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편의점 고질병➊ 거리제한
편의점 앞 편의점 가능한 이유
편의점 업계 자율규약의 허점
담배소매인 지정거리 50m
그마저도 지자체별 제각각
근접 출점, 가맹점에 직격탄

편의점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맹점주의 수익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편의점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맹점주의 수익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가자 바로 건너편에 새로 생긴 편의점이 보인다. 도로 하나만 건너면 된다. 편의점 간 직선거리는 40m에 불과하다. 50~100m인 편의점 출점 거리 기준에 못 미친다. 이대로라면 편의점 업계 자율규약 위반이다.

# 그런데 어디에 물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자율규약에 따른 출점 거리 기준이 직선거리가 아닌 도보거리여서다. 보행로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측정한 도보거리는 105m. ‘있던 편의점’도 ‘새로 생긴 편의점’도 마주 보고 경쟁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놓였다.

# 그렇다고 “왜 직선거리가 기준이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다. 무단횡단을 하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아서다. 결국 중요한 건 “직선거리 40m냐, 도보거리 105m냐”가 아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편의점 업계 자율규약이 가맹점주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구속력 없는 약속인 데다, 3년짜리 ‘한시책’일 뿐이다.

# 주먹구구식 자율규약은 누굴 위한 것일까. 편의점 본사를 위한 것일까 점주를 위한 것일까. 더스쿠프가 視리즈 편의점 고질병을 통해 편의점 공화국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편의점 근접 출점으로 피해를 입는 점주들이 늘자 편의점 업계는 자율규약을 체결하고 점주와의 상생을 약속했다. 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편의점 근접 출점으로 피해를 입는 점주들이 늘자 편의점 업계는 자율규약을 체결하고 점주와의 상생을 약속했다. 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국내 편의점은 5만개가 넘습니다. 편의점 업체들이 출점 경쟁을 치열하게 벌인 결과입니다. 편의점 본사로선 점포를 열면 매출이 증가하니 더 많은 편의점을 열고 싶은 게 당연할지 모릅니다. 문제는 점주입니다. 경쟁 점포가 많아질수록 점주의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 코앞에 새로운 편의점이 들어선다면 어떨까요. “다 그렇게 경쟁하는 것”이라면서 웃어넘길 수 있을까요. 

경기도에서 7년째 A편의점을 운영해온 박민국(가명)씨는 최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박씨의 점포 바로 앞길 건너편에 다른 브랜드인 B편의점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 40m 앞에 경쟁자가 들어선 겁니다.

인근에 편의점이 생길 때마다 매출에 타격을 입어온 박씨로선 매출 감소가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편의점이) 공장 지대에 있는데 경기 악화로 공장 가동이 줄어 야간엔 매출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바로 앞에 편의점이 들어서면 같이 죽자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오른 인건비에 임대료, 전기세를 내고 나면 적자인 상황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사 측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현재로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본사가 별다른 해법을 주지 못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새로 들어설 B편의점이 법을 지키지 않거나 불공정하게 출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편의점 업계는 2018년 과도한 출점 경쟁을 자제하고 가맹점주와 상생을 도모하겠다면서 ‘자율규약(편의점 산업의 거래 공정화를 위한 자율규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국내 편의점 수가 4만개를 넘어서면서 편의점들의 무분별한 출점 경쟁에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기 때문이죠.

그렇게 체결된 자율규약엔 출점과 관련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다른 브랜드 편의점이 운영 중인 지역에 신규 가맹점을 출점할 경우 상권의 입지와 특성, 유동인구수, 담배소매인 지정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출점 여부를 신중히 결정한다.” 

그렇다면 박씨의 사례처럼 코앞에 경쟁사 편의점이 출점하는데 어떻게 자율규약 위반이 아닐 수 있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편의점 출점 거리 기준이 되고 있는 ‘담배소매인 지정거리’의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배를 판매하는 ‘담배소매인’ 영업소 간 거리를 ‘50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지자체장이 세부 규칙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편의점 업계 자율규약은 이 담배사업법을 준용하고 있습니다. 

■ 담배권의 허점 = 다시 박씨의 사례로 돌아와 볼까요. 박씨의 편의점이 위치한 지역의 경우,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담배소매인 거리 제한이 100m 이상으로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박씨가 운영하는 A편의점과 새로 생길 B편의점은 불과 40m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B편의점이 자율규약을 어긴 게 아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담배소매인 지정거리가 ‘직선거리’가 아닌 ‘도보거리’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참고: 담배소매인 영업소 간 거리 측정은 도로교통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보행자 통행로를 따라 최단거리로 측정합니다.] 


두 점포 간 직선거리는 40m에 불과하지만 도보거리는 105m입니다. 언급했듯 이 지역의 담배소매인 지정거리 기준은 도보거리 100m 이상이고, 이 기준을 넘어섰으니 당연히 출점이 가능합니다. B편의점으로선 지자체로부터 담배소매인 지정 허가를 받았고, 자율규약을 지키면서 편의점을 출점한 셈이죠.

■ 거리와 매출 상관관계 =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박씨는 새로 들어설 B편의점 점주와 이야기하고 싶다며 점포에 현수막까지 붙였습니다. 그는 “(B편의점 점주에게) 우리 편의점의 매출 정산서도 보여줄 수 있다”면서 “코앞에서 경쟁하는 건 가맹점주들만 죽어나가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박씨의 우려는 기우가 아닙니다. 숱한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진 사실이죠.

경기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편의점 근접출점 실태 및 규제정책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내 편의점 가맹점주 60.9%가 “인근 신규 편의점 출점으로 매출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월평균 매출액은 신규 편의점 진출 이전 대비 23.0%(평균 간격 94.9m) 감소했죠. 박씨가 밤잠을 못 이루고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새로 장사를 시작할 B편의점 점주에게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B편의점 본사의 상권 분석 등을 믿고 출점하는 건데 장사 시작 전부터 나쁜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으니까요. 

기존 점주도 새 점주도 불편한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건 편의점 출점 거리 기준이 수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업계 간 ‘자율규약’으로 맺어져 강제성도 없습니다. 담배사업법을 준용해 담배소매인 지정거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마저 도보거리 기준인 탓에 코앞에 새로운 편의점이 문을 열어도 기존 점주를 보호할 수 없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 자율규약의 허점 =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자율규약을 왜 체결하게 됐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각 편의점 업체는 나름의 출점 기준을 두고 이를 ‘정보공개서(공정거래위원회)’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사 가맹점이나 직영점을 출점할 경우, 기존 가맹점과 250m 간격을 두도록 해 가맹점주의 영업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사 매장과의 간격은 합의하지 않은 탓에 무분별한 출점 경쟁이 일었습니다. 당연히 가맹점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가맹점주의 수익성은 악화했죠. 2018년 편의점 업계가 자율규약을 맺은 배경입니다. 

그중 담배소매인 지정거리 기준은 상권·유동인구 등 다양한 출점 고려 사항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렇게 두루뭉술한 기준이 생긴 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판단 때문입니다. 공정위는 점포 간 거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건 ‘담합’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결국 편의점 업계는 담배사업법을 준용해 출점하는 자율규약을 체결했습니다. 

편의점 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포 간 매출 잠식 폭도 줄어든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숱하게 많다.[사진=연합뉴스]
편의점 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포 간 매출 잠식 폭도 줄어든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숱하게 많다.[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 담배소매인 지정 거리 제한마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점입니다. 담배사업법은 기획재정부가 관할하지만, 세부 규정은 각 지자체에 맡기고 있죠. 이 때문에 지역마다 편의점 출점 기준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경기, 제주 일부 지역에선 담배소매인 거리 제한이 100m로 확대됐지만 그 외 대부분의 지역에선 50m에 불과합니다. 이는 ‘풍선효과’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낳았죠.

이 때문에 수도권보다 유동인구가 더 적은 충청, 전라, 경상 지역에 되레 더 좁은 간격으로 편의점이 출점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언급했듯 담배소매인 거리 기준이 직선거리가 아닌 도보거리를 기준으로 한 탓에 박씨의 사례처럼 코앞에 경쟁사가 출점하는 경우도 숱하죠.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이 이야기는 視리즈 편의점 고질병 두번째 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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