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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리시 수낵 영국 총리
탄소중립·상속세폐지 들고나와
횡재세·증세 대응해도 성장 실패
정치적 승부수로 국면 전환 꾀하나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느닷없이 환경 정책을 뒤집고, 상속세 폐지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경제가 경쟁력을 되찾지 못하면서 집권 보수당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조기 총선으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문이 나돈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 21일 14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사진은 맨체스터의 한 상점가. [사진=뉴시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 21일 14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사진은 맨체스터의 한 상점가. [사진=뉴시스]

영국의 보수당 정부가 잇달아 예상치 못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9월 셋째주 친환경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이번주엔 수낵 총리가 들고 나온 상속세 단계적 폐지계획의 밑그림이 드러났다. 

하나씩 살펴보자. 수낵 총리는 지난 9월 20일 탄소중립 정책을 대거 폐지하거나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휘발유·디젤 내연기관 차량 퇴출 시기는 2035년으로 5년 미뤘다. 2026년부터 금지하기로 했던 주택 독립형 가스보일러 설치는 2035년 이후로 연기했다.

주택 건설시 단열재 기준을 높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계획은 폐지했다. 가정용 쓰레기 재활용 정책,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육류 소비 축소 계획도 없앴다. 유럽연합(EU) 등 유럽의 강경한 탄소중립 의지에 비춰보면 영국은 사실상 친환경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렸다고 봐야 한다. 


수낵 총리가 10월 발표할 상속세 폐지안도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보수당은 현재 유산이 32만5000파운드를 넘으면 초과분에 기본 세율 40%를 적용하는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축소해 폐지할 계획이다. 

상속세는 환경 정책과 함께 대표적인 정치적 논쟁거리다. 영국의 상속세 부과 대상은 3.73%로 극소수지만, 영국인들의 절반가량(48.0%·텔레그래프 6월 설문조사)은 “상속세가 가장 불공정한 세금”이라고 여기고 있다.

상속세 관련 논쟁을 의식해서인지, 영국은 2015년 세법을 개정해 49만 파운드(약 8억원) 이하의 거주 주택은 공제하는 방식으로 상속세를 내지 않도록 했다. 부모가 거주하던 주택의 공제액은 17만5000파운드인데, 부동산 가격이 49만 파운드라면 기본 상속세 기준액인 32만5000파운드를 넘지 않는다. 

[자료 | 입소스]
[자료 | 입소스]

2016년 웨스트민스터 공작인 제럴드 그로스베너가 사망하면서 상속세 제도의 허술함이 증명되기도 했다. 아들인 휴 그로스베너가 90억 파운드 재산 대부분을 신탁을 통해서 넘겨받아 상속세를 거의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낵 총리 역시 상속세 폐지로 약 3억 파운드의 상속세를 면제받을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보수당이 논란을 감수하고 정책의 방향을 갑자기 튼 건 영국 경제가 최악의 상태를 맞은 상태에서 가깝게는 올 10월 하원 보궐 선거, 길게는 2024년 말 하원 총선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의원내각제지만 지난해까지는 하원 총선을 5년 주기로 하고, 조기 총선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허용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고정 임기를 보장하는 의회법을 폐지해 이제 총리가 국왕에게 의회 해산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조기총선을 자유롭게 치룰 수 있다. 수낵 총리의 최근 행보가 조기 총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가디언 칼럼니스트인 사이먼 젠킨스는 25일(현지시간) 수낵 총리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고속철도 노선을 정치적 이유로 고집한다고 꼬집으며 “수낵이 내년에 총리직을 마칠 때 자랑스러운 기억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조기총선 가능성을 언급했다. 

영국 시장조사 회사 입소소의 지난 6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5.0%가 향후 12개월 동안 영국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 9월 입소스 설문조사에서는 정부가 일을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80.0%, 수낵 총리의 비호감도가 49.0%에 달했다. 정당 지지도는 9월 여당인 보수당이 24.0%, 야당인 노동당이 44.0%다. 

보수당 지지도는 2021년 9월 야당에 추월당했다. 지난해 10월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취임 직후 재원 대책이 빠진 430억 파운드 규모의 감세안을 밀어붙이다가 45일 만에 낙마한 후 보수당 지지도는 급격하게 하락했다. 

이어서 등판한 수낵 총리가 보수당 가치와 반대되는 정책을 쓰면서까지 기울어져 가는 영국 경제를 되살리려 했지만 실패하면서 지지도 차이는 더 벌어졌다. 수낵 총리는 지난해 전력회사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에너지 기업들의 법인세를 올해부터 25.0%에서 35.0%로 대폭 늘렸다. 총리가 직접 유통업체들을 압박해 가격 하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수낵은 물가 상승률을 절반으로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했다. 

영국 경제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총리가 환경·세금 등 정치적 문제로 관심을 돌린 이유는 아직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 매체 스카이 뉴스는 “수낵 총리는 2019년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이 사용한 케이키즘(현실과 상관 없이 좋은 것을 다 가지려는 불가능한 정치적 언어를 뜻함)으로 유권자들을 다시 묶고 싶어한다”며 “총리가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고 보도했다. 최근 네번의 총선에서 보수당은 36.1%, 36.9%, 42.4%, 43.6% 득표율로 정권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사진=뉴시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사진=뉴시스]

그럼 영국 경제가 얼마나 좋지 않으면, 총리가 24.0%의 정당 지지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조기 총선을 치르려는 걸까. 영국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분기 0.2%, 2분기 0.4% 성장에 그쳤다. 지난해 3·4분기에 각각 2.0%, 0.6% 성장한 것보다 악화했다.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영국은 G7 국가들 중에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경제 위기라는 독일도 올해 2분기에 2019년 4분기 대비 0.2% 성장했는데, 영국은 -0.2%로 역성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7월 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0.3%에 그치고, 2024년에도 0.8%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지난 9월 21일 14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5.25%로 동결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상 중단에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했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와 올해 초 10%를 넘나들다가 지난 8월 6.7%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BOE의 목표치인 2%의 3배가 넘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도 21일 “BOE가 금리를 동결하며 영국 총리의 재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문제(경제)에 희소식을 줬다”고 꼬집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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