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팬데믹 끝났지만 골목상권 위기
자영업 살릴 정책 쏟아졌지만
실질적 효과 있었는지는 의문
매출 증대 위한 효과적 방안 절실
‘구독’ 도입한 신주쿠 사례 참고할 만

골목상권이 구독경제를 도입하면 활기가 돌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골목상권이 구독경제를 도입하면 활기가 돌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 월 4500원짜리 ‘구독 서비스’를 구입했다고 치자. 같은 골목에 있는 펍, 카페 등에서 각각 1잔씩 주류나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이 구독 서비스는 골목상권 사장님들에게도 유리하다. 월 구독료가 들어왔으니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된다. 남은 건 자신들의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만이다. 이 역시 마케팅이다. 

# 이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구독경제를 도입한 일본 신주쿠新宿에 있는 작은 쇼핑몰의 실제 사례다. 어떤가. 팬데믹, 경기침체, 고물가 등이 이어지면서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 골목상권에 도입할 만한 서비스다.

# 더스쿠프가 이 흥미로운 플랜을 서울벤처대학원대 구독경제전략센터장인 전호겸 교수와 함께 만들어봤다. 이름하여 ‘우리 골목 구독할래요?’이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자영업자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누적된 피해를 복구하지도 못했는데, 손님들은 인플레이션과 내수 침체 장기화로 지갑 열기를 꺼린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63.4%는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고 답했다. 순이익이 감소했다는 자영업자 응답률(63.8%)도 비슷했다. 평균적으로 매출은 9.8% 감소, 순이익은 9.9% 줄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도 평균 매출이 13.3%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영업자들은 2년째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거다. 

이러니 3년 내 폐업을 고려하는 자영업자가 40%가 넘고, 빚더미에 눌린 사장님이 가파르게 늘어난 건 당연한 일이다. 올해 1분기 자영업자의 대출잔액은 1033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대출받은 자영업자 차주의 수(313만3000명) 역시 최대치를 경신했다.

빚만 늘어난 게 아니다. 같은 기간 대출 연체율은 1.00%로 직전 분기(0.65%)보다 0.35%포인트 상승했다. 이런 통계는 한국경제에 던지는 함의가 크다. 우리나라는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20%에 달한다. 

자영업자들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상당했다.[사진=뉴시스]
자영업자들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상당했다.[사진=뉴시스]

비중이 큰 만큼 이들의 어려움이 장기화하면 한국경제 밑단이 흔들릴 수 있어 세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간 정치권에선 자영업자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이들의 처지를 고려하면 더 많은 대책이 시급하다.

사실 자영업자를 웃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름 아닌 매출의 선순환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 받는 재미로 산다. 하지만 쉽지 않다. 언급했듯 경기침체와 고물가가 겹치면서 손님들이 어지간해선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조금 생소한 방법론을 꺼내고 싶다. 자영업자 산업에도 ‘구독경제’를 도입해 보자는 거다. 

■ 골목과 구독의 접점 =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의 주요 사업모델인 구독을 골목상권에 도입하자는 게 생뚱맞은 제안처럼 들릴 수 있다. 현재 구독경제는 동영상ㆍ음악 같은 콘텐츠부터 의류ㆍ화장품ㆍ식품ㆍ자동차 같은 상품까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는데, 대개 대기업이나 혁신기업이 추진한다. 일정 비용을 받고 주기적으로 제품ㆍ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고도의 경영 전략이 필요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자영업자와 구독경제는 제법 어울린다. 일본 도쿄의 대표 상업지역인 신주쿠新宿 골목에 있는 한 쇼핑몰의 사례를 살펴보자. 2020년 9월 일본의 한 식품 마케팅 기업은 이 쇼핑몰에서 영업 중인인 여러 음식점을 모아 특별한 실험을 벌였다.

웹사이트나 앱에서 월 500엔(약 4500원)의 ‘드링크패스’를 구입하면 해당 가게들을 방문했을 때 음료 1잔을 각각 무료로 마실 수 있는 마케팅을 진행한 거다. 드링크패스를 구입한 소비자는 낮에는 카페에서 음료 한잔을 무료로 마시고, 밤에는 다른 식당에서 음료를 또 서비스로 받는 혜택을 누렸다. 

드링크패스 도입 효과는 쏠쏠했다. 매달 내야 하는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데다, 같은 상권의 여러 가게에서 음료수를 서비스로 누릴 수 있으니 제법 많은 시민이 드링크패스를 구입했다. 이 독특한 구독 서비스를 도입한 가게도 함께 웃었다. 방문객이 부쩍 늘었고, 매출 증대 효과도 있었다. 고객들이 음료비용을 아낄 수 있다 보니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고 음식을 더 많이 주문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모델은 우리나라 골목상권도 쉽게 도입할 수 있다. 하나의 골목상권으로 묶여 있는 여러 가게가 협약을 맺은 뒤 월정액으로 구독권을 설계하고 관련 제품을 할인하거나 서비스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가게들이 뜻을 모으면, ‘골목 멤버십’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골목에 구독 멤버십을 도입하는 걸 고려하는 상권은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골목에 구독 멤버십을 도입하는 걸 고려하는 상권은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사례에서 보듯 구독경제는 의외로 골목상권에 적용할 만한 여지가 많다. 그 원리도 골목에 적합하다. 구독은 기본적으로 선불제다. 제품과 서비스를 받기 전에 고객은 미리 구독료를 지불한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안정적인 수익원이란 점에서 구독 서비스는 안성맞춤이다. 새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의 관심을 끌면 마케팅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아울러 구독경제는 신뢰를 축적해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미리 돈을 내는 만큼 고객은 서비스를 신뢰할 수 있는 곳과 거래하길 원한다. ‘뜨내기장사’가 아닌 ‘단골 장사’에 적합한 사업이란 얘기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골목상권이 그렇다. 지역주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상권이 대부분이어서 ‘단골 마케팅’에 적합하다. 

구독경제의 핵심 경쟁력이 ‘차별화한 경험’이라는 점도 골목상권에 유리하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처럼 구독 서비스는 그곳을(매장이든 온라인 플랫폼이든) 찾은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줘야 성공한다. 

우리네 골목가게 가운덴 얼핏 평범하고 낡아 보여도 그 속에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녹아있는 곳이 적지 않다. 이런 콘텐츠를 멤버십 서비스에 잘 버무린다면 특별한 구독 경험을 선사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 풀어야 할 과제 =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같은 상권에 묶여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가게가 공동의 멤버십을 구축하는 게 어려울 겁니다. 장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죠. 지금껏 ‘혼자’ 장사해 왔는데,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을 게 분명해요.” 이해할 만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필자에게 골목상권의 구독서비스 구축을 자문한 지자체와 단체는 이미 숱하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거다. 다만,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는 것처럼 골목상권에 구독경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서비스를 쉽게 구독할 수 있는 홈페이지가 있어야 한다. 자체 배송 시스템도 갖춰놓는 게 좋다. 

문제는 우리나라 골목상권에 이런 인프라가 있을 리 없다는 점이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골목 사장님들에게 홈페이지나 배송 시스템을 만드는 건 언감생심이었을 게 분명하다. 우리 정부와 지자체가 좀 더 혁신적인 발상을 갖고 ‘골목상권의 디지털화’에 힘을 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골목 구독경제가 크게 활성화한 미래는 다음과 같다. “골목가게 사장님은 가장 시급한 안정적인 수익원을 얻을 수 있고, 예측가능한 경영 계획을 짤 수 있다.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믿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골목상권과 우리 이웃을 지킬 수 있다.”

얼마 전 신세계그룹이 통합 유료 멤버십인 ‘유니버스 클럽’을 선보이면서 대형 유통기업 사이에서도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얼마든지 특화한 ‘구독 경험’을 선물할 수 있는 골목가게들이 이 경쟁에 뛰어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구독 시스템’만 잘 설계하고, 골목상권 사장님들의 뜻만 맞는다면, 좋은 혁신 사례를 남길 수 있다. 과연 어떤 골목이 먼저 기회를 잡을까.  

전호겸 교수  
kokids77@naver.com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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