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도시의 밤, 네온사인 불빛은 자동차에 맺혀 번진다. 흐르는 빛은 물감이 번지듯 창에 스며든다. 택시를 모는 사내의 눈동자는 불빛을 따라 좌에서 우로 흔들리고. 불면증으로 잠들지 못하는 사내는 택시를 운전하며 중얼거린다. “쓰레기는 밤에 쏟아져 나온다. 매춘부, 깡패, 남창, 게이, 마약중독자 등등, 인간 말종들이다. 언젠가 저런 쓰레기를 씻어내 버릴 비가 쏟아질 것이다.” 22대 총선을 치른 날, 학생들과 함께 마틴 스코세이지가 1976년 연출한 영화 ‘택시드라이버’를 봤다. 굳이 총선을 염두에 두고 본 영화는 아니었다.
# 배달앱 업체들이 앞다퉈 ‘무료배달’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배달비 부담을 덜어줘 소비자를 끌어모으겠다는 거다. 포문을 연 건 쿠팡이츠다. 쿠팡이츠의 공세에 업계 1위 배달의민족도 ‘배달비 0원 정책’을 꺼내들면서 맞불을 놨다. # 배달비가 부담스러웠던 소비자 입장에선 긍정적인 정책 변화다. 문제는 점주가 되레 불편한 상황에 놓였다는 거다. 무슨 말일까. 視리즈 ‘배달앱 무료배달의 그림자’를 통해 답을 찾아보자. 첫번째 이야기, 배달앱의 생색과 점주의 눈물 편이다. 배달앱 시장에서 ‘무료배달’ 경쟁이 불붙고 있다. 값비싼 배달비에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는 올해 초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상황은 냉전시대만큼이나 위태롭다. 이응준 작가의 「국가의 사생활」과 장강명 작가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흡수통일을 가정하며 우리가 전쟁의 비극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일깨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다. 이듬해 독일이 통일에 성공했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했다. 서독의 헬무트 콜(1930~2017년) 총리는 붕괴 직전인 소비에트연방의 혼란을 놓치지 않고 고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 2」프랭크 허버트 지음 | 황금가지 펴냄개봉일 예매량 31만장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막을 연 영화 ‘듄’. 동명의 원작소설을 쓴 프랭크 허버트의 단편집이다. 「듄」 시리즈 중 유일한 단편소설이자 듄의 행성 ‘아라키스’의 안내서를 담은 「듄으로 가는 길」을 수록했다. 이 밖에도 「듄」에서 여성들의 비밀 조직인 ‘베네 게세리트’의 원형이 등장하는 우주첩보물 「건초 더미 작전」 등 듄의 세계관 속 주요 설정들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들을 담았다.「황색예수2」김정환 지음 | 문학과 지성사 펴냄
서애 류성룡은 당쟁을 유발할 만한 언사를 자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이순신을 두둔할 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혹자는 “류성룡의 침은 종기(당쟁)를 다스리는 특효약이다”는 말까지 남겼다. 종기를 없앨 때는 말을 참아 생긴 침을 발랐던 것에 빗댄 말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여야 정치인들은 정쟁 앞에서 말을 조심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왜국 수뇌부가 반간계로 이순신을 제거하기로 결정하자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소서행장은 조선 재침공에 앞서 일단 이순신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정탐해봤다. 그 결과, 조선의 삼도 수군의
1945년, 1만명의 독일인이 소련의 잠수함 공격으로 나치 간부의 이름을 딴 구스틀로프호號에서 사망한다. 「양철북」으로 나치즘을 비판했던 작가 귄터 그라스는 구스틀로프호 사건을 바탕으로 「게걸음으로」를 썼다. 그가 ‘네오나치’를 옹호했다는 주장이 일면서 독일 사회에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합의점을 찾아갔다. 골목에서 벌어진 참사를 두고도 ‘합의점’을 못 찾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1945년 1월 소련군 공세에 밀린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했다. 소련군은 점령 지역에서 가혹한 보복행위를 일삼았다. 겁에 질린 독일
“촉법소년 연령을 만 12세(현행 만 14세)로 하향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시절 공약이자 현 정부의 국정과제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법무부는 2022년 12월 촉법소년 연령을 만 13세로 한 살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윤 대통령의 공약보단 완화했지만 소년범의 처벌을 강화하겠단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그렇다면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재범 방지를 위한 시스템 마련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월 25일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서울 강남
영화 파고(Fargo)는 ‘스릴러 코미디’ 장르로 분류돼 있다. 아마도 미국 관객들에게는 극도로 감정을 억누르고 폭발 직전의 상황에서도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비현실적이다 못해 코믹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아내와 장인에게 쌓인 불만이 많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상냥하게 대한다. 제리는 장인이 자신이 힘들게 기획한 사업 아이템을 날로 먹을 때도 그 부당함을 정면으로 따지지 않고 어정쩡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용을 쓴다. 어깨가 축 처져 장인의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많은 것을 잊는다. 기억은 불안정하고 우리는 이 불안한 기억을 취사 선택한다. 하지만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응시하는 자만이 용서를 바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2차 세계대전 때 생체실험을 진행한 규슈대학 의학부가 2015년 그 자료를 전시하기로 결정한 건 함의가 크다.1945년 6월, 미군의 B-29 폭격기 한대가 일본 규슈(九州) 상공에서 격추돼 승무원 12명이 포로로 잡혔다. 미군의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일본 군부는 재판도 없이 미군 8명의 처형
요즘 들어 한국 드라마들이 세계 무대에서 잇달아 쓴잔을 마시고 있습니다. 수백억원을 투자하고, 명배우들이 열연을 펼쳤는데도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독전2, 스위트홈 시즌2도 전작의 명성에 흠집만 냈습니다. ‘K-드라마’가 이젠 세계 무대에 통하지 않는 걸까요?최근 OTT를 통해 방영 중인 이른바 ‘K-드라마’의 흥행 성적에 먹구름이 끼고 있습니다. 2023년 국내 넷플릭스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 드라마 ‘경성크리처’가 대표적입니다. 경성크리처는 톱스타 박서준·한소희 출연에 일제강점기란 배경과 ‘
남편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가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와 칼 쇼월터(Carl Showalter)에게 발주한 ‘아내 납치’ 청부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다. 수임료 4만불도 그럭저럭 적당해 보인다. 이 미션이 분명 북한 영변에 침투해 플루토늄을 탈취해 오라는 톰 크루즈급 ‘미션 임파서블’은 아닐 텐데, 이 간단한 ‘미션’이 6명이나 죽어나가는 ‘블록버스터’급 범죄액션물이 되는 것이 황당하다.‘납치 청부’라는 일을 하다보면 누구든지 게어와 쇼월터처럼 그토록 폭력적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게어와
영화 ‘파고’에는 2명의 진정한 ‘빌런’이 등장한다. 한명은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내기 위해 자기 아내를 납치해달라고 청부하는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다. 또 한명의 ‘빌런’은 노르웨이계로 보이는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다. 영화 속에서 대사도 몇마디 하지 않는 그는 누구라도 신경을 건드리면 닥치는 대로 죽여버린다.코언 감독은 영화 ‘파고’에 빌런 2명을 등장시킨다. 한명은 청부살인업자에게 아내 진(Jean)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제리 룬더가드다. 제리는 자동차대리점 판매사원답게 상
코언 형제 감독은 영화 속에 그들다운 매우 짧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운 시퀀스를 배치한다. 미네소타주의 브레이너드(Brainerd)라는 작은 시의 여자 경찰서장 마지(Marge)는 고속도로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용의자들과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2명의 나이 어린 창녀를 찾아가 용의자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데 그 장면이 매우 신선하다 못해 코믹하기까지 하다.군더손(Gunderson)이란 성姓을 보면 마지는 노르웨이계 이민자다. 통통한 어린 창녀들도 영화 속에서 성을 밝히진 않지만 특유의 억양으로 짐작건대 노르웨이계임이 분명하다.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아내를 납치해서 장인에게 몸값을 받아내려는 창의적인 사기극을 벌인다. ‘전대미문’의 일인 만큼 이 사건을 맡은 미네소타의 한적한 소도시 브레이너드(Brainerd)시의 순박하고 임신 7개월에 몸도 무거운 ‘아줌마’ 여자경찰서장 마지 군더슨(Marge Gunderson)에게 조금은 버거워 보인다. 선입견과 편견이 발동한다.경찰관 1명이 사살당하고, 그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남녀 2명이 역시 사살당한 ‘강력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경찰관이 죽기 직전에 남긴 이 말뿐이다. “임시번호
「나의 작고 부드러운 세계」신아영 지음 | 책과이음 펴냄신아영 작가는 부산에서 독립문학잡지 비릿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마을 활동가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을 펴냈다. 그간의 작품들은 자신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이들과 소통하고 또 공동체를 기록하기 위해 썼다. 이번 책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내면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잊고 있던 작은 속삭임과 진실을 만나길 원한다. 그의 작고 여린 유년시의 문장과 사랑은 다른 이에게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여러 날」고성만 외 9명 지음 | 다인숲 펴냄광주의 로컬리티(지역
“일보다 사람이 힘들다.” 시대를 막론하고 공감을 얻는 말이다. 어느 사회 어떤 조직이든 이해하기 힘든 행동으로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그 인간 때문에’ 출근이 꺼려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조직 내 관계 스트레스에 시달려 이직이나 퇴사를 원하는 이들도 숱하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직장인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갉아먹는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있단 사실이다. ‘일’보다 ‘사람’이 힘든 공간이 돼 버린 직장에서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홀로 삭이거나 소용없는 하소연만 할 뿐이다.
제리 룬드가드는 청부업자들에게 “아내 ‘진’을 납치해서 몸값으로 8만불을 요구해 달라”는 황당한 의뢰를 한다. 장인에게 몸값 8만불을 받아서 그들에게 수임료 4만불 주고 자신이 4만불 갖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제리 룬드가드는 왜 이러는 걸까.청부업자들도 자기 아내를 납치해 달라는 기상천외한 의뢰가 황당해서 그래야 하는 이유를 물어본다. 제리도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청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듯 생각을 가다듬는 것 같더니 이내 ‘내가 당신들한테 그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느냐’고 버럭한다.아마도 돈 4만불을 마련하
코언 형제감독의 ‘파고’는 ‘가정답지 못한 가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을 보여준다. 영화의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뜨개바늘을 쥐고 있는 한 남자가 하얀 설원에 피를 흘리고 엎드려 있고, 이 장면을 뜨개질로 표현했다. 평범한 가정에 한두점쯤은 있을 법한 어머니가 놓은 ‘홈메이드’ 자수刺繡같은 모습이다. 영화 포스터는 이 영화가 ‘홈메이드’ 살인극이라는 것을 시사한다.영화 주인공 룬더가드(Lundergaard)의 아내 진(Jean)은 거실에서 TV를 보며 한가롭게 뜨개질을 하다가 남편 룬더가드가 고용한 납치법
1997년 재기발랄한 형제감독 조엘 코언(Joel Coen)과 이단 코언(Ethan Coen)이 각본을 쓰고 감독해 제작한 ‘파고(Fargo)’는 범죄물이지만 재기발랄한 감독들이 즐겨하듯 범죄물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다. 우리가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받아들이는 현실의 허무맹랑함과 어이없음을 마음껏 조롱한다.영화의 시작에 앞서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의 ‘안내문’이 화면 가득 뜬다. “이 이야기는 실화(true story)다. 영화에 그려진 사건들은 실제로 1987년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경기도민의 편의를 향상하겠다” “서울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겠다”…. 김포의 서울 편입을 추진하는 여당이 내세운 명분은 이렇습니다. 실제로 편입 효과가 이렇게 크다면 난관을 어떻게든 뚫고서라도 밀어붙일 만한데, 문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의 시선은 꽤 회의적입니다. 무엇보다 국토 균형 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편입론은 ‘빵점짜리 정책’입니다.요즘 세간의 화제는 ‘김포시: 서울 편입’ 여부입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한 게 기폭제가 됐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악화한 수도권 민심을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