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이슈로 흔들리는 IPO 시장
LG에너지솔루션 IPO 후폭풍
2022년 IPO 대어들의 현주소

주식시장이 호황이던 지난해 숱한 기업이 “2022년 IPO를 추진하겠다”면서 봄꿈을 품었다. 그중엔 ‘대어大魚’라 불릴 만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예민한 시장은 얼굴을 바꿨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미국 금리 인상 이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 부정적 변수가 쏟아지자 시장은 금세 꽁꽁 얼어붙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월 LG에너지솔루션이 IPO에 성공한 이후 관련 규제가 강화됐다. LG엔솔의 물적분할, 수요예측 등 IPO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가 노출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IPO 대어’라 손꼽히던 기업들이 발을 빼거나 꼬리를 내렸다. 2022년 IPO 시장엔 봄이 올 수 있을까. 

기대와 달리 상반기 IPO 시장은 얼어붙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기대와 달리 상반기 IPO 시장은 얼어붙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지난해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은 역대급 호황을 누렸다. IPO에 성공한 기업은 89개사로 전년(70개사) 대비 27.1% 증가했고, 총 19조7000억원에 달하는 공모금액이 모였다. 올해를 목표로 IPO에 나서는 기업들이 줄지어 늘어선 이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상반기 IPO 시장은 얼어붙고 있다. 국내 증시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내외 환경이 악화하고 있어서다. 

일례로 지난 1월 27일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역대급 수요예측(기관투자자 경쟁률 2023대 1)과 청약증거금(114조1066억원)을 모았지만 시장이 기대한 ‘따상(공모가 두배로 시작한 시초가가 상한가 기록·공모가의 2.6배 상승)’에 실패했다. 시초가 59만7000원을 기록한 LG에너지솔루션의 현재 주가는 37만6000(3월 17일 종가)에 머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진 상장철회를 결정하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2월 공모주 청약 ‘대어大魚’로 불리던 현대엔지니어링(1월 28일), 신재생에너지 솔루션 기업 대명에너지(2월 28일), ‘유니콘 특례 1호’로 기대를 모은 신약 개발사 보로노이(3월 16일)는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세 업체 모두 공시를 통해 “수요예측을 실시한 결과 기업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면서 철회 이유를 밝혔다. 업체의 기대만큼 시장이 반응하지 않았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IPO 출사표를 던진 기업들은 완주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주요 기업들의 IPO 현주소를 살펴봤다. 

■마켓컬리-실적과 시기 = 올해 상반기 코스피 시장 상장을 목표로 삼았던 마켓컬리(컬리)는 계획이 지연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고 IPO 절차를 밟아왔다. 상장 시 기업가치가 5조~6조원에 달할 거란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마켓컬리는 아직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조차 하지 않았다. 상장예비심사에만 최소 45일(영업일 기준), 심사청구 이후 실제 상장까지 적어도 4개월 이상 걸리는 만큼 상반기 IPO는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선 “한국거래소가 상장예비심사 청구 전 사전 협의 과정에서 마켓컬리 측에 재무건전성을 보완할 것을 요구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사실이라면 마켓컬리의 재무 상태가 IPO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마켓컬리는 적자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매출액은 9530억원으로 전년(4259억원) 대비 123.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163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를 이어갔다. 

하지만 마켓컬리 측은 “적자가 아닌 시기가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특례상장을 준비 중인 만큼 (한국거래소의 재무건전성 보완 요구는) 사실무근”이라면서 “달라진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좋은 시점을 선택해 상장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한국거래소는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직후인 지난해 3월 유니콘기업(미래형 성장기업)의 국내 시장 이탈을 막기 위해 상장 요건을 완화했다. 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의 경우 별도의 재무요건 없이 코스피 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했다.] 

마켓컬리는 IPO 시점을 다시 조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마켓컬리는 IPO 시점을 다시 조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SSG닷컴-분할과 규제 = 마켓컬리와 함께 이커머스 업계의 ‘대어’로 꼽히는 SSG닷컴은 최근 강화된 ‘물적분할’ 규제 이슈에 발목이 잡힐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가 오는 5월부터 기업이 물적분할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기존 주주보호 정책(소액주주 의견 수렴·반대주주 권리 보호 등)을 마련하도록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주보호 정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엔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기업에 의무를 부과했다. 

이는 LG화학이 2020년 9월 배터리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신설한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하면서 기존 주주(LG화학)에 손실을 입혔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알짜 사업부문을 떼어낸 이른바 ‘쪼개기 상장’ 이후 LG화학의 주가는 지난해 10월 80만원대에서 현재 47만원(3월 17일 종가)으로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2019년 신세계와 이마트의 온라인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출범한 SSG닷컴이 상장 준비과정에서 ‘규제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새어나온 이유다. SSG닷컴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회사 관계자는 “SSG닷컴이 상장할 경우 이마트·신세계뿐만 아니라 그룹 계열사 전체의 가치가 제고되는 만큼 핵심사업만 분할해 상장하는 사례로 보긴 어렵다”면서 “연내 상장 목표는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쏘카-본업과 부업 = 상장예비심사(1월 5일 신청)가 한창 진행 중인 쏘카 역시 우려가 없지 않다. 금융투자협회가 최근 기관의 IPO 수요예측 참여 요건을 강화했는데, 그 첫번째 대상이 쏘카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쏘카가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렌터카 업체라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사진=뉴시스]
쏘카가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렌터카 업체라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사진=뉴시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3월 투자일임업자가 IPO 수요예측에 참여하기 위해선 ▲투자일임업 등록 후 2년 경과·투자일임재산 50억원 이상 ▲투자일임재산 300억원 이상 요건을 갖추도록 했다. 

기관의 수요예측 참여 요건을 강화한 건 수요예측 위규 행위(2019년 19건→2021년 66건)가 가파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례로 1경5203억원의 주문액이 몰린 LG에너지솔루션의 수요예측에선 기관들이 주식을 한주라도 더 받기 위해 자기자본금 이상의 주문금액을 써내는 ‘허수 청약’이 속출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규정은 5월 1일 이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기업부터 적용된다.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 쏘카가 ‘1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혼탁한 시장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지만, 쏘카 입장에선 수요예측 흥행이 어려워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쏘카가 상장예비심사 절차를 통과하더라도 원하는 ‘몸값’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쏘카가 높은 몸값을 받기 위해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이란 점을 강조해야 하지만, 쏘카의 본업은 사실 ‘렌터카’란 시각도 적지 않아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쏘카로선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이라는 점을 시장에 얼마나 어필하느냐가 중요하다. 경쟁사인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 2월 ‘네모(Next Mobi lity) 2022’ 콘퍼런스에서 자율주행 기술, 모빌리티 매핑시스템 등을 선보이며 앞서 나가고 있는 만큼 ‘카 셰어링’ 사업을 기반으로 한 쏘카의 입지가 좁아질 우려도 적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 시장에서 카카오모빌리티, 티맵모빌리티뿐만 아니라 완성차 업체와도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쏘카가 IPO에 성공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라는 얘기다. 

■법적 이슈와 타이밍 = 올해 IPO를 선언한 기업의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법적 이슈’에 발목이 잡히거나 ‘시기를 놓쳐서’ 우왕좌왕하는 곳도 있다. 국내 보험사 빅3 중 하나인 교보생명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 ‘어피너티 컨소시엄’ 간의 법적 분쟁으로 지난해 12월 신청한 상장예비심사가 멈춰섰다.[※참고: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 ‘풋옵션(지분매수청구권)’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제2의 쿠팡’을 꿈꾸던 이커머스 업체 티몬은 지난해 언택트 열풍에 올라타 IPO를 추진했지만, 사실상 시기를 놓쳤다. 티몬 측은 “‘콘텐츠 커머스’를 앞세워 자체 경쟁력을 강화해 올해 다시 IPO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렇다면 올해 IPO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까. IPO를 준비하는 기업으로선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고태봉 리서치본부장은 “금리인상기에는 금융권이 보수화할 수밖에 없다”면서 “기관들이 투자에 앞서 숫자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줄어들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유경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주식시장이 부진할수록 한국거래소는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의 실적 가시성을 좀 더 꼼꼼하게 살필 수밖에 없다”면서 “유리한 시점을 잡으려는 IPO 준비 기업들의 눈치 싸움이 치열해질 전망이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시장, 좁아지는 문틈을 통과할 기업은 누구일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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