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국민연금 제도 불신 높은데
기금운용 수익률 역대 최저
국민연금 개혁 운운하지만
고갈론과 부과식, 오락가락
尹 방향성 갖고 있는지 의문

젊은이들 사이에서 국민연금은 ‘믿을 수 없는 보험’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가 “보험료를 낸 국민이 연금을 못 받을 일은 없다”면서도 툭하면 “기금이 고갈돼 연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고갈론을 꺼내 드는 양면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기금운용 수익률마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기가 떨어져도 연금을 개혁하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은 역대 최저치인 –8.28%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은 역대 최저치인 –8.28%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8.28%. 지난해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이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낮다. 기획재정부는 23일 이런 내용이 포함된 ‘2023년 기금평가 결과’를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기금평가는 국민연금기금을 포함한 24개 기금의 존치 타당성과 그 기금에서 진행하는 총 493개 사업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거다. 기금의 존치 타당성과 사업ㆍ재원구조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금존치평가’와 여유자산 운용 성과와 운용체계ㆍ정책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금운용평가’로 구분된다.

이번 평가를 통해 18개 기금의 60개(12.2%) 사업에서 구조조정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받았다. 2021년 25개(5.1%), 지난해 31개(7.4%)에 비해 개선이 필요한 사업이 크게 늘었다. 먼저 권고의 이유를 상세하게 살펴보자. 

60개 사업 중 8개는 다른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됐다. 대표적인 게 방송통신발전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이다. 평가단은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추세에 따라 정보통신과 경계가 모호하다”면서 “기금을 통합해 사업 중복성을 해소하고 지출을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52개 사업은 지원대상이나 지원방식 등 개선이 필요했다. 예컨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집행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을, 한강수계관리기금은 지방자치단체와 기금 간 비용 부담이 적정한지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18개 기금 중 13개는 여유자금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민체육진흥기금 등 8개 기금은 여유자금이 너무 많으니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을 늘리라는 권고를 받았다. 관광진흥개발기금 등 5개 기금은 여유자금이 너무 적으니 사업 조정과 함께 신규 수입원을 발굴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눈여겨볼 점은 이번 평가를 통해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민연금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이 역대 최저치인 -8.28%를 기록했다는 거다. 마이너스 수익률은 2000년(-0.05%), 2008년(-0.21%), 2018년(-0.89%) 이후 4년 만이다. 

다만 수익률 하락폭이 5대 글로벌 연기금(일본 GPIFㆍ캐나다 CPPIBㆍ노르웨이 GPFGㆍ미국 CalPERSㆍ네덜란드 ABP)보다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이유로 평가 등급은 ‘양호’를 유지했다.

[※참고: 국민연금기금은 여유자금이 100조원 이상이어서 대규모 기금으로 별도 평가한다. 국내에선 유일하다. 2017년부터 규모와 성격이 유사한 글로벌 5대 연기금과 비교하고 있는데, 지난해 5대 연기금 평균 수익률은 –10.55%였다. 나름 선방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국민연금기금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상황에서 수익률까지 떨어졌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미래가 불확실하다. 2020년 국회예산정책처는 보험료를 조정하지 않을 경우 국민연금이 2055년에 고갈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90년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65세가 됐을 때 연금을 하나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1980~2000년 사이에 태어난 일명 MZ세대들이 크게 반발했고, 국민연금공단은 부랴부랴 연금고갈론을 일축했다.

지난해 12월엔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연금을 못 받는 상황을 국가가 내버려 두겠느냐”면서 “기금이 소진되면 적립식(기금을 쌓아놓고 운용하는 방식)이 아닌 부과식(매년 보험료를 걷어 바로바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환되고, 모자라는 부분은 국가가 충당하기 때문에 미래 세대들이 연금을 못 받을 일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월 정부는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를 통해 또 2020년과 똑같은 연금고갈론을 내놓으면서 논란을 키웠다. 정부조차 방향성을 못 잡은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률까지 떨어졌으니 MZ세대가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뜩이나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금운용 수익률까지 떨어지면 MZ세대의 부담은 커지고 혜택은 줄어들 거란 인식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원금을 돌려받자’는 의견에 60% 이상이 동의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연금개혁 논의도 쉽지 않다. 지난 24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 2기가 출범해 첫 회의를 열고 연금개혁 논의에 속도를 내기로 했지만, 그 이면에선 ‘정부가 방향성도 못 잡은 상황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정부는 연금고갈론으로 불신을 부추기고, 연금공단에선 ‘연금 못 받을 일 없다’고 해명한다는 건 연금 제도의 방향성에 일관성이 없다는 방증”이라면서 “국민연금의 정체성이 뭔지,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려야 적정한지, 소득대체율의 소득 기준은 어디에 두고 있는지 등 제도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방향성부터 맞춰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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