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천태만상 세태+
과대포장부터 질소과자까지
고물가 국면서 나타나는 현상
슈링크플레이션 시장서 판 쳐
소비자 몰래 양 줄이는 꼼수
해외선 일정기간 변경 내용 표기
정부 생필품 실태조사 거친 뒤
꼼수 제재 강화하겠다고 발표

5인 가족이 핫도그를 1개씩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봉지를 뜯어보니, 핫도그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범인이 누굴까. 사라진 핫도그의 행방을 찾다 보니, 범인은 어이없게도 핫도그다. 5개였던 핫도그가 4개로 줄어든 거였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개수와 용량이 줄어든 슈링크플레이션의 그림자다.

슈링크플레이션을 막을 기준과 방법이 모호하다.[사진=뉴시스]
슈링크플레이션을 막을 기준과 방법이 모호하다.[사진=뉴시스]

# 매년 75억개가 팔리는 쿠키가 있다. 1912년 첫선을 보인 ‘오레오’다. 그동안 팔린 오레오를 나란히 늘어놓으면 지구를 381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많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110여년 동안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오레오가 최근 논란에 휩싸였다. 몇몇 소비자가 쿠키 사이의 크림이 줄었다며 문제 제기를 한 거다. 오레오를 만드는 몬델리즈의 최고경영자(CEO)인 더크 반 드 풋은 “품질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면 내 발등을 찍는 꼴이 될 것”이라며 부인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논란을 두고 “사상 최대의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스캔들’”이라고 보도했다.

# 오레오 논란 이전에도 몬델리즈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토블론’ 초콜릿이었다(2016년). 이 초콜릿은 여러개의 삼각뿔 모양으로 유명한데, 삼각뿔 간격이 눈에 띄게 넓어진 거다. 당연히 중량도 확 줄었다. 당시 몬델리즈 측은 “재룟값 상승으로 가격을 맞추기 위해 모양을 변형해야 했다”고 설명했지만 소비자들의 원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꼼수로 제품의 크기나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 고물가에 또 한번 꿈틀거리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오레오’와 ‘토블론’을 예로 들었지만 슈링크플레이션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때만 되면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시계추를 1997년으로 돌려보자. 외환위기가 시작된 그해 식품업체들은 원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품 내용물을 줄이는 꼼수를 부렸다. 포장은 그대로 유지한 채 내용물만 줄인 거다.

그러자 내용물보다 질소가 더 많다는 의미에서 ‘질소과자’란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듬해 한국소비자원의 발표에 따르면 13종의 스낵류를 조사했는데, 그중 내용물이 70%를 넘는 제품은 4종뿐이었다. 이후 2011년 눈속임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과대포장 제재’ 규칙이 마련됐지만, 솜방망이 처벌(최대 300만원)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허약한 제재에 업체들의 꼼수는 계속됐다. 그러자 2014년엔 대학생들이 이를 비판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세명의 대학생은 과자봉지 160개를 이용해 보트를 만들어 송파구 한강공원 수상관광 승강장을 출발해 30여분 만에 900m를 이동해 광진구 서울윈드서핑장에 도착했다. “과자봉지를 뜯었는데 70%가 질소였다”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덤으로 왔다” 등 내용물을 줄인 질소과자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자 이를 비판하기 위해 펼친 퍼포먼스였다.


식품업체는 몸을 움츠렸지만, 이번에도 그때뿐이었다. 물가상승이 가팔라진 2021년부터 이런 꼼수가 더욱 가속화했다. 2021년 롯데제과는 카스타드 개수를 12개에서 10개로, 꼬깔콘은 72g에서 67g으로 중량을 줄였다.

2014년 과대포장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과자봉지 뗏목으로 한강을 건넜던 대학생들의 퍼포먼스.[사진=뉴시스]
2014년 과대포장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과자봉지 뗏목으로 한강을 건넜던 대학생들의 퍼포먼스.[사진=뉴시스]

오리온은 지난해 9월 핫브레이크 중량을 50g에서 45g으로, 서울우유는 유제품인 비요뜨 중량을 143g에서 138g으로 조정했다. 가성비의 대명사인 다이소는 3000원에 20개 하던 네오셀 알카라인 건전지의 개수를 16개로 줄였다. 최근엔 풀무원 핫도그 1봉지가 5개에서 4개로 줄어 온라인상에서 한바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렇듯 업체들은 때만 되면 제품의 개수와 중량을 줄이고 있지만 이걸 제재하기는 쉽지 않다. 관련 법을 보자. 슈링크플레이션은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 이 법 제5조(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금지)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부당하게 결정ㆍ유지ㆍ변경할 수 없다(가격남용행위). 

가령, 비스킷 제조3사가 제품의 용량을 줄여 생산하면서 변경된 용량을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작은 글씨로 표시하면 이 법에 위배된다. 위반할 경우 관련 매출액의 6%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는 처벌 규정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대상이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에 국한돼 있고, 시장 지배기업이라도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문구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공정거래법 제6조는 “연간 매출액 또는 구매액이 40억원 이상인 사업자들 중에서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소비자도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 원재료 등 생산비가 오르면 소비자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어 한다. 직장인 최연화(가명)씨는 “포장을 뜯어보고 나서야 개수나 중량이 줄었다는 걸 알 수 있다”면서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연일 슈링크플레이션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14일 물가 현장 점검에 나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들의 꼼수 가격 인상을 두고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다”면서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양을 줄여 파는 것이 판매사의 자율이라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관계 기관들이 제품 내용물이 바뀌었을 때 소비자들이 알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틀 후인 16일엔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비판에 가세했다. “100g 들어가던 것을 불가피하게 90g 들어간다고 사전에 공지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고 표기만 바꾸는 것은 꼼수다. (슈링크플레이션이) 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지, 기재부나 공정위에서 논의해야 한다.”

오레오는 쿠기 사이의 크림이 줄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사진=뉴시스]
오레오는 쿠기 사이의 크림이 줄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사진=뉴시스]

17일에는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이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고 소비자 신뢰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슈링크플레이션을) 중요한 문제로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면서 “11월 말까지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관련 사례 제보를 받겠다”고 밝혔다.

오래전부터 문제를 제기해온 걸 이제야 면밀하게 들여다보겠다는 건데, 과연 이번엔 명확한 기준과 규칙을 만들 수 있을까.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브라질은 제품 용량과 함량에 변화가 있을 때 6개월 간 표기하도록 돼 있고, 프랑스에서도 매대 앞에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안내문을 부착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용량 등에 변화가 있으면 그걸 일정 기간 고지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쉽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위가격을 표시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변경 내용을 제품에 표기하는 거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상표법 개정 등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반짝 관심으로 끝나지 않고,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제재안이 만들어질까. 슈링크플레이션 근절에 소매를 걷어붙인 정부의 발걸음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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