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사 뛰어든 모듈러주택
건설 환경 변화로 관심 증가
모듈러주택 핵심은 제조
새 패러다임에 걸맞은 역량 필요

주택 건설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모듈러주택이 등장하면서다. 이는 공장에서 방, 주방, 거실 등을 각각의 입방체(모듈)로 제조하고, 이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주택이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이 주택은 건설 분야일까 제조 분야일까. 이 단순한 질문엔 많은 함의가 들어 있다.

전통적인 건축 공법은 공사기간도 길고, 사고 위험도 높다.[사진=뉴시스]
전통적인 건축 공법은 공사기간도 길고, 사고 위험도 높다.[사진=뉴시스]

건축물을 몇몇 입방체(모듈)로 나눠 공장에서 제작한 후, 이를 현장으로 가져와 조립하는 주택. 법적으론 ‘공업화주택’으로 불리는 모듈러주택의 사전적 정의다. 장난감 ‘레고’처럼 모듈을 하나씩 결합해 만든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런 모듈러 주택사업에 최근 대형 건설사들이 줄줄이 뛰어들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9월 포스코건설ㆍ포스코A&C와 ‘모듈러 사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국내외 모듈러 연계사업을 함께 수행함과 동시에 모듈러 상품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ㆍ개발(R&D)까지 공동으로 하기 위해서다. 3사는 모듈러 공법을 앞세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하는 신도시(네옴시티) 프로젝트 수주전에도 함께 출사표를 던졌다. 

2020년 설립한 GS건설의 자회사 자이가이스트(XiGEIST)는 모듈러 공법으로 국내 단독주택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동안 대형 건설사들의 주택 건설 사업이 아파트에 집중돼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코오롱글로벌 역시 모듈러주택 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2020년 6월 자회사 코오롱이앤씨를 설립해 모듈러주택 수주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의 시장 전망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 한국철강협회와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아주대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한 시장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은 1457억원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모듈러 공법이 전체 주택 시장의 1.0%만 점유해도 2030년 모듈러 건축 시장은 2조2000억원(연평균 성장률 35.2%)으로 커질 전망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모듈러주택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경영환경이 변했다. 기후위기 대응이 필수인데, 건설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건 전통적 공법은 ‘자재 낭비’란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목재 하나를 써도 넉넉한 크기로 주문했다가 현장 상황에 맞춰 잘라내기 일쑤다. 자투리가 생기면 그 자체가 탄소배출로 이어진다. 반면 모듈러 공법은 규격화한 모듈에 맞춰 자재를 주문하기 때문에 자재를 낭비할 우려가 줄어든다. 

둘째 이유는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현장에서 사망사고 발생 시 최고경영자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사망사고 1위 업종인 건설업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위험 공정이 대폭 줄어든 모듈러 공법을 건설사가 선호할 수밖에 없다.

대형 건설사들이 자회사를 앞세워 모듈러주택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사진은 자이가이스트의 모듈러주택.[사진=GS건설 제공]
대형 건설사들이 자회사를 앞세워 모듈러주택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사진은 자이가이스트의 모듈러주택.[사진=GS건설 제공]

모듈러 공법에 대형 건설사가 관심을 쏟는 이유는 또 있다. 공사기간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각종 내장재와 배선 등을 넣어 제작하고, 현장에서 이를 조립만 하면 끝이어서 날씨 등 환경적 변수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 결과, 공기工期는 물론 공사비도 감축할 수 있다. 건축물을 해체하면 일부 재활용도 가능하다.  말하자면 기존 건축 공법과는 전혀 다른 공법이 주택 건설 시장에 등장한 셈이다. 중요한 건 건설사들이 모듈러주택을 통해 건설 시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느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만은 않다. 사례 하나를 보자. 

사실 모듈러 공법이 건설 시장에 들어온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이미 2003년 서울 신기초등학교에 처음 모듈러 공법이 도입됐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독신자 숙소나 군 시설 등에 적용됐다. 2010년부터는 국토교통부가 연구ㆍ개발(R&D) 과제를 내 추진하기도 했다. 건설사들이 모듈러주택 시장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때쯤이다. 

당시 가장 먼저 이 시장에 진출한 곳이 SK건설 자회사 SK D&D였다. 이 회사는 2009년 12월, 단독주택 브랜드이자 모듈러주택인 ‘스카이홈’을 출시했다. 고성능 단열재, 고효율 창호, 재활용이 가능한 자재를 사용해 일반 아파트보다 열효율을 50%나 끌어올렸지만, SK D&D는 스카이홈을 출시한 지 2년도 채 안 돼 사업을 접었다.

회사 관계자는 “정확한 이유를 밝힐 수는 없지만 2012년 즈음에 해당 사업을 접었고, 현재 모듈러주택 사업은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SK D&D가 시장의 개척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사업을 그렇게나 빨리 접은 이유는 뭘까. 

지난해 모듈러 건축 시장의 개선 과제를 연구해 보고서를 발표한 유일한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짐작했다. “모듈러 공법은 공장에서 모듈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제조의 역할이 70~80%고, 건설의 역할은 20~30%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시엔 모듈 생산을 위한 자동화 설비를 제대로 갖춘 곳이 없었다. 생산 설비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던 거다. 건설업계에 모듈러 건축 시장이 커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듈러 건축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건설이 아닌 제조’이기 때문에 모듈러 주택이 성공하려면 ‘제조업에 걸맞은 공정’이 필수라는 얘기다. 건설사로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건데, SK D&D는 그 정도의 준비 없이 새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쓴잔을 마시지 않았겠느냐는 게 유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실제로 2020년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모듈러 공법이 시장의 주목을 받은 2010년 이후 건설사들은 종종 모듈러 공법을 현장에 적용했는데, 숱한 문제가 도출됐다.

예컨대 모듈러 공법의 경우 모듈 제조업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제조사가 설계단계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최종 완성된 모듈이 현장에서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다. 제조업의 법적 요구에 맞춰 생산한 모듈을 현장에서 무시하고 변형하는 바람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제조업의 핵심인 규격화와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다.

이런 실패사례를 보면, 건설업계가 모듈러 주택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제조업’으로 발을 넓혀야 한다. GS건설의 자이가이스트가 모듈을 직접 생산하는 설비를 갖추고 나서야 모듈러주택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코오롱글로벌의 코오롱이앤씨도 마찬가지다. 코오롱이앤씨 관계자는 “2024년이면 모듈 생산 설비를 갖출 것”이라면서 “그 이후엔 더욱 공격적으로 모듈러주택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럼 건설사가 제조 능력을 갖추면 모듈러 주택 시장이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을까. 확답을 하긴 어렵다. 유일한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조언했다. “공공발주가 나오고 있고 건설사들이 뛰어들고 있는 만큼 시장은 분명 커질 것이라 본다. 그런 만큼 그에 맞는 법과 제도를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모듈러주택의 특징을 고려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가령, 천장이 곧 바닥이 되는 아파트와 달리 층수를 올리면 천장과 바닥이 중복된다. 그 문제를 용적률 상향 조정과 같은 현실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줘야 한다. 또한 모듈러주택 시장이 커지면 자연히 기존 건설 시장의 기능인력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중소 협력사들의 역할도 줄어든다. 이를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모듈러주택의 디자인적 한계(박스 형태)를 극복할 건설사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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