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5시 5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조용히 눈을 뜹니다. 배달시킨 커피 원두를 꺼냅니다. 가위로 모서리만 조금 자릅니다. 진한 원두 향이 잠을 깨웁니다. 그라인더 3인분 표시선까지 원두를 넣고 복도 쪽 방으로 들어갑니다. # 문을 닫고 방석으로 그라인더를 덮고 커피를 갑니다. 덕분에 아무도 깨어나진 않았네요. 그렇게 만든 커피를 보온병에 담습니다. 물병도 챙기고, 작은 1인용 돗자리도 챙깁니다. 읽고 싶었던 책과 겉옷도 챙깁니다. 혼자 잠시 소풍을 다녀오려 합니다. # 사전투표를 마친 덕분에 하루 휴가가 생겼습니다. 점심엔
# 대통령 사진을 찍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우나 고우나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니 경호가 이만저만 아니니까요. 당연히 가까이서 찍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형 언론사에서도 소수의 기자에게만 가능한 일일 정도죠. # 다만, 출입기자보다 대통령을 더 가까이서 촬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전속 사진가입니다.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행사를 찍기도 하고, 대통령의 일상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 국내에서도 전직 대통령의 일상이 사진으로 공개돼 화제가 된 적 있습니다만,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그런 사진이 많습니다. 특히 역대 미
밥상 이야기 둘째 가졌을 무렵입니다 하루는 장 보러 나갔다가 왜 그리 칼국수가 먹고 싶던지요 층층시하 먹고 싶은 것 따로 챙길 여유 없던 시절 난데없는 칼국수 생각 참 난감했습니다 배 속 아이는 여전히 칭얼대고 좁은 시장통에 서서 한참 머뭇거리다 칼국숫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 시켰습니다 배 속 아이는 얌전히 기다리고 문밖 소음도 저만큼 물러났습니다 무심코 앉았는데 주방에서 호박 써는 소리 마늘 다지는 소리 냄비 뚜껑 여닫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누군가 내 밥상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몇 해 동안 한 번도 밥상
여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서울의 한 연립주택 단지로 이사를 했다. 1987년 준공했다는 이곳은 시간이 멈춰있다. 주택 단지를 지키는 경비실과 3층을 넘지 않는 낮은 건물들. 편의점이나 대기업 마켓 대신 금고를 열고 계산해주는 작은 슈퍼마켓이 있다. 15개동의 건물에 338세대가 모여 산다는 이곳은 서울에서 한발짝 떨어져 나와 시간을 비껴간 것 같았다.이곳에는 유난히 노인들과 초등학교를 아직 가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봄이 돼 날씨가 풀리자 노인들은 밖에 나와 빛을 쐬고 있었다. 높은 건물들이 주변에 없어 단지에는 언제나 볕이
젊은이들이나 일부 특정 취향의 관객들로부터 ‘숭배’에 가까운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독특한 영화를 ‘컬트 무비(cult movie)’라는 장르에 묶어 집어넣는 모양이다.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파이트 클럽(Fight Club·1999년)’은 가장 성공적인 컬트 무비 중 하나로 손꼽힌다.컬트 무비는 기존의 지배적인 주류문화와 사회질서에서 이탈하거나 저항하고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류문화의 관점에서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불온한’ 영화일 수도 있다.대학을 갓 졸업하고 무기력증에 빠진 한 남자가 자기 애
「순한 먼지들의 책방」정우영 지음 | 창비 펴냄햇살, 나무, 먼지…. 따뜻하고 포근한 것들. 시인의 시는 이런 요소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덮는다. 데뷔한 지 35년이 된 정우영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각이 진,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이 만들어둔 빠른 속도에 시인은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다른 길을 걷는다. 그렇기에 만나는 모든 존재를 연민한다. 시인에게 ‘시는 삶’이다. 삶보다 더 무겁지도 더 크지도 않다. 시인의 겸손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를 함께 만나보자. 「세계의 되풀이」조대한 지음 | 민음사 펴냄2018년 ‘현대문학’으
대전은 ‘노잼도시’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대표하는 아이콘이 빵집 성심당뿐이라고 꼬집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전은 심심한 도시가 아니다. 풍부한 R&D 인력과 산업단지를 보유한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도시다. 이런 장점을 잘 살리면 대전은 노잼도시에서 K-실리콘밸리로 ‘극적인 변신’을 꾀할 수 있다. 포도밭이 실리콘밸리가 된 것처럼 말이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성지다. 구글과 아마존, 애플, 메타 같은 글로벌 빅테크의 본사가 모조리 이곳에 몰려있다. 하이테크의 요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리콘밸리가 어떻게 태동
심우장 가는 길 김유조마음 답답한 날은심우장 오르던 길을되새긴다저 기억의 꼬불꼬불 힘든 언덕길선종 깨달음의 경로처럼소를 찾아 떠나는 험로삶이 그렇듯 어찌 넓고 곧기만 하랴옛 총독부를 뒤로 하고 앉은팔작지붕 민도리 일자 집은만해 대선승(大禪僧)의 항일 독립의지의 표상일진데거기 닿는 비좁고 가파른 길을 예지한 데에는수행의 깊은 뜻 서려삼 년 기거의 마지막 흔적은오도송(悟道頌) 친필에 담아 벽에 걸고손수 심은 마당의 향나무도이제 백년을 헤아리는데모진 속세의 인연이런가일본 대사관이 저 아래 건너편에다시 따라와 앉아 있고부자 동네가 된 성북
어름사니 박남희위험한 노래 위를 걷다 보면 너를 만날까네 뒤에 숨어 출렁이는 기억을 만날까너의 그림자를 만날까반짝이는 아침 햇살을 타고 오르는 거미처럼바람이 두고 온 길을 걷다 보면뜻밖에도 지워진 기억을 만날까노을 위를 걷다 보면 나를 만날까얽히고설킨 노을 밖의 길을 만날까길이 놓친 달빛을 만날까달빛이 버린 꽃을 만날까기다리고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데기억의 들판이 자꾸 낯선 길을 새로 만들고기억이 버린 것들이 무심히 너를 기다리는데네가 떠나보낸 나를 기다리는데구름아바람 위를 걷다 보면 너를 만날까너와 함께 무심히 흘러온 나를 만
이니셰린 섬에서 ‘동네 바보형’ 파우릭과 잡담으로 시간을 죽이고 살던 콜름은 뜻밖에도 한때는 음악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랬던 콜름이 어쩌다가 외진 이니셰린 섬까지 흘러들어와 ‘청산별곡’ 같은 삶을 살게 됐는지 영화는 설명해주지는 않는다.콜름은 어느날 문득 음악가로의 삶을 그리워한다. ‘노스탤지어(향수)’에 사로잡힌 거다. 그는 아마도 음악가로서의 삶에 실패했든지, 음악 자체가 무의미해져서 음악을 버렸을 듯하다. 영화는 콜름이 왜 오래전에 음악을 버렸고 또 갑자기 음악가의 삶에 ‘향수’를 느끼게 됐는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신이
고금리를 틈타 은행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자 유럽 몇몇 국가가 ‘횡재세’를 부과하면서 맞섰다. 바람처럼 날아온 이득을 끌어들여 나라곳간을 채우겠다는 포석에서다. 우리나라에서도 은행에 횡재세를 매기는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정부와 집권여당의 반대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고금리에서 기인한 횡재를 누린 금융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해법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역대급 실적잔치 = 역대급 실적을 이번에도 경신했다. 대부분의 기업과 서민들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시대를 힘겹게 버티는
미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고금리가 끝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나라도 금리를 높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고금리를 버텨야 하는 취약계층이다. 고금리 탓에 갚아야 할 이자는 불어나는데 경기침체로 소득은 줄어서다. 이럴 때 중요한 게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서민금융이지만 이마저도 허점이 많다. 우리나라의 정책금융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한국경제를 괴롭혔던 3고高(고환율·고물가·고금리)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3고 시기엔 누구나 힘들겠지만 그중에서도 지갑이 얇은 서민은 더 힘겨운 시간을 보
중·저신용층이 금융 시스템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관측됐다. 대형 금융회사들은 부실 위험을 떠넘기면서 건전성을 확보했지만, 저축은행, 대부업체는 물론 정책금융까지 저신용 대출 규모를 줄였다. 중·저신용자들은 15% 고금리 카드론으로 몰렸고, 불법 사금융 피해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저신용층 배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 연체율 다시 보기=지난 6월 말 19개 국내 은행들의 연체율은 1년 전보다 0.15%포인트 상승한 0.35%였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1년 전보다 두
# 여름 하면 생각나는 풀이 있습니다. 강아지풀입니다. 초록색 빛깔에 보송보송한 잔털이 귀여운 풀입니다. 강아지풀은 개꼬리풀이라고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몽실몽실한 귀여운 강아지 꼬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어릴 적 강아지풀은 재미난 장난감이었습니다. 풀을 쭉쭉 뽑아 팔찌로 만들기도 하고, 간지럼 장난을 치느라 친구를 콕콕 찔러대기도 했습니다. 친구 어깨에 슬쩍 올리곤 “앗, 네 어깨에 송충이가 있어”라면서 깜짝 놀래킨 척을 하기도 했지요.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참 고마운 풀입니다. # 언제부터일까요? 그렇게 많던 강아지풀이 눈에
# 정부는 올해 경제 성장이 상반기에는 저조해도 하반기에는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는 수출 반등이라는 전제를 깔고 내놓은 주장이다. 그러나 수출 회복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 이에 따라 최근 살아나고 있는 소비를 하반기 반등의 발판으로 삼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와 함께 성장의 규모를 제대로 표현해줄 환율 안정도 동반돼야 한다. 이른바 상저하고가 가능해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 알아봤다. ■ 상저하고의 조건➊ 소비=올 하반기 경기 회복은 수출이 아닌 소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상당 부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ㆍ1996)’는 6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서 9개 부문을 휩쓴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3000억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니 작품성과 흥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었던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한국에선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남겼다. 할리우드 영화문법에 익숙한 우리나라 관객들이 영국식 영화문법을 다소 낯설 게 느꼈을지 모른다.같은 영어라도 미국식
# 날이 추워졌습니다. 길을 나서며 깊게 숨을 들이마셔 봅니다. 콧속이 얼얼할 정도의 찬 기운이 머리를 깨웁니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라고 하지만 첫눈이 온다는 소설은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추울 때도 됐네요. # 추운 날씨를 더 춥게 만드는 요소가 있습니다. 날이 흐리거나 바람이 불 때입니다. 그런 날엔 우리가 느끼는 체감온도가 훨씬 더 떨어지곤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바람이 잔잔하고, 햇살이 내리쬘 때면 차가운 기운이 덜 춥게 느껴지곤 합니다. # 그런 햇살에도 제철이 있을까요. 오후의 햇살은 이제부터 제철을 맞이
# 몇번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지나갑니다. 가을색을 뽐내던 나무는 이제 앙상한 가지만 드러냅니다. 봄 햇살에 태어난 잎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매해 이맘때면 떨어지는 잎을 보며 공연히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 비가 한바탕 쏟아진 뒤 공원길을 걷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마지막 남은 잎만 보였을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작가 O.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겠지요. 아마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자’ 이런 식으로 생각이 흘러갔을 겁니다.# 이번엔 달리 보입니다. 남은 잎이 아닌 빈 공간
생은 단단하고하루는 깊다뼛속에 갇힌 햇살을목물로 지워 보지만송골송골 솟아등짝에 흐르는 우주물의 별 풀잎이 식지 않은 이슬을 이고 있다-‘땀의 변명’ 중 충남 태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편무석 시인의 첫 시집 “나무의 귓속말이 떨어져 새들의 식사가 되었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62번으로 출간됐다. 청년 시절 국문학도였던 시인은 오랜 시간 외지를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와 정착한 후 다시 펜을 들었다. 직접 손으로 밭을 일구며 흘린 땀방울이 녹아 있는 듯한 이 시집에는,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사는 생명들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
지난 7월 8일,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하는 총 4개 문학상의 수상자가 선정되었다.문학상은 제19회 한국문협작가상, 제 15회 한국문학백년상, 제11회 월간문학상, 그리고 제8회 한국문학인상이다.이 문학상들은 한국문인협회가 문인들의 문학적 업정을 포상하고 창작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기존에는 협회원들의 발표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문협작가상’만 존재했으나, 2008년 한국문학 100주념을 기념해 ‘한국문학백년상’이 제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또한 월간문학상은 협회지 「월간문학」에 게재된 작품들 중에서, 한국문학인상은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