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예산 미집행의 나쁜 경제학
2022년 미집행 예산 18조원
전년 대비 5조원 이상 증가
부처별 미집행액 기재부 1위
예산 주무부처의 효율성 의문
예산 미집행은 경제에 악영향
국회의 본질적 기능도 무력화
올해 미집행 예산 커질까 우려

예산 낭비는 경계해야 하지만 이미 정해진 예산은 목적에 맞게 최대한 집행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예산 낭비는 경계해야 하지만 이미 정해진 예산은 목적에 맞게 최대한 집행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가계 살림을 꾸릴 땐 수입에 맞춰 지출을 결정한다. 당연히 쓸 돈을 안 쓰고 줄일수록 살림살이가 좋아진다. 그럼 이 논리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아니다. 써야 할 돈(예산)을 쓰지 않는 건 나쁜 경제학의 소산이다. 이는 국회의 예산 심의 권한을 훼손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맘대로 파기하는 것이다. 

# ‘예산 미집행’이란 용어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다는 건 당초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던 사업을 (정부나 지자체가) 추진하지 않았거나 혹은 규모를 줄였거나 그것마저 아니라면 아예 미뤄버렸다는 뜻이다. 정부나 지자체는 지출 계획을 먼저 잡은 후 그에 맞춰 세금을 걷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쓸데없이 세금을 더 걷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계와 달리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미집행이 국민에게 좋을 리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문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을 다 쓰지 않아도 그게 의도한 것인지, 의도치 않은 것인지 알아내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돈줄을 거머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에 ‘예산을 남기라’는 뉘앙스의 구두 지시를 하면 근거를 남기지 않고 지출을 줄일 수 있다. 기재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각 부처로선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 이런 예산 미집행은 공교롭게도 최근의 세수 부족 사태와 연결된다. 윤석열 정부(기재부)는 수십조원의 세수 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지도, 국채를 발행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일부에선 기재부가 예산 강제불용(미집행)을 종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기재부는 “그럴 일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구두로 ‘예산을 남기라’고 지시하면 알 수 없으니 국민으로선 확인할 방도가 없다. 더스쿠프와 나라살림연구소가 예산 미집행의 나쁜 경제학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미집행 예산 규모는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뉴시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미집행 예산 규모는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뉴시스]

“매 회계연도의 세출예산은 다음 연도에 이월해(예산을 다음해로 넘기는 것) 사용할 수 없다.” 국가재정법 제48조 1항에 담긴 내용이다. 2항에 예외를 두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산은 당해 연도에 모두 소진해야 한다’는 걸 명시해 놓은 셈이다.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을 지키라는 건데, 이 기본 원칙은 사실 무너진 지 오래다. 

2022회계연도 기준 중앙정부의 이월액과 불용액(지출액과 이월액을 제외하고도 남는 예산ㆍ순세계잉여금)은 각각 5조494억원과 12조8986억원이었다. 정부가 당초 책정해놓고 쓰지 않은 미집행액(이월액+불용액)이 17조9480억원에 달했다는 얘기다. 2021년 미집행액(12조3322억원)보다 5조원 넘게 늘어났다. 2010년 이후 미집행액이 가장 많았던 2014년(25조4812억원) 이후 최대치다. 

■ 미시적 분석 = 미집행액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보자. 미집행액을 이월액과 불용액으로 구분해서 보면 이월액은 전년보다 1조671억원(26.8%), 불용액은 4조5487억원(54.5%) 증가했다(이하 전년 대비).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나눠서 살펴보면 일반회계 미집행액은 4조6860억원(57.4%), 특별회계 미집행액은 9298억원(22.3%) 증가했다. 

이월액은 특별회계에서 많이 늘었다. 2022년 일반회계 이월액은 2조7933억원으로 5.5% 증가했지만, 특별회계 이월액은 2조2561억원으로 69.0%나 늘었다. 특별회계의 경우 예산액이 2021년 82조2802억원에서 2022년 78조3082억원으로 줄었는데도 이월액이 크게 증가했다. 특별회계의 예산 집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반면 불용액은 일반회계에서 더 크게 증가했다. 특별회계 불용액은 2조8456억원으로 0.3%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일반회계 불용액은 10조531억원으로 82.4%나 증가했다. 

■ 부처별 분석 = 이번엔 정부 부처별로 살펴보자. 미집행액이 가장 많은 곳은 기획재정부(2조7682억원)였다.[※참고: 정부 부처별 미집행액은 일반회계 기준 금액이다. 총 12조8463억원으로 총 이월액은 2조7933억원, 총 불용액은 10조530억원이다.]

부처 전체 미집행액 12조8463억원의 21.5%에 해당한다. 다음으로는 행정안전부(2조3130억원), 질병관리청(1조6295억원), 고용노동부(1조6022억원), 국방부(1조4506억원) 순으로 미집행액이 많았다. 질병관리청과 국방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불용액이 늘어서다. 

이월액이 가장 많은 부처는 국방부(8597억원)였다. 뒤로는 질병관리청(7954억원), 방위사업청(3820억원), 행안부(1190억원) 순이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이월액은 업무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기 구매 과정이 지연되면서 이월액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질병관리청의 경우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불용액이 많은 부처는 기재부(2조7534억원)였다. 행안부(2조2940억원)와 노동부(1조5996억원)도 불용액이 적지 않았다. 불용액이 1조원 이상인 이들 3개 부처의 불용액 합계는 6조6470억원으로 부처 전체 불용액(10조530억원)의 65.1%를 차지했다.

특히 예산 주무부처인 기재부의 불용액이 부처 전체 불용액의 27.4%에 달한다는 건 적절한 예산 집행이라 할 수 없다. 민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안부와 노동부에서 대규모 불용액이 발생했다는 건 그만큼 국민이 행정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미집행의 근본적 이유 = 이처럼 미집행액이 발생하는 원인은 뭘까. 크게 3가지다. 첫째, 애초에 예산을 과다 편성했기 때문이다. 둘째, 사업 계획이 미비해서다. 셋째, 여건의 변화로 사업 추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예산을 편성할 때 수립한 지출 계획이나 국회에서 의결한 내용대로 사업이나 정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거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행한 사업이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산 집행을 독려해야 할 기재부의 미집행 예산이 가장 많았다.[사진=뉴시스]
예산 집행을 독려해야 할 기재부의 미집행 예산이 가장 많았다.[사진=뉴시스]

이 때문에 미집행액은 단순히 ‘돈’의 문제로만 봐선 안 된다. 여기에 숨어 있는 다양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예산을 쓰지 않았다는 건 예산을 확정한 의회의 의결과 다르게 사업 기간을 변경하거나 사업을 포기했다는 걸 의미한다. 애써 예산을 심의해봤자 정부가 제대로 쓰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국회의 본질적 기능이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예산 미집행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파기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예산은 특정한 공공서비스를 일정 규모로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돈’으로 치환해 놓은 것이다.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다면, 약속을 어긴 셈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은 행정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예산 미집행의 부정적 효과는 또 있다.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재정의 3가지 기능은 소득재분배, 자원배분, 경제안정(발전)이다. 예산의 미집행은 이중 자원배분 기능을 무력화한다. 경제안정은 지출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미집행된 예산은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 2023년은 어떨까 = 심각한 문제는 올해 미집행액도 적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의 세수부족 사태로 ‘강제불용’이 발생할 여지가 커서다. 기재부는 “강제불용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강제불용 조치는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공식적인 지시가 아닌 구두지시라면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미집행액이 2022년보다도 많았던 2013년과 2014년에도 강제불용 논란이 있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어 어물쩍 넘어간 적이 있다. 

물론 예산의 운용상 이월이나 불용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다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미집행액이 크게 증가한다는 건 이월이나 불용의 예외규정을 악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미집행액을 줄여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년 반복적으로 이월이나 불용이 발생하는 사업의 경우, 예산 조정 단계에서 적정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관리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특히, 이월의 경우 대규모 투자 사업에서 관행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 연차별 배분 계획을 꼼꼼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시 예산 집행이 부진한 사업은 과감히 불용 처리를 하고, 해당 예산을 다른 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조정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는 거다.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결산심사 기능을 강화해 국회의 의결 사항대로 예산이 집행됐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다음해 예산 심의에 반영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든 국회든 해야 할 일만 잘 하면 예산 미집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정부와 국회가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점이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onjongpil@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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