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상봉터미널 38년 만에 폐업
여객·승객 급감하면서 적자 운영
1997년 사업면허 폐지 신청
숱한 반려 끝에 행정소송 승소
고양·성남터미널도 올해 폐업
사라지는 시외버스터미널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상봉터미널이 11월 30일 운영을 종료했다. 1985년 운영을 시작한 지 38년 만이다. 한창때 하루 2만명에 달하던 승객은 20명 미만으로 급감했고, 운영사는 적자에 시달리다 폐업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더스쿠프가 폐업을 사흘 앞둔 상봉터미널에서 시민들을 만나 마지막 얘기를 나눠봤다.

상봉터미널은 하루 이용객이 채 20명도 되지 않아 적자에 시달려 왔다.[사진=뉴시스]
상봉터미널은 하루 이용객이 채 20명도 되지 않아 적자에 시달려 왔다.[사진=뉴시스]

강원도 강릉에 살던 이경미(가명)씨는 19 97년 겨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버스 종착지인 상봉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겨울 해는 일찌감치 기운 후였다. 그는 대합실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연락처를 뒤적였다.

아무런 계획도 희망도 없이 시작한 서울살이였지만, 경미씨는 몇년 후 듬직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식도 둘이나 낳았다. 아이들 방학이면 강릉 친정에 내려가 며칠씩 지내오곤 했다. 그때마다 경미씨 가족은 상봉터미널 대합실 의자에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버스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2017년 상봉역 KTX가 개통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친정행 1순위 수단은 늘 KTX가 차지했고, 상봉터미널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는 사이 첫째 아이는 25년 전 경미씨처럼 수능시험을 치를 정도로 커버렸다. 

그런 상봉터미널이 문을 닫았다. 1985년 문을 열어젖힌 지 38년 만이다. 경기 동ㆍ북부와 강원지역을 오가는 시외고속터미널인 상봉터미널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시외버스와 고속버스가 하루 1000회 넘게 운행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하지만 상봉터미널보다 3년 늦게 영업을 시작한 동서울터미널에 점점 밀리면서 여객 수와 이용객 수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남부ㆍ강남ㆍ동서울터미널과 비교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쇠퇴를 앞당긴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상봉터미널의 운영주체인 ㈜신아주는 적자 운영을 버티지 못하고 지난 11월 30일 영업을 종료했다. 38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상봉터미널 부지에는 지상 49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실 상봉터미널의 폐업은 예견됐던 일이다. 운영주체 신아주는 1997년부터 지속적으로 서울시에 사업면허폐지를 신청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번번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갈등은 행정소송으로 번졌다.

기나긴 공방 끝에 2007년 12월 대법원이 “서울시는 사업면허 폐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 당장이라도 영업을 종료할 것 같았지만, 그 이후에 수립했던 부지개발 계획이 여러번 무산되며 상봉터미널의 마지막도 한해 두해 미뤄졌다. 

그래서인지 상봉터미널은 시외ㆍ고속버스터미널이라는 제 구실을 못한 지 오래됐다. 운수회사들이 하나둘 감편하거나 철수하면서 시외버스는 2018년 5월부터 원주행, 고속버스는 대전 노선만 남았다. 올해 4월엔 대전 노선마저 중단하며 원주행만 유일하게 운행 중이었다. 

상봉터미널이 11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상봉터미널이 11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한바탕 흩뿌리고 지나간 11월 27일, 운영 종료를 사흘 앞둔 상봉터미널로 향했다. 평소라면 터미널 광장에서 비둘기 네댓 마리가 호시탐탐 간식을 노리고 있었을 텐데, 어쩐지 그날은 비둘기마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일찌감치 붙여놓은 폐업 안내문은 스산하게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봉터미널은 1985년 개장 이후 수십년간 지속적인 이용객 감소에도 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터미널의 운영을 계속해왔으나 최근에는 하루 이용객이 20명 미만까지 감소해 더 이상 터미널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2023년 11월 30일 상봉터미널의 운영을 종료하게 됐습니다.” 

터미널 안에 들어서자 거대한 어둠과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같은 건물에 위치한 운전면허학원(중랑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 가는 듯한 20대 수강생 두세명 말곤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어두운 계단을 따라 터미널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과 마주하고 있는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란 문구가 대합실과 매표소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즐거운 여행을 떠날 이의 자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벽면의 운행시간표는 하얗게 지워졌고, 승차권 자동 발매기만 덩그러니 빛을 내고 있었다. 행선지는 ‘원주(종착지)’와 ‘문막(경유지)’뿐이었다. 승차권 자동 발매기를 중심으로 주변의 매점과 사무실은 모두 은색 셔터가 내려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몇걸음 옮겨 겨우 사람 구경을 했다. 오후 2시 원주행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 3명이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남인철(가명)씨에게 이날은 상봉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는 1년째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과 원주를 오가고 있는데, 그때마다 상봉터미널을 이용해왔다. “직장을 원주로 옮긴 뒤 평일은 원주에서, 주말은 서울에서 보내요. 처음엔 동서울터미널을 이용했는데, 동선도 그렇고 영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상봉터미널을 이용하고 있는데, 여기도 문을 닫네요.”

12월 1일부터 인근에 임시정류장을 운영한다고 하지만, 남씨는 시외버스 대신 자가용을 이용할 생각이다. “동서울터미널을 다시 이용하자니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게 많고, 상봉터미널 임시정류장을 이용하자니 한겨울에 버스를 기다릴 장소도 마땅치 않을 거 같아요. 서민들이 버스를 타는 이유가 뭐겠어요. 한푼이라도 아껴보겠다는 거잖아요. 또, 버스에 타고 있는 동안만은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어쩌겠어요. 피곤해도 운전하고 다녀야죠.”

1년에 몇번씩 지인을 만나러 원주에 간다는 박수혜(가명)씨도 옆에서 “이젠 원주 갈 때 어떤 방법으로 가야 하나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면서 “사업이 결국 영리가 목적이긴 하지만 우리 같은 서민 사정도 좀 헤아려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거들었다. 

시외버스는 서민들의 발이다. 하지만 자가용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고, 버스보다 빠른 KTX가 노선을 확대하면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 탓에 적자에 허덕이다 폐업을 선택하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적지 않다.

“시외버스 수요 감소가 지속하고 있어 더 이상 터미널을 유지ㆍ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이 올 1월 폐업했고, 한때 하루 이용객이 5000명에 달했던 고양시 화정터미널도 승객과 노선 급감으로 올해 5월 운영을 종료했다. 서울의 시외버스터미널 상봉터미널도 이제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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