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2024 자영업자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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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역사 서울 영등포시장
설 대목 체감 못하는 상인들
손님도 상인도 고물가 부담
재개발로 시장 크기 줄어들자
시장 찾는 사람도 반토막 나
철마다 시장 찾는 정치인들
민생 어려움 알기나 할까

전통시장은 민심과 바닥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최적의 척도다. 서민층이 주로 찾고, 영세상인도 꽤나 많아서다. 정치인들이 철만 되면 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먹는 등 이상한 쇼잉을 해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설 명절을 앞둔 시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모처럼 찾아온 대목에 숨죽였던 활력이 움트고 있을까. 더스쿠프 취재팀이 지난 1월 30일 영등포시장을 찾아가봤다. 

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영등포시장엔 좀처럼 활기가 돌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영등포시장엔 좀처럼 활기가 돌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1956년 문을 연 서울 서남권 최대 규모의 시장. 영등포전통시장(이하 영등포시장)이다. 한때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물건을 사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영등포시장은 예전의 명성이 바랬지만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설 명절을 1주일여 앞둔 1월 30일, 영등포시장을 찾았다. 위세를 떨치던 추위가 한풀 꺾이고 봄바람이 부는 듯한 날이었다. 영등포시장에도 대목을 앞둔 활기가 감돌고 있을까. 시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등포시장은 남문에서 북문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중심으로 야채·과일·생선·육류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거리에도 식품부터 잡화·의류 판매 가게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곁가지로 나 있는 순대골목도 시장 영등포시장의 명물로 꼽힌다. 

사람들이 오가는 주된 통로인 남문을 통해 시장에 들어섰지만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평일 오후 2시 무렵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시장 안은 휑했다. 새벽같이 나와서 가게문을 열어도 좀처럼 손님을 만나지 못하는 시장 상인들의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 갈 법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야채장사를 해온 김은숙(가명)씨는 “예전 영등포시장은 도매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도·소매 가리지 않고 판매해도 장사가 쉽지 않다”면서 “장사가 잘되면 힘이 나서 일할 텐데 손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돼 버리니 기운이 빠지는 건 도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이곳에서 장사를 해 자식 둘을 결혼까지 시켰지만 김씨는 정작 자신의 노후가 걱정이다. “물건값 주기도 빠듯하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이다.” 

김씨의 말처럼 영등포시장은 과거 도매시장으로 유명했다. 예전 같진 않지만 이곳을 찾는 도매상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문제는 도매상에서 식자재를 떼다 파는 식당들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고물가에 외식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식당들이 어려움에 처했고 이는 다시 시장의 침체를 부추기고 있다. 

40년 넘게 정육점을 운영해온 홍성혜(가명)씨는 “경기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아서인지 매출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명절 대목이란 것도 느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물가도 상인들의 애를 태운다. 

이곳에서 15년째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오혜자(가명)씨도 너무 많이 오른 물가가 야속하기만 하다.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손님들에게 생선을 파는 게 미안할 정도다. 냉동 동태 가격이 1년 새 1.5배가 올랐으니 설이 코앞이지만 손님들도 지갑을 열기가 부담스러울 거다.” 

재개발 추진으로 영등포시장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도 급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재개발 추진으로 영등포시장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도 급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상인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더 나빠진 건 재개발 사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등포시장 북쪽 일부가 ‘영등포1-13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에 포함되면서 2022년부터 시장 절반가량이 철거됐기 때문이다. 시장이 사라진 자리엔 2025년 입주를 목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시장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든 데다 북문이 있던 자리에 공사장 펜스가 쳐지면서 시장 입구라는 것조차 알아보기 어려워졌다. 잘려버린 북쪽 통로 입구엔 “쇼핑하기 편리한~ 영등포전통시장 정상영업 중입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지만 오가는 시민들의 눈에 띌 리 없었다. 

오랜만에 영등포시장을 찾은 주부 유지나(가명)씨는 “시장 입구가 공사장처럼 돼버려서 출입구를 찾는 데 한참 걸렸다”면서 “예전엔 점포도 많고 꽤 큰 시장이었는데 가게들이 많이 줄어 아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등포시장의 대지면적은 1만7523㎡(약 5300평)에서 8115㎡(약 2454평)로 반토막이 났다. 300여개에 달하던 점포 수도 지금은 100개 남짓이다. 공사 준비가 한창인 데다 점포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자 시장을 찾는 고객의 발걸음도 끊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파트 단지가 완공되고 나면 시장에도 다시 볕이 들지 않을까. 아쉽게도 희망을 품는 상인들은 많지 않았다. 아파트 상가에 마트가 들어설 게 뻔한 데다 젊은층은 좀처럼 시장을 찾지 않아서다. 

이곳에서 50년 넘게 야채장사를 해온 유선옥(가명)씨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주면 예쁘고 고마워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 하지만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든 사람”이라면서 “젊은 사람들은 대형마트나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걸 좋아하니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상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인들은 철만 되면 시장을 찾아 ‘민생행보’를 이어간다. 떡볶이와 어묵국물을 나눠 먹는 게 식상한 쇼잉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총선을 앞둔 올 설에도 ‘민심을 잡겠다’면서 숱한 정치인이 이곳을 찾을 거다. 

이들을 보는 상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야채가게 상인 김은숙씨는 이렇게 꼬집었다. “정치인들은 제발 민생을 입에 올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연례행사처럼 시장을 찾아와도 달라지는 게 없지 않나. 그저 권력을 잡기 위해 자기만족을 위해 시장을 찾는 그들이…. ‘서민살이’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하겠나. 때마다 시장에 찾아오는 것도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상인들의 팍팍한 마음엔 언제쯤 봄꽃이 필 수 있을까. 오후 5시, 시장 안쪽을 잠시나마 데웠던 봄바람은 어느샌가 냉랭한 바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기운이 금세 감돌았다. 상인들도 추운듯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손님 없는’ 시장도 그렇게 찬바람 속에 묻히고 있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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