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중고시장 황학동의 눈물➊
황학동서 마주한 한국경제 위기
고금리·고물가에 손님 발길 뚝
중고물건 잘 나오지도 않고 비싸
IMF·코로나19 때보다 더 위기

# 3고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가 지속될수록 한국경제가 점점 더 깊은 침체로 빠져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영업자는 외줄을 타듯 위태롭기만 하다. 누군가는 고민 끝에 가게 문을 닫고, 창업을 고민하던 이는 그 시기를 뒤로 미룬다. 

# 황학동 중고시장은 그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며 중고물품을 찾던 이들이 그 돈마저 쓰지 않으면서 황학동엔 전에 없던 침체가 내려앉았다. 하루하루 더 힘겨워지고 있다는 황학동 상권으로 더스쿠프가 들어가봤다. 視리즈 중고시장 황학동의 눈물, 첫번째 편이다.  

자영업의 바로미터인 황학동 중고시장이  깊은 침체에 빠졌다.[사진=연합뉴스]
자영업의 바로미터인 황학동 중고시장이 깊은 침체에 빠졌다.[사진=연합뉴스]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5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로 향했다. 지하철 2호선 신당역 2번 출구로 나와 약 600m를 걷다 보면, 서울중앙시장 뒤쪽에 넓은 상권 하나가 펼쳐지는데 이곳이 황학동 주방·가구거리다. 중고 주방용품·가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상권이다. 

이곳엔 음식점에서 쓰는 작은 식기부터 싱크대, 냉동고, 에어컨까지 없는 게 없다. 번쩍이는 새 제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고다. 폐업한 곳에서 중고물품을 매입한 뒤 잘 고치고 잘 닦아 새롭게 창업하는 ‘신규 사장님’에게 저렴하게 판매하는 게 이 시장의 특색이다. 그래서 이곳을 ‘자영업의 바로미터’라고 부른다. 창업부터 폐업까지 모두 엿볼 수 있는 곳이라서다.

그런 황학동 중고시장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최근 3년간 깊은 침체를 겪었다(더스쿠프 통권 426호 ‘황학동 중고시장 가보니… 새것 같은 중고도 찾는 이 없더라’ 참고). 불황과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견디다 못한 자영업자들이 너도나도 가게 문을 닫았고, 이곳 중고시장엔 매물로 나온 물건들이 차고 넘쳤다.

문제는 그걸 다시 사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갖다놔도 다시 사가는 사람이 없으니 물건은 자꾸 쌓이기만 했다. 그렇다면 사회적 거리가 완전히 해제되고 엔데믹(풍토병·endemic)으로 전환한 지금은 어떨까. 그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황학동 중고시장은 몇개의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그중 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가게 안에서 열심히 냉장식품 쇼케이스를 닦는 이창석(가명)씨가 눈에 들어왔다. “주문 들어온 물건 내보내야 해서 정신이 없다”며 바쁘게 행주질을 하는 그의 옆에서 또다른 상인 박순태(가명)씨가 말을 거들었다.

“나아지긴요. 여기 있는 상인들 다 힘들어요. 자영업자들이 가게를 차려야 이곳도 활기를 띠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창업을 하겠어요. 금리가 너무 많이 올랐어요. 가게 하나 차리려면 은행에서 빚내야 하는데, 고금리에 누가 엄두를 내겠어요. 그래서 여기에도 손님이 하나도 없어요.”

■ 침체 원인➊ 고금리·고물가 = 현재 기준금리는 3.50%다. 국내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2020년 1월까지만 해도 1.25%였던 금리는 이후 0.75%, 0.5%로 인하됐지만, 2021년 8월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해 2022년에만 1.25%(1월)에서 3.25%(11월)까지 뛰어올랐다. 올 1월 또 한차례 인상되며 현재 기준금리는 3.50%가 됐다.


높은 금리 부담 탓인지 올 1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전분기 대비 0.7%, 전년 동분기 대비 0.5% 감소했다. 사람들이 대출을 주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높은 금리는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도,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도 어려움에 빠뜨린다. 

이곳에서 35년째 장사 중이라는 최순미(가명)씨도 금리 때문에 머리가 아픈 사람 중 한명이다. 그는 “냉장고 장사만 35년 했는데, 빚을 져본 게 처음”이라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4000만원을 대출받았다”고 토로했다. 대출금리가 부담스러웠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고금리 부담 탓에 자영업 시장이 위축됐다.[사진=뉴시스]
고금리 부담 탓에 자영업 시장이 위축됐다.[사진=뉴시스]

“지난해부터 최악을 달리고 있어요. 자영업자들이 새로 가게를 내야 우리도 장사를 하는데, 금리는 계속 올라가고, 정부에서 대출 규제까지 하고 있으니 누가 가게를 차릴 수 있겠어요. 그러니 아주 죽을 맛이에요. 저기 봐 봐요. 구경하러 다니는 사람도 없어요.”

예전 같으면 한창 바빠야 할 김만섭(가명)씨도 조용한 날들이 어색하기만 하다. 가게 한쪽에서 중고 에어컨을 수리하고 있던 그는 “계절 장사라 더 더워져야 알겠지만 1년 전 이맘때와 비교하면 손님이 없긴 하다”며 “전반적으로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말했다.

김씨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에어컨도 그렇고, 중고를 사는 이유는 ‘싼맛’이잖아요. 그런데 물가가 오르니 가전제품도 죄다 올랐어요. 에어컨도 신제품 가격이 많이 올랐잖아요. 아무리 중고라 해도 신제품 가격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좋은 중고물건을 구하는 일도 예전만 못하다. 김씨는 “다들 어떻게든 고쳐서 사용하는지 중고물건도 잘 나오질 않는다”면서 “이런저런 이유가 겹치면서 매입가격이 오르니 중고라 해도 예전만큼 저렴하게 판매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30년 넘게 장사했지만 지난해부터 유독 힘드네요. 외환위기(IMF) 때도 이 시장은 잘됐는데 말이죠. 경기가 언제 좋아질까요?”

■ 침체 원인➋ 기나긴 불황 = “IMF 위기 때도 황학동 중고시장은 잘됐다”는 말만 믿고 5년 전 황학동 중고시장에 입성한 홍인교(가명)씨는 난감함이 이를 데 없다. 창업한 이후 사업 때문에 웃은 날이 얼마나 될까. 

“IMF 때는 미국에 있었어요. 미국에서 작게 사업을 하다가 자식들 다 키우고 한국으로 나와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이럴 줄 몰랐습니다.” 가게 앞에 앉아 있는 그에게 하루에 몇번씩 “OOO 있느냐”고 묻는 이들은 있지만, 그것이 구매로까지 이어진 일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IMF 때의 위기와 비교하는 상인은 김씨, 홍씨 말고도 많다. “하루하루 바닥을 경험하고 있다”는 안성만(가명)씨는 “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도 묵묵히 기다리다 보면 내 차례도 한번씩 오고 그랬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다”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역시 이곳에서만 35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황학동 중고시장 터줏대감이다. 이곳에서 IMF를 겪었고, 코로나19 위기도 묵묵히 보냈다. 


그런 그에게도 이번 불황은 심상치 않다. 안씨의 말과 기억에 따르면 많은 기업이 픽픽 쓰러지고, 자영업자들이 신음하던 IMF 때도 황학동 중고시장은 끄떡없었다. “그땐 명예퇴직이 많을 때라 사람들의 주머니가 텅 비진 않았어요. 쌈짓돈 좀 있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괜찮은 물건 찾으면 그걸로 조그맣게 가게 하나씩 차리고 그랬죠. 그런데 요즘엔 아주 메말랐어요. 물건 하나도 나가지 않는 날이 많습니다.” 

상인들은 불안한 정국 탓에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상인들은 불안한 정국 탓에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그의 말처럼 자영업 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IMF가 터진 직후인 1998년 28.2%였던 자영업자 비중은 올 1월 기준 20.1%까지 떨어졌다(통계청). 최저시급, 임대료 등이 쉼없이 오르는 데다 금리와 물가까지 고공행진이니 사람들이 창업을 꺼린 결과로 풀이된다. 

안씨는 “나라가 어수선해서 그렇다”며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장사가 잘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게 순리죠. 경기가 안 좋으면 어떻게든 꾸려나갈 수 있는데 정국이 안정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불안해해요. 그런 분위기에서 누가 투자를 하겠어요.”

황학동이 침체에 빠진 원인은 이것 말고 또 있다. 또다른 이유와 황학동의 미래를 2편에서 더 들여다보겠다. <다음호에 계속>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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