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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하면 국민 행복 커질까
이스털린의 역설 ‘경제성장≠행복’
높은 소득 장기적으론 행복과 무관
타인과 비교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
1% 저성장 시대에 행복해지려면

경제학자들은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한다고 국민들의 행복도 항상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성장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국민의 행복도는 어떻게 될까.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진=뉴시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진=뉴시스]

한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은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많은 경제학자가 성장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을 지내고,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벤 버냉키도 이 관계에 많은 관심을 보인 학자 중 한명이다.

버냉키는 연준 의장으로 일하던 2010년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을 방문해 졸업 축사를 했다. 연설의 제목은 ‘행복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Happiness)’이었다. 

버냉키는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갖는 것이 대학 진학의 주요 이유 중 하나지만, 부는 상대적”이라며 돈을 직업 선택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충고했다. 버냉키는 “부는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높은 소득이 처음엔 즐거워도 곧 익숙해지면서 즐거움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행복과 돈의 관계는 ‘이스털린의 역설’에서 더 잘 드러난다.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5년 발표한 논문에서 “국가의 소득이 증가해도 장기적으론 국민의 행복도가 함께 커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스털린은 소득 증가로 인한 행복 증가는 특정 시점(횡단면)에선 보이지만, 장기간(시계열)으로 관점을 바꾸면 관측되지 않는다고 봤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순간, 소득을 향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행복도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2010년 이스털린은 ‘행복-소득 역설의 재검토’란 논문에서 한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논문의 내용은 이른바 ‘이스털린 역설’이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돌아선 나라들 사이에서도 통용된다는 거다.

이스털린은 “행복은 경제가 쪼그라들 때 감소하고, 팽창할 때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최소 10년 이상 시간이 흐르면 국가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도는 커지지 않는다”고 재확인했다. 

이스털린은 이 논문에서 1980~2005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한 중국과 한국·칠레를 주목했다. 중국의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두 배 상승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년, 한국은 13년, 칠레는 18년이었다.

이스털린은 “중국과 칠레는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삶의 만족도가 통계적으로 의미 없는 수준에서 약간 감소했고, 한국은 조금 증가했다”며 “경제성장이 더 큰 행복으로 가는 주요 경로가 아니다”고 결론내렸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4%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4%다. [사진=뉴시스]

경제성장도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데, 경제의 후퇴는 행복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 질문의 답은 지난해부터 미국·호주·뉴질랜드 슈퍼마켓에서 절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9월 27일 미국소매협회(NRF)는 뉴욕 등 미국 대도시에 위치한 타겟이나 크로거와 같은 대형마트에서 절도가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절도로 의심되는 ‘수상한 재고 감소’는 2021년 939억 달러에서 지난해 1121억 달러로 늘어났다.

NRF에 따르면 달러트리란 매장은 도난이 잦은 남성용 속옷과 같은 상품을 매장에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 27일 블룸버그는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일상 용품 가격이 상승해 절도가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뉴질랜드에서 식료품 등 생활용품 절도가 만연하면서 10월 총선에서 절도죄 처벌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선진국에서 사회문제로 인식할 만큼 절도가 늘어난 건 기준금리 상승으로 실질소득은 줄어드는데, 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미국의 경제고통지수는 최근 3년간 10.00포인트를 넘나들었고, 2022년 6월엔 12.66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물가가 잡히면서 고통지수는 지난 6월 6.56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하고 고금리 국면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8월 고통지수는 7.46으로 상승했다. 이는 경제성장이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으로 크지 않지만, 경제후퇴가 행복도를 떨어뜨리는 덴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다. 

프린스턴대학의 앵거스 디턴, 대니얼 카네먼은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연소득이 7만5000달러(약 1억원)를 넘어서면, 삶의 평가는 올라가도 행복도는 높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높은 소득으로 삶의 좋은 평가를 살 수 있지만, 행복을 살 수는 없다”고 결론내리면서 “반면 저소득은 이혼, 질병, 외로움과 같은 정서적 고통을 악화시킨다”고 덧붙였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았다. [사진=뉴시스]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았다. [사진=뉴시스]
[자료 |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
[자료 |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

이런 측면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1.4%로 낮게 내다본 한국의 행복도는 어떻게 변할까.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삶의 만족도는 2018년 6.1점에서 2021년 6.3, 2022년 6.5점으로 상승 추세였다.

하지만 저성장이 예고된 지금은 삶의 만족도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 이럴 때 필요한 걸 뭘까.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해 6월 ‘최근 대만의 행복 수준 상승이 주는 시사점’에서 “대만은 높은 경제성장률, 공적인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정부 신뢰 상승, 사회 개혁을 통한 사회통합과 자유 확대가 행복 수준 상승의 이유”라고 밝혔다. 경제성장률이 당분간 1%대에 그칠 우리에겐 보고서에서 언급한 정부 신뢰, 사회통합, 자유 확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몫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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