이지]

하지만 장점만큼 단점도 적지 않다. 특히 2인 이상 가구나 장기거주자에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 우선 방이 너무 좁다. 총 207개 방의 전용면적은 16~43㎡(약 4 ~13평)인데, 이 중 가장 큰 43㎡ 규모의 방은 1개뿐이다. 나머지 206개 방의 넓이는 16~22㎡(4~6평)에 불과하다. 16㎡ 크기에 침대까지 들어간 방이라면 1인 가구라도 답답하게 느낄 만큼 좁다. 

주방시설이 협소해 요리를 하기 어려운 데다, 보일러가 없어 바닥 난방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큰 단점이다. 편의시설은 많지만 주위 환경이 쾌적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가까이에 시장·관광지·상가(가죽시장) 등이 몰려 있어서다. 영하우스가 아닌 다른 호텔 역시 대부분 관광지에 있기 때문에 임대주택으로 활용되더라도 주변이 혼잡할 가능성이 높다. 영하우스 입주를 포기한 한 여성은 “보일러가 없는 점이 영 걸려 입주하지 않았다”면서도 “무엇보다 동묘가 거주하기에 좋은 곳 같진 않았다”고 말했다. 

장기 거주하기엔 “글쎄”

정부는 “2021년 하반기부터 비주택 공실 리모델링을 통한 주거공간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2021년까지 6000호, 2022년까지 7000호의 공실 리모델링 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비주택 공실 리모델링이 전세난의 해결책이 되려면 영하우스 이상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자칫 1인 가구조차 외면하는 주택이 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비주택 공실 리모델링 대책에 장점이 없다는 건 아니다. 정부는 1만3000호의 공실 리모델링 주택 중 1만1000호를 공공주도형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세입자 입장에선 집주인 눈치 볼 필요 없고, 보증금도 편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 ‘안전한’ 집이 적어도 1만1000호는 나온다는 얘기다. 여기에 각종 옵션과 보증금 지원까지 감안하면 시장 매물보다 못할 게 없다. 과연 ‘비주택의 주택화’라는 정부의 시도는 전세 난민을 구할 수 있을까. 대책을 잘만 가다듬는다면 희망은 있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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