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천태만상 [세태+]
구독경제와 다크 패턴
이탈 막으려는 앱 개발사
해지버튼 꽁꽁 숨겨놓거나
절차 늘려 해지 포기하게 만들어
혜택 알려주려는 의도라지만
정말 소비자 위해서일까

누구나 한번쯤 유료로 구독했던 서비스를 해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업체들이 해지 버튼을 꽁꽁 숨겨두거나 그 절차를 의도적으로 길게 만들어 포기하도록 앱을 디자인했기 때문이죠. 이는 소비자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나쁜 전략인 ‘다크 패턴’의 사례입니다. 더스쿠프가 다크 패턴의 그림자를 직접 체험해 봤습니다.

구독 해지를 어렵게 만든 앱들이 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구독 해지를 어렵게 만든 앱들이 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다달이 요금제를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독 서비스’는 이제 현대인의 삶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OTT·음악·동영상 시청 등 온라인 스트리밍뿐만 아니라 꽃 배달, 정기세탁 등 앱으로 운영하는 오프라인 서비스도 하나같이 ‘구독’을 판매방식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포토샵’ 같은 사진 편집 프로그램이나 저작권이 있는 폰트도 요새는 구독 형태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죠.

구독 서비스의 장점은 ‘가성비’와 ‘편리함’입니다. 큰돈을 들여 프로그램이나 앱을 구매할 필요 없이 한달 비용만 내고 서비스를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사용을 원하지 않을 경우 구독을 중지하면 그만이죠.

이런 장점에 힘입어 이른바 ‘구독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습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25조9000억원이었던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2020년 40조10 00억원으로 4년 새 54.8% 증가했습니다. 3년 후인 2025년엔 1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문제는 구독 서비스가 대중화한 만큼 부작용도 커졌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장점이던 ‘편의성’이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구독 해지’ 문제입니다.

구독 서비스에 친숙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구독 해지’ 버튼을 찾는 데 애를 먹었던 적이 있을 겁니다. 기자도 그랬습니다. 지난 4월 20일, 당시 기자는 취재를 위해 지구에 떠 있는 인공위성을 추적해주는 해외앱 ‘새틀라이트 트래커’를 구독했습니다. 월 1300원의 서비스를 한달간 무료 체험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죠.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취재가 끝난 뒤 구독을 중지하려고 했지만 앱을 아무리 살펴봐도 구독 해지 버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몇시간을 씨름하다 기자는 결국엔 앱이 아닌 ‘구글 플레이’에 문의를 넣어 구독을 해지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도중에 포기하고 방법을 알아보지 않았다면 한달 뒤 유료 결제로 전환돼 돈이 빠져나갔겠죠. 소액이긴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마뜩잖은 상황임에 분명합니다.

이처럼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정보를 통제해 소비자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걸 ‘다크 패턴(Dark pattern)’이라고 부릅니다. 구독 버튼을 꽁꽁 숨겨 해지를 어려워하도록 앱을 디자인한 게 새틀라이트 트래커의 다크 패턴인 셈이죠.

[자료 | 해리 브링널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
[자료 | 해리 브링널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다크 패턴의 유형은 사실 여러 가지입니다. 2010년 다크 패턴을 처음으로 정의했던 영국의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 해리 브링널은 다크 패턴을 총 12개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가격 비교 차단, ▲쇼핑몰 바구니에 상품 몰래 넣기, ▲의도하지 않은 대답 유도하기, ▲비용 숨기기, ▲어려운 서비스 해지, ▲주의집중 분산, ▲감정적인 선택 강요, ▲원하지 않은 개인 정보 공개, ▲의도하지 않은 결과 만들기, ▲콘텐츠인 척 광고 넣기, ▲강제 연속 결제, ▲친구로 위장한 스팸메일 등입니다. 가짓수가 많지만 하나같이 ‘소비자가 원하지 않은 결과를 만든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떤 앱이 소비자를 기만하겠냐 싶겠지만, 예상외로 다크 패턴은 앱 생태계에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100개 앱 중 97개가 1개 이상의 다크 패턴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2021년 6월 기준). 찾아낸 다크 패턴 중 가장 많이 나타난 유형은 ‘원하지 않은 개인정보 공유(53회·19.8%)’였고, 앞서 언급한 ‘해지 방해’도 27회(10.1%)에 달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해외 앱이나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앱에만 국한한 건 아닙니다. 국내 대기업의 앱에서도 다크 패턴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입자 수 1100 만명(2022년 기준)으로 한국인 5명 중 1명이 쓴다는 쿠팡의 ‘와우 멤버십’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 서비스는 쿠팡이 직매입한 제품을 무료로 당일·익일 배송해주는 것으로, 월 4900원을 내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기만하는 다크 패턴

쿠팡 앱에서 와우 멤버십의 구독 해지 버튼은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만, 최종 완료하기 위해선 쿠팡의 기나긴 ‘설득 과정’을 견뎌야 합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먼저 멤버십 관리 페이지에 들어가면 쿠팡 멤버십의 혜택이 길게 나열된 화면이 눈에 띕니다. 쿠팡에서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무료 제공하는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도 있습니다. 이 화면들을 지나쳐야 맨 밑에 조그맣게 그려진 ‘해지하기’ 버튼이 나옵니다. 이 버튼 앞엔 ‘이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해지하기’ 버튼을 누른다고 곧바로 해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쿠팡플레이 무료 시청, 무료 배송 등 앞서 언급했던 내용이 다시 한번 반복돼 화면에 뜹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받고 있는 혜택 포기하기’란 버튼이 또 나옵니다.

[자료 | 더스쿠프]
[자료 | 더스쿠프]

그럼 이 버튼만 누르면 끝일까요? 이 또한 아닙니다. ‘OO님, 해지하신다니 너무 아쉬워요. 해지 즉시 회원 전용 혜택을 모두 잃게 됩니다’란 문구가 한번 더 나옵니다. 여기서 ‘즉시 해지하기’를 눌러야 비로소 해지가 완료됩니다. 이같은 긴 해지 절차는 앞서 언급한 12가지 다크 패턴 유형 중 ‘어려운 서비스 해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KT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지니뮤직’도 해지 절차가 쿠팡과 비슷합니다. ‘해지 신청 버튼’을 클릭한 뒤, 비슷한 내용의 버튼들을 총 4번 더 클릭해야 해지가 가능합니다. 쿠팡과 마찬가지로 버튼이 눈에 띄지 않는 색으로 조그맣게 표시돼 있고, 클릭할 때마다 해지 취소를 유도하는 듯한 다양한 이미지와 문구가 반복해서 화면에 뜹니다.

혹자는 “좋은 혜택을 놓칠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기업들이 구독 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건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구독자 수가 곧 기업 실적과 직결하는 만큼, 기업으로선 탈퇴자를 1명이라도 더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이 소비자를 기만하는 영업형태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해지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수록 탈퇴자 수가 줄어든다면 기업은 이런 방식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들 것”이라면서 “관련 규제를 강화해 소비자가 실수나 착오 없이 거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지 정부도 다크패턴을 잡아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2019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입과 해지·환불 방식에 있어서 사용자를 기만하는 영업형태를 벌였다”는 이유로 국내 5개 음원 서비스 사업자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지난해 5월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눈속임 마케팅, 거짓 후기 등 플랫폼의 소비자 기만행위를 개선하는 걸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내걸기도 했죠.

정부에서도 다크패턴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정부에서도 다크패턴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수록 기업들의 다크 패턴 전략도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엔 정보를 조작하거나 소비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식의 공격적인 유형이 많았지만, 최근엔 언급했듯 구독 해지를 어렵게 만들거나 거래취소·환불 버튼의 직관성을 낮추는 등 간접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크 패턴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합의된 정의는 없다”면서 “피해유형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규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점점 은밀해지는 다크 패턴,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 걸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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