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 재무설계 1편
경제권 다툼 일어난 부부
늘어난 자녀 교육비가 발단
습관 된 과소비도 문제

여기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부부가 있다. 사소한 말싸움이 발단이었지만, 근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 뭐든지 해주고 싶은 아내와 이를 과소비로 여기는 남편 사이에 의견 차이가 극심했다. 과연 부부는 금이 간 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리고, 마이너스인 지출도 흑자로 되돌릴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와 한국경제교육원㈜이 위기에 놓인 부부의 이이야기를 들어봤다.

부부 중 한쪽이 경제권을 쥐면 불화로 번지기 쉽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부 중 한쪽이 경제권을 쥐면 불화로 번지기 쉽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부가 다소 거친 말다툼을 시작한 건 6개월 전부터다. 계기는 사소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양정훈(가명·36)씨가 “반찬이 맛이 없다”고 내뱉었던 말 한마디에 아내 이희은(가명·37)씨가 냉랭하게 받아치면서 말싸움이 시작됐다. 예전 같았으면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겨버렸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날 이후 부부는 서로를 헐뜯으며 다툼을 키워나갔고, 3개월 전부터는 아예 대화까지 끊어버렸다. 이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혼 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부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는 건 아들(9)이 눈에 밟혀서다. 자녀에게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다’란 꼬리표를 붙여주고 싶지 않은 건 부부의 공통된 바람이다.

사소한 말싸움이 이혼 얘기가 나올 정도로 격해진 건 왜일까. 근본 원인은 사실 ‘돈’에 있다. 지난해 유치원에 들어간 아들을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아내의 주장에 따라 부부는 태권도·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총 50만원씩 학원비가 다달이 빠져나가면서 가계 상황이 나빠졌고, 이것이 부부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부의 돈관리는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다. 남편은 평소에 경제권이 없는 게 못마땅했는데, 이번 학원비를 빌미로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9살 애한테 50만원씩 학원비를 쓰는 건 과하다”는 게 남편의 주장이었다.

아내는 경제권을 맡길 땐 언제고 이제 와 자신의 결정에 트집을 잡는 남편이 얄미웠다. 안 그래도 형편 때문에 학원을 더 보내지 못해 속이 상했는데, 불난 데 기름 붓듯 남편이 옆에서 훈수를 두기 시작하니 짜증이 솟구쳤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부부는 서로를 향한 미움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남편의 반찬 투정은 부부가 억눌렀던 감정을 터뜨린 기폭제였던 셈이다.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아내와 과한 지출을 줄이고 싶은 남편은 좀처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러다간 정말 이혼을 선택할 것 같다고 느낀 아내는 마지막 수단으로 남편에게 재무상담을 받아보자고 제안했다. 지출이 과한 건지, 어떻게 해야 가계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는 거였다.

그럼 이쯤에서 부부의 가계 상황을 살펴보자. 중소기업에 다니는 부부의 월 소득은 총 550만원이다. 남편이 330만원, 아내가 220만원을 번다. 정기지출은 항목이 꽤 다양하고, 액수가 크다. 공과금 21만원, 통신비 18만원, 정수기 렌털비 3만원, 식비·생활비 140만원, 자녀 교육비 50만원, 교통비·유류비 39만원, 부모님 용돈 20만원, 남편 용돈 40만원, 아내 용돈 40만원, 문화생활비 40만원, 보험료 66만원, 신용카드 할부금 66만원 등 543만원이다.

1년에 걸쳐 쓰는 비정기지출로는 명절비(연 100만원·이하 1년 기준), 자동차 보험료 및 각종 세금(140만원), 여행비·휴가비(150만원) 등 390만원이다. 한달 평균 32만원씩 쓰는 셈이다. 금융 상품은 월 10만원씩 넣는 적금이 전부다. 이렇게 부부는 총 585만원을 쓰고 35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부동산은 빌라(시세 1억5000만원)를 소유하고 있고, 부채는 신용카드 할부금(총 300만원)이 있다.

가계부를 보니 남편이 아내에게 잔소리를 할 만했다. 한달에 35만원씩 적자가 나는 것도 문제지만, 3명이서 한달에 140만원씩 쓰는 식비부터 66만원에 달하는 보험료까지 거의 모든 지출 항목에서 과소비가 심각했다. 그렇다고 부부가 저축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모로 상황이 심각했다.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내가 처음부터 과소비를 했던 건 아니었다. 10년 전,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아내는 아이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맞벌이인 탓에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런 심정 때문에 아내는 음식부터 옷과 장난감 등 뭘 하나를 사더라도 비싸고 품질 좋은 것만 골랐다. 처음엔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다달이 늘어나는 신용카드 고지서 금액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돈은 모으는 것보다 쓰는 게 훨씬 더 쉽다. 소비를 한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내는 어느새 과소비에 익숙해져 있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 남편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긴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란 명분 때문에 아내를 말릴 수 없었다.

현재 상황도 재무설계를 하기에 썩 좋지 않았다. 재정도 나쁜데 부부의 관계까지 최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지출을 줄이려면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뜻을 모아야 하는데, 사이가 좋지 않으니 의견 충돌이 자주 일어날 게 분명했다.

다행인 건 부부가 공통된 재무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부는 자녀 교육비를 확보하고, 더 큰 아파트로 이사가는 것을 꿈꾸고 있다. 남편도 “다른 지출항목에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현재 교육비를 더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혼 얘기를 꺼내긴 했지만 남편도 진심이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렇다고 꼬인 실타래가 모두 풀린 건 아니다. 지출을 줄임과 동시에 부부의 경제권을 어떻게 재설정할 지도 상의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주머니를 움켜쥐고 있으면 다른 한쪽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혼 때부터 지금까지 가계부 관리를 해오던 아내가 순순히 따라줄지는 의문이다. 과연 부부는 위기의 순간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다음 시간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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