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이 빚은 세상 ‘비정규직’, 말 한마디로 바뀌랴
탐욕이 빚은 세상 ‘비정규직’, 말 한마디로 바뀌랴
  • 김정덕 기자
  • 호수 396
  • 승인 2020.07.06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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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사라진 비정규직 문제

비정규직은 ‘자본의 탐욕’과 맞닿아 있다. 노동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싼값의 노동자’를 양산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폭력’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노동의 유연화’란 대전제 앞에 희석됐다. 문제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비정규직 이슈’를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느냐다. 냉정하게 말하면 쉽지 않다. CEO의 인식,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 등 난제가 숱하게 많아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본질이 사라진 비정규직 문제를 진단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안타깝게 사망했을 때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분노했다.[사진=연합뉴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안타깝게 사망했을 때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분노했다.[사진=연합뉴스]

“정규직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우리와 달리 비교적 손쉽게 정규직이 되는 건 사실 아닌가.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노동자

“직군이 다르니까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지만, 애초에 해당 업무가 정규직이었다면 내 취업 목표에서 배제하지도 않았다.” - 인천국제공항공사 취업준비생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요원(1902명) 등 비정규직 214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반발이 끊이질 않는다. 공사 정규직 노조까지 나서 보안검색요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한다. 불만이 정규직이나 취준생에게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일부는 별도의 채용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정규직 전환이 안 될 수 있어서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노동자끼리 얽혀 삿대질을 해대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을 부추기는 미디어도 숱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또 취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기사들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건 갈등이 격화할수록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묘연해진다는 거다. 이번 논란이 문제의 핵심을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는 안전(산업재해)과 함께 놓고 봤을 때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먼저 2018년 12월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당시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비정규직 김용균씨가 야간작업 도중 연료공급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작 스물넷의 젊은 나이에 일하다 목이 잘려 숨졌다는 사실은 김씨와 비슷한 또래 젊은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야간작업은 2인 1조가 원칙이었지만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시신이 5시간가량 방치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젊은이들은 격하게 분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씨의 작업환경이 열악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컵라면과 고장 난 손전등이 공개되자 젊은이들은 그를 추모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뭔가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고, 유해ㆍ위험작업의 도급을 제한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일명 김용균법)이 이뤄졌다. 

이번엔 2016년 5월로 가보자.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던 만 19세의 김모군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김군은 스크린도어 수리 하청업체 비정규직이었다. 안타까운 건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탓에 사망사고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더구나 김군은 끼니도 제때 챙겨 먹지 못한 채 144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생활한 반면, 서울메트로 출신 정규직들은 편한 일만 하면서도 400만원의 고임금을 받았다. 하청업체 업무에 관한 서울메트로의 부실 감독도 도마에 올랐다.

이런 뒷얘기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의역을 방문해 김군의 죽음을 애도했고, 서울메트로와 정규직들의 행태에 분노했다. 결국 서울메트로 임원 등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사실 이런 사례들은 숱하다. 누군가는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편안한 일만 하면서 고임금을 받고, 누군가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저임금에도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현실에 많은 이들이 개탄했다. 그들은 이렇게 자문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비정규직과 산재의 연관성

하지만 사회는 공분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비슷비슷한 비정규직들이 넘쳐나고, 비슷한 위험에 처해 있다. 사실 ‘비정규직’과 ‘산재’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비정규직은 경영진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하도급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혹은 정규직의 안전과 건강만을 담보하며 ‘위험하고, 어렵고, 비위생적인’ 업무들을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이 외주를 주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는 고용불안에 처한다. 당연히 노조를 조직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17.6%(한국노동연구원ㆍ2019년 기준)인데 반해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3.0%에 불과하다. ‘내 노동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하기 어려우니 비정규직의 노동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이도 숱하다. 정규직의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74.3%지만, 비정규직의 경우 66.3%까지 떨어진다.

불안함을 무릅쓰고 노동환경 개선 문제를 따져 보려 해도 벽에 부딪히기 일쑤다. 법적인 사장은 원청의 중간관리자에 불과하고 원청업체 사장이 실질적인 사장인 경우가 허다해서다. 게다가 사고를 당해도 산재처리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랬다간 고용계약이 언제 파기될지 모른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정규직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도, 산재처리 비율이 낮은 것도 비슷한 이유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은 ‘공정경쟁’을 내세우지만 공정의 잣대는 사실 객관적이지 않다.[사진=연합뉴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은 ‘공정경쟁’을 내세우지만 공정의 잣대는 사실 객관적이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것은 저임금, 위험, 차별대우, 고용불안 등 모든 불합리함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취준생이 ‘경쟁에서 이겨 정규직에 들어가자’는 목표를 세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현실에서 김용균씨나 김군과 같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이 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김용균씨 현장을 사례로 들어보자. 2013년부터 한국전력의 5개 발전 자회사(한국남동발전ㆍ서부발전ㆍ중부발전ㆍ남부발전ㆍ동서발전)의 ‘소속 외 근로자(하청)’ 규모가 크게 상승했다. 2017년엔 증가율이 59.3%에 달했다. 또다른 통계도 있다. 2012~2017년 5개 발전 자회사에서는 총 384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372건(97%)이 하청 업무에서 발생했다. 당초 5개 발전 자회사가 짊어져야 했을 산재사고가 고스란히 하청업체로 옮겨간 셈이다. 원청이 ‘자기 직원들’만을 끔찍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결국 산재사고를 줄이는 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곱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공정’의 문제

이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구의역 김군이나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노조와 취준생들, 일부 언론들은 이를 ‘로또 취업’이라면서 반대한다. 비정규직 젊은이들의 사망사고에 눈물을 훔쳤던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논란의 핵심 키워드는 ‘공정경쟁’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심정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노력해서 어렵게 정규직이 됐는데, 어떤 이들은 정부 정책의 수혜로 순식간에 같은 회사의 정규직으로 들어온다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채용 비리 사건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불공정한 것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우선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원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해왔던 일이라는 점이다. 직군이 달랐을 뿐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야 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또 하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자본의 탐욕’에서 비롯된 구분법이라는 점이다. 갈등의 씨앗은 기업과 공기업, 공공기관이 노동비용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유연화와 외주화를 진행하면서 뿌려졌다. 비정규직법ㆍ파견법ㆍ기간제법 등은 노동유연화와 외주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결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그런 변화가 철학이나 기준도 없이 진행되고, 충분한 설득도 없으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부족한 게 바로 대화와 설득”이라면서 “지금의 갈등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을 소홀히 하거나 건너뛰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동정책의 기준부터 세워야

그럼 이 갈등을 어떻게 봉합해야 할까. 이병훈 교수는 “감정이 격하게 충돌하는 상황이어서 힘들겠지만 시간을 갖고 꾸준히 설득하고 경청하면서 수습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잡아가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노동정책에 관한 원칙부터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면서 “예컨대 노동자를 채용할 때는 정규직으로 하되, 그럼에도 비정규직 일자리가 꼭 필요할 때는 기본 원칙에 반하는 만큼 금전적 보상 등 처우를 더 강화하는 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렇게 부연했다. “취준생들의 반발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사회 분위기를 좀 바꿀 필요도 있다. 인재를 뽑는 것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일률적인 시험만으로 뽑는다는 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업무 연관성도 없이 점수만 잘 받으면 되고, 정작 현실에선 쓸모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인재 채용의 방법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든다면 취준생들이 이렇게까지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들은 역시 기준을 만들어 별도로 관리해야 할 거다. 원칙이 튼튼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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