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역진성과 정책금융의 한계 
고금리 기조에 늘어난 이자
돈 빌리기도 힘든 취약계층
정책서민금융 확대하지만
만만치 않은 금리가 문제
대위변제율 갈수록 높아져
정책금융 근본 대책 맞나

미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고금리가 끝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나라도 금리를 높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고금리를 버텨야 하는 취약계층이다. 고금리 탓에 갚아야 할 이자는 불어나는데 경기침체로 소득은 줄어서다. 이럴 때 중요한 게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서민금융이지만 이마저도 허점이 많다. 우리나라의 정책금융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경기침체기 돈을 빌리기 어려운 취약계층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경기침체기 돈을 빌리기 어려운 취약계층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를 괴롭혔던 3고高(고환율·고물가·고금리)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3고 시기엔 누구나 힘들겠지만 그중에서도 지갑이 얇은 서민은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처분가능소득(2분기 기준)은 383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394만3000원) 대비 2.8% 감소했다.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17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처분가능소득은 가계 소득에서 각종 세금과 보험료, 대출 이자 등 비소비성지출을 제외한 것으로 가계가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소득이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지표다. 처분가능소득이 감소했다는 건 대출이자 등의 비용이 늘어났다는 의미일 수 있다. 

실제로 올 2분기 가계의 이자비용은 13만1000원으로 지난해 2분기(9만2000원)보다 42.4% 늘어났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거다. 걱정거리는 힘든 시간을 버터야 하는 저소득층과 취약차주다. 경기침체로 소득은 주는데 고금리로 대출 이자가 치솟으면서 갚아야 할 돈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 위험한 취약계층➊ 금융의 역진성 = 한푼이 아쉬운 상황, 대출 이자라도 적게 내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원인은 금융의 역진성逆進性에 있다. 역진성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성질’을 의미하는데 세금 문제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하는 말이다. 조세 역진성이 그것이다. 이는 소득이 적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내는 부가가치세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교통세, 주세 등이 조세 역진성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이런 면에서 금융은 역진성이 매우 심각한 분야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대출만 봐도 그렇다. 소득이 많고 신용점수가 높은 차주는 낮은 금리로 큰돈을 빌릴 수 있다. 반대의 경우엔 빌릴 수 있는 금액은 줄고, 이율은 높아진다. 취약계층일수록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가져가는 이자가 많다는 거다.

경기침체로 직장을 잃거나 소득이 줄면 부실 가능성을 이유로 대출을 회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민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우산을 뺏는 곳이 금융회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금융회사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항변한다. 소득이 적고 신용점수가 낮은 차주일수록 빚을 갚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이자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취약계층에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면 상환 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돈을 빌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돈을 갚지 못하는 차주가 발생해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면 진짜 상환 여력이 높고, 돈이 필요한 가계나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게 힘들어질 수 있어서다. 

■ 위험한 취약계층➋ 부실한 울타리 =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정책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책서민금융 ‘햇살론’이다. 이 상품은 대출이 어려운 취약계층엔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서민금융진흥원이 운용하고 있다.

상품으로는 ‘햇살론15’ ‘햇살론 뱅크’ ‘햇살론 유스’ ‘근로자 햇살론’ 등이 있다. 공급 규모는 작지 않다. 정부는 올해 정책금융 공급 규모를 10조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최근엔 1조원가량 더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공급한 햇살론은 4조8588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정책서민금융인데도 이자율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건 오점이다. 실제로 햇살론의 이자율은 8~15.9%로 시중 금융회사와 비교해 낮지 않다.[※참고: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사회초년생 등 청년에게 돈을 빌려주는 ‘햇살론 유스’의 이자율 연 3.6~4.5 %로 가장 낮지만 공급 규모가 3000억원 수준으로 많지 않다.]

이 때문인지 정책서민금융이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에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햇살론의 치솟는 대위변제율(빚을 갚지 못하는 차주를 대신해 정부가 대신 갚는 돈)만 봐도 알 수 있다.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은 2021년 8월 11.8%에서 올해 8월 18.4%로 상승했다.

지난해(8월) 0.06%였던 ‘햇살론뱅크’의 대위변제율은 올해 4.5%로 치솟았다.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상품임은 틀림없지만 생계형 대출이 대부분인 탓에 ‘빚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기존에 갖고 있던 대출의 이자율이라도 낮추면 좋겠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국내 은행의 ‘금리인하요구’ 수용률은 평균 41.4%에 불과했다. 금리인하 요구권은 승진이나 소득 증가, 부채 감소 등으로 신용점수가 좋아졌을 때 금융회사에 대출 금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대출 금리를 낮추는 게 그만큼 쉽지 않다는 거다. 

지난 5월 기존 신용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서비스를 출시했지만 ‘그림의 떡’인 것은 마찬가지다. DSR(총부채 원리금상환비율) 40% 규제를 완화하지 않은 탓에 빚이 많은 취약계층은 문턱을 넘기 어렵다. 

 

■ 위험한 취약계층➌ 또 다른 울타리 = 그렇다면 어려운 시기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정책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전문가들은 취약계층의 빚을 늘릴 게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상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출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 억제 효과는 대출 목적이 생계비 조달인 중·저소득층에선 낮게 나타난다”며 말을 이었다. “생계형 대출이 많은 취약계층은 금리가 높아지면 채무상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늘어나 부실 위험이 커진다. 취약계층의 부채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고금리 대출을 유도하는 게 아닌 대출 수요 자체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금융이 아닌 재정과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 방법이다.” 

이자 장사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는 금융회사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는 사회공헌 기금의 혜택이 금융회사 수익의 원천인 대출자에게 돌아가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연체 없이 대출을 갚은 취약차주의 이자나 원금을 탕감해 주는 채무조정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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