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전 성향 살펴야 하는 이유
도시 편하면 귀농 택할 필요 없어
어디서 은퇴생활 즐길지 정해야
필자는 앞선 편지에서 은퇴 후 시골살이를 막는 요인 중 하나인 배우자의 반대를 극복하는 법을 얘기했습니다. 사실 이보다 앞서 파악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골살이를 꿈꾸는 나 자신이 시골살이에 맞는 성향을 가졌느냐입니다. 막연한 꿈으로 도전하기엔 시골살이의 어려움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상황으로 시골살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것이 시골살이라는 얘기입니다.
귀농·귀촌과 은퇴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은퇴 후 각박한 도시를 탈출하길 바랍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0년 농업·농촌 국민의식조사’ 보고서를 살펴보시죠. 농경연은 지난해 12월 도시에서 거주하는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은퇴 후 여건이 될 때 귀농·귀촌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 결과, 41.3%가 ‘귀농·귀촌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2019년 34.6% 대비 6.7%포인트 높아진 수치입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60대 59.4%) 귀촌·귀농을 하고 싶다는 의견은 높게 나타났습니다.
귀촌·귀농을 희망하는 이유로는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가 43.2%로 가장 많았습니다. 도시인 10명 중 4명은 ‘나는 자연인이다’를 꿈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 강해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조사보다 앞선 시점인 지난해 4월 농경연이 실시한 설문조사(성인 1011명)에서 전체의 20.3%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귀농·귀촌 의향이 강해졌다’고 답했습니다. ‘귀농·귀촌 의향이 약해졌다’는 답변은 8.2%에 불과했습니다.
이 결과를 분석한 농경연은 “코로나19 사태로 도시 생활의 위험성과 경제적 어려움 등이 귀농·귀촌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귀농·귀촌 수요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부쩍 늘었다는 겁니다.
문제는 귀농·귀촌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충남 청양군에 있는 필자의 세컨드 하우스를 방문한 지인 박명훈(가명·61세)의 이야기입니다. 박씨는 은퇴를 계획하면서 귀농·귀촌을 경험해 보겠다는 생각에 필자의 시골집을 방문했습니다. 필자는 이 친구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본인이 시골생활을 간절히 원해도 환경과 개인 성향이 시골살이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박씨는 2가지 측면에서 시골살이가 불가능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그가 앓고 있는 지병입니다. 심근경색으로 고생하고 있는 박씨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여느 시골이 그렇듯 그가 방문할 수 있는 의료시설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는 시골에서 살고 있는 지역 주민도 겪고 있는 어려움입니다. 더구나 대중교통도 불편합니다. 어렵게 시간을 맞춰 병원에 다녀오려면 하루를 다 써야 할 정도로 병원이 멀리 있는 경우가 숱합니다. 은퇴 후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 시골을 찾는 이들이 많긴 하지만 정작 건강 때문에 이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시골살이 막는 현실적인 문제
둘째 이유는 그의 성향이 모든 걸 직접 해결해야 하는 시골살이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도시 생활은 아파트 문화와 가족시스템을 통해 이뤄집니다. 가족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에 속한 삶을 삽니다. 도움을 청할 곳도 많습니다.
일례로 집을 수리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전문가를 부르면 몇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골살이를 위해서는 이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몸을 움직이는 걸 습관화해야 하죠. 차를 타는 것보다는 걷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먹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에선 배달 음식이 흔하지만 시골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박씨는 이런 면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그에게 시골에 살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박씨에게 시골살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은퇴가 아닐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박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은퇴 후 도시에서 살지 귀농을 택할지는 개인이 처한 상황과 성향을 따져 본 후 결정해야 합니다. 편의시설과 대중교통 등의 편리함을 포기하기 싫은 사람은 도시 중심의 은퇴계획을 세우는 게 맞습니다.
혹자는 ‘살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여유롭고 행복해야 할 은퇴생활을 두고 무모한 도박을 해선 안 됩니다. 도시와 아파트, 마트와 병원, 문화시설 등의 혜택에 만족했던 사람이라면 굳이 위험요인을 안고 시골행을 택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특히 도시생활에 별문제가 없었던 사람들은 시골살이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건 아닙니다. 모두가 꿈꾸는 정답일 수 있는 도시와 시골살이의 중간 형태를 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주일 중 3~4일 길게는 5일은 도시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시골로 내려가 휴식을 취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오도이촌五都二村이나 사도삼촌四都三村이 대표적 입니다. 필자도 이런 방식이 가장 무난한 형태의 시골살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도시와 시골의 두집 살림을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부담도 큽니다. 도시와 시골 두곳에 살 집을 장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의 동의를 얻은 경우가 아니라면 스트레스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골살이를 하고 싶다면 그 시작은 이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시골살이와 맞는지 살펴야
충분한 경험을 통해 자기를 확실하게 검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0년의 생활에 익숙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시골살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대안이고, 행복한 은퇴생활을 위한 조건은 아닙니다. 은퇴 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슨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가장 행복한 은퇴생활일까’란 질문의 답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묻습니다. “당신의 행복한 은퇴생활이 이뤄질 주요 무대는 어느 곳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물음의 답을 찾는 것이 행복한 은퇴생활의 첫 단계입니다.
글 =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정리 =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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