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중고시장 황학동의 눈물➋
인근지역 개발로 상권 작아져
창업 시장도 예전보다 위축
황학동 상인들 대부분 장년층
일 배우러 오는 청년도 없어
그곳에서 본 한국경제의 미래

황학동 중고시장의 상인들은 고금리·고물가 탓에 전에 없던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근지역 개발로 상권마저 작아지고 있다. 손님들 발길이 뚝 끊기자 황학동 상인들은 해가 중천인데도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간다. 視리즈 중고시장 황학동의 눈물 두번째 이야기다.

황학동 상인들은 IMF 위기나 코로나19 때보다도 지금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황학동 상인들은 IMF 위기나 코로나19 때보다도 지금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중고시장 황학동을 침체에 빠뜨린 첫번째 원인은 고금리·고물가다. 높은 금리는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도,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도 어려움에 빠뜨린다. 그러다보니 창업을 하려는 사람도, 창업 준비를 위해 황학동을 찾는 이들도 부쩍 줄었다. 고물가 탓에 싼맛에 사던 중고물건의 가격이 오른 것도 황학동의 침체가 깊어진 이유 중 하나다. 

끝나지 않는 불황도 그들을 한숨짓게 한다. 하루하루 바닥을 경험하고 있다는 황학동의 상인들은 기업들이 줄지어 도산하던 IMF 위기,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됐던 코로나19 때보다도 지금이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에게도 이번 불황은 심상치 않다는 거다.  

■ 침체 원인➌ 좁아진 상권 = 이런 가운데 상권마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황학동 중고시장 중 서울중앙시장과 맞닿은 마장로엔 오피스텔인 ‘힐스테이트 청계 센트럴’ 공사가 한창이다. 2024년 5월에 완공 예정인 이 구역은 과거에 중고가구점, 주택자재 전문매장 등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곳을 지나 마장로9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영미상가’란 간판이 놓인 5차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도 못 보던 건물이 들어섰다. 완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2층짜리 오피스텔인데, 그 옆으론 ‘초역세권 한라비발디, 마지막 5억원짜리 아파트’라는 커다란 홍보문구가 적힌 펜스가 둘러쳐져 있다. 한라비발디는 황학동 2085번지 일대에 연면적 6만1342㎡(약 1만8588평), 총 464세대 규모로 세워질 예정이다.

황학동 상인들은 “상권이 줄어들면서 중고시장 분위기도 침체됐다”고 입을 모았다. 40년째 주방가구 장사를 하고 있는 권영훈(가명)씨는 “저 자리(한라비발디)는 원래 주방가구랑 식기류 판매점이 밀집해 있던 곳”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몇 년 새 많은 상인들이 일을 그만뒀어요. 그 빈자리를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채웠죠. 황학동 상권이 점점 줄어드는 게 눈으로 확연히 보이니까 손님들 발길도 뜸해지는 것 같아요. 군대 제대하고부터 40년을 여기서 일했는데, 이렇게 장사가 안되기는 처음입니다.”

인근지역 개발로 황학동 중고시장 상권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인근지역 개발로 황학동 중고시장 상권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곳에서 제빵기기 장사를 한 지 7년째라는 이영민(가명)씨도 옆에서 말을 보탰다. “차라리 코로나19 때가 더 나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는 폐업하는 만큼 창업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거든요. 나간 만큼 들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창업하는 사람들이 확 줄어들었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중고 매물이 나가질 않으니까.”

실제로 황학동 중고시장의 단골손님인 ‘음식·숙박업’ 창업자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숙박·음식점업 창업기업 수는 2019년 18만5116개에서 2020년 16만6548개, 2021년 16만1283개 등 매년 감소세를 보였고, 지난해엔 15만6489개로 2019년 대비 15.4% 줄었다. 황학동 상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과 통계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아예 손님이 마른 건 아니다. 제법 규모가 큰 가게엔 이따금 물건을 보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 이덕훈(가명)씨는 이날 활어를 넣을 수조를 보러 황학동에 나왔다. “곧 횟집을 차릴 예정이라 다른 집기류들도 보러 자주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가격만 묻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상인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 상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팬데믹 때보단 낫지 않느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저렇게 물어보고 가는 손님들 중 열에 아홉은 견적만 내고 말아요. 실제 물건을 사가는 건 계속 거래를 해오던 기존 고객들입니다.”

■ 황학동의 미래➊ 위축된 자영업 = 박종필(가명)씨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만, 자영업자들의 ‘담’이 예전보다 작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엔 창업을 한다고 하면 가게 규모를 최소 165.2㎡(약 50평) 이상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인지 가게를 크게 내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3.3㎡(약 1평)짜리 카페를 차리겠다는 분들도 수두룩해요.” 설령 황학동을 찾는 손님이 예전보다 늘어났다고 해도 상인들이 그걸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계만 봐도 그렇다. 창업 플랫폼 마이프차의 조사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의 창업비용은 2019년 7480만원(중앙값 기준)에서 2021년 6296만원으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기준면적도 같은 기간 66㎡(약 20평)에서 50㎡(약 15평)로 작아졌다. 창업자본이 감소하거나 가게 면적이 줄어들수록 가구나 주방기구 등에 투자하는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황학동 중고시장 상인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난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전체적인 경기가 가라앉은 데다 물가 상승으로 실질구매력까지 감소하다 보니 한국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서 “그렇다고 물가압력이 충분히 제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를 인하하면 다시 물가가 불붙게 되는 등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 교수는 “이런 상황에선 직접적인 지원도 한 방법”이라면서 “소득이 낮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거나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 등을 같이 모색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학동의 미래➋ 부족한 일손 = 쪼그리고 앉아 청소솔로 냉동고 칸막이를 닦던 황진수(가명)씨는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장사 잘될 때 오전 9시에 나와서 저녁 9시에 문 닫고 나갔어요. 그런데 봐요. 해가 중천인데 벌써 문 닫은 곳도 많아요. 우리는 영업용 냉동고를 취급하고 있어서 여름이 대목인데, 손님이 없어서 해가 훤할 때 퇴근하는 날이 늘었어요. 바깥 경기가 좋아야 중고물건도 사용하는데, 바깥 경기가 말라 있으니 참 힘드네요.”

황씨는 젊은 일손이 없는 것도 황학동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엔 기술 배우러 오는 청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 보기가 참 힘들다는 거다. “다 서비스업종으로 가려고 하지 누가 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하겠어요.” 그러고 보니 이날 만난 상인들 대부분이 30년 이상을 황학동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황학동의 산증인들이었다. 

그들에게 황학동의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그땐 그랬지’로 남기엔 황학동을 둘러싼 침체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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