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실적 부진에 빠진 화장품 톱2
해외시장 다변화와 중국의 덫
중국 리오프닝 효과 있을까
날개 꺾인 K-뷰티의 현주소

# “추락하는 K-뷰티에 날개가 있을까.” 2016년 사드 보복조치, 2019년 코로나19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K-뷰티는 날개가 꺾였다. 그사이 국내 화장품 톱2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미국을 주축으로 삼은 해외시장 다변화 전략을 꺼내 들었지만 중국시장의 부진을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

# 관건은 K-뷰티 톱2가 중국시장에서 제자리를 찾는 건데,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두 기업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털어내야 할 나쁜 변수는 또 무엇일까. 더스쿠프가 K-뷰티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미국을 주축으로 삼은 해외시장 다변화 전략을 꺼내 들었지만 중국시장의 부진을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미국을 주축으로 삼은 해외시장 다변화 전략을 꺼내 들었지만 중국시장의 부진을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중국에 발목 잡힌 ‘K-뷰티’ 브랜드들이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중국을 벗어나 ‘시장 다변화’를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실적은 중국에 좌우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화장품 톱2(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다. 두 회사 모두 지난 1분기 시장의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1분기 매출액은 9136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650억원) 대비 21.6%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579억원에서 643억원으로 59.3% 줄었다. 미국 등 북미 매출액이 같은 기간 80.4%(348억원→628억원) 증가했지만 전체 실적을 끌어올리기엔 부족했다.

무엇보다 ‘따이공代工(중국 보따리상)’이 주를 이루는 면세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4.6% 감소했다. 중국 현지 실적이 악화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매출액도 전년 동기(3792억원) 대비 27.4% 감소한 2752억원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북미나 유럽 시장에선 큰 폭의 성장세가 나타났지만 중국의 경우 판매 채널을 재정비하고 대규모 할인 등 공격적 마케팅을 줄이면서 매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LG생활건강은 어떨까. LG생활건강(이하 화장품 부문 기준)의 1분기 매출액은 7015억원으로 전년 동기(6996억원) 대비 소폭(0.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1.6%(690억원→612억원) 줄었다.

LG생활건강 역시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중국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7. 4%(1900억원→1750억원·이하 교보증권 추정치) 감소한 게 실적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미국 등 해외(중국 제외) 매출액은 1650억원을 기록했다. ‘시장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이 때문인지 증권가에선 여전히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가 많다. 정소연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LG생활건강의 경우 중국 관련 매출 회복 속도가 주가 반등의 중요한 요인”이라면서 “향후 중국 화장품 시장에 활력이 감돌고 여행 수요가 회복하면 (LG생활건강의) 실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소정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내 ‘리오프닝’ ‘설화수 마케팅 본격화’ 등의 영향으로 2분기 성장세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참고: 아모레퍼시픽은 대표 럭셔리 브랜드 ‘설화수’를 리브랜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글로벌 앰배서더로 블랙핑크 ‘로제’를 발탁하고, ‘설화 다시 피어나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올해 3월에는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을 또 다른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하고,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리브랜딩 작업을 시작했다.] 

■ 달라진 시장➊ 로컬 브랜드 = 그렇다면 중국 시장만 열리면, 과거 K-뷰티의 영광까지 되찾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부정적인 전망이 더 많다. 매출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겠지만 2017~2018년 중국 화장품 수입국 1위(중국 해관·수입액 기준)를 차지하던 K-뷰티의 위상까지 되찾기는 어려울 거란 분석이 많다. 

중국 시장의 판세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화장품 주요 소비층인 MZ세대는 ‘애국소비’ 이른바 ‘궈차오國潮’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중국시장 조사기관 아이미디어 리서치(iiMedia Research)가 중국 MZ세대에게 화장품 애국소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결과, 49.6%가 “(애국소비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은 시장도 소비자도 달라졌다. 중국 로컬 기업들은 위탁생산을 통해 기술력을 확보했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소비자와 더 밀접하게 소통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소비자 역시 로컬 브랜드 제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구매하고 있다. 로컬 브랜드를 신뢰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거다.” 중국 시장이 열려도 국내 화장품 기업의 설 자리가 이전 같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K-뷰티 브랜드들이 해외시장 확대 전략을 펼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K-뷰티 브랜드들이 해외시장 확대 전략을 펼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달라진 시장➋ 해외 브랜드 = 문제는 달라진 중국 시장 속에서 국내 화장품의 입지가 좁아진 게 ‘궈차오 열풍’과 같은 외부변수 때문만은 아니란 점이다. 그 속에서도 ‘로레알(프랑스)’ ‘시세이도(일본)’ 등 글로벌 브랜드들은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는 데 성공했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열린 중국 최대 쇼핑 축제 ‘광군절光棍節’엔 중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일본 화장품 브랜드들이 불티나게 판매됐다. 기초 화장품의 경우 프랑스(3개), 중국(3개), 미국(2개), 일본(2개) 브랜드가 판매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한국 브랜드는 순위 안에 한곳도 들지 못했다. 

이는 실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시세이도는 지난해 중국에서 2582억엔(약 1조5388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전년(2474억엔) 대비 6.0% 감소했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선 24.0%나 증가했다. 오랜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고가 화장품 시장을 공략한 게 긍정적인 실적으로 이어졌다. 

■ 해법➊ 다시 R&D = 그렇다면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중국 시장에서 이전의 위용을 되찾으려면 뭘 준비해야 할까. 이정민 대표는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브랜드들은 이미 해외 시장에서 자리 잡은 글로벌 브랜드”라면서 “미국·유럽 시장에 진출해 인정받은 후 중국을 다시 공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은정 동국대(산학협력) 교수는 “글로벌 환경은 예측 불가하고, 어떤 시장에서 어떤 이슈가 터질지 알 수 없다”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어느 시장이든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기존 브랜드나 마케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독자적인 원료, 성분 등을 개발하고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브랜드를 뒷받침할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는 거다.

물론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역시 R&D 투자를 확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기업엔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예를 들어보자. 이 회사의 연구자는 4000여명에 이른다. 전세계 11개국, 20개 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해 R&D 투자 비용은 11억3860만 유로(1조6590억원)로 전년(10억2870만 유로) 대비 10.6% 증가했다. 

시세이도 역시 전세계 6곳의 R&D센터에 1200여명의 연구자를 두고 있다. 연간 3000억원가량을 R&D에 투자하고 있는데, 2023~2025년엔 ‘브랜드 역량 강화’를 위해 9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모두 단기 실적이 아닌 중장기 전략에 기반한 투자다. 반면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지난해 R&D 투자금액은 각각 1211억원, 1534억원에 그쳤다. 

[사진|뉴시스, 자료|더스쿠프] 
[사진|뉴시스, 자료|더스쿠프] 

■ 해법➋ 따이공 조정 = 국내 화장품의 면세점 매출을 늘려주긴 했지만 결과론적으론 브랜드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친 ‘따이공’ 의존도를 이젠 줄여야 할 때란 지적도 나온다. 따이공은 국내 면세점에서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중국 온라인 채널 등에서 할인판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면세점 매출의 1등 공신이지만 가짜제품(가품) 논란, 가격 붕괴 등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이정민 대표는 이렇게 지적했다. “따이공 문제는 모두가 알면서도 용인했던 것이라고 본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수요가 급증하면 되레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도 관리한다. 단기적인 매출을 올리기 위해 더욱 중요한 것(브랜드 가치)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실적 부진을 떨치기 위해 해외시장의 다변화를 택했다. 하지만 중국 시장 없인 부진의 늪에서 탈출하긴 어렵다. 국내를 대표하는 두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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