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보고서❽ 현장의 목소리
온전한 손실보상 약속했던 건 정치권
약속 어겨놓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새 정부 6개월 자영업 정책 실종

# 테이블과 의자를 걷어내고 이른 밤에 가게 문을 닫았다. 생계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 명령을 따랐다. 그런데도 이들 손에 남은 건 각종 압류 독촉장과 체납 고지서뿐이다. 온전한 보상을 바랐을 뿐인데, 떼쓰는 처지가 됐다. 

# 도통 아물지 않은 상처를 ‘3고(고환율ㆍ고물가ㆍ고금리)’ 위기가 짓누르면서 더 욱신거리는 지금, 더스쿠프가 김진철 망원시장 상인회장과 이호준 경기도골목상점가연합회 회장을 만났다. 자영업 현장에서 체감한 코로나19 팬데믹의 고통은 과연 어땠을까. 

팬데믹 이후에도 자영업자의 살림살이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사진=뉴시스]
팬데믹 이후에도 자영업자의 살림살이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사진=뉴시스]

✚ 자영업자로 견딘 지난 2년의 팬데믹은 어땠나.
김진철 망원시장 상인회장(이하 김진철) : “우리에게 비포(before) 코로나와 애프터(after) 코로나는 문명이나 시대가 바뀌는 수준의 큰 경계선이었다. 무서운 바이러스는 자영업자에게 유난히 잔혹했다. 엔데믹(endemicㆍ풍토병)에 접어든 지금도 누적된 피해를 복구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

이호준 경기도골목상점가연합회장(이하 이호준) : “한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비교적 잘 막아내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대응 모범국가’라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편엔 팬데믹에 자영업자, 사회적 약자 등이 고통 받고 있다. 우리 입장에선 기업엔 관대하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겐 가혹한 불평등한 방역 정책이었다.”

✚ 구체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나.
이호준 : “밤 9시, 텅 빈 골목을 황망하게 바라보던 때가 떠오른다. 마치 세기말을 다룬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새벽 3~4시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 같은 골목에 있는 고깃집 사장님은 만나자마자 아무말 없이 눈물부터 흘렸다. 월세도 내야 하고,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는데 도통 방법이 없다는 호소였다.”

김진철 : “그나마 전통시장은 인원ㆍ시설운영 제한 같은 직접적인 행정 조치를 받는 경우가 적었다. 그런데도 피해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몰려오더라. 특히 국민들의 소비 패턴이 바뀐 영향이 컸다. 감염 위험으로 집 밖에 나가는 것을 꺼리면서 온라인 구매, 배달앱 이용이 일상이 됐다. 젊은층만 그런 줄 알았는데, 팬데믹을 거치고 나선 세대를 불문하고 언택트를 추구하고 있다.”

✚ 국민들이 마스크를 아직 쓰고 있지만 일상은 일부 회복했다. 지금은 어떤가.
김진철 : “체감경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누적된 피해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수 경기가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언택트 소비 습관 역시 관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렸는데도 회식, 외식 문화는 모습을 많이 감췄다. 언젠간 와야 할 시대인 건 알겠는데, 팬데믹이 너무나 많은 걸 앞당겨 놨다. 우리 자영업자가 대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호준 : “통제는 끝났지만, 그에 따른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생태계가 붕괴 위기에 놓여 있는데도 ‘가시밭길에 직면한 건 순전히 너희들의 선택이었다, 알아서 살아남아라’고 종용하는 느낌이 든다. 방역 조치가 한창일 땐 손님들이 응원해주기도 했는데, 지금 여론은 그렇지도 않다. 거리두기가 다 풀렸는데 왜 아직도 하소연하냐는 식이다. 정작 골목상권엔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부담이 심해졌는데도 말이다.”

✚ 정부는 ‘재난지원금’ ‘손실보전금’ ‘새희망자금’ 등 각종 이름을 붙여 자영업자에 현금을 지원하긴 했다.
김진철 : “그런 지원을 받은 덕분에 살 만하다는 사업주를 주변에서 본 적 있는가. 운 좋게 조건에 부합해 꼬박꼬박 지원받은 자영업자가 2000만원가량을 받았을 거다. 서울 주요 상권의 월평균 임대료(64.5㎡ 기준)가 350만원인데, 반년치 월세를 내면 끝이다.”

김진철 회장(왼쪽)과 이호준 회장은 “팬데믹 기간 누적된 피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사진=천막사진관]
김진철 회장(왼쪽)과 이호준 회장은 “팬데믹 기간 누적된 피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사진=천막사진관]

✚ 법적인 기준에 따라 보상하는 길도 생겼다. 지난해 7월 손실보상법이 통과하면서다. 
이호준 : “손실보상을 신청해서 받고도 ‘이 정도로는 밀린 임대료와 대출이자도 못 낸다’고 하소연하는 자영업자가 많다. 무엇보다 심각한 피해를 봤던 2020년과 2021년 상반기의 손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손실보상법의 소급적용은 여러 이유로 결국 무산됐다. 
김진철 : “나라 재정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도 했고, 이미 현금으로 줬다고도 했다. 데이터가 없고 산정 방식이 복잡해진다는 이유도 들었다. 방역조치를 시행할 때부터 자영업자를 지원하겠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다는 방증 아닌가. 코로나19가 자영업자 때문에 확산했나. 팬데믹은 우리가 만든 비극이 아니다.”

이호준 : “소급적용 법제화를 논의할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지리멸렬하게 다퉜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진행해야 했는데도, 여야는 재원 조달 방법, 지원 대상과 피해 산정 기준을 두고 사사건건 시비를 벌였다. 어떻게든 덜 주려고 계속 딴지 거는 모습을 보는 게 씁쓸했다.”

✚ 재정당국 입장에선 ‘건전 재정’이 중요하긴 하다.
이호준 : “해외 주요 선진국은 2020년부터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보상에 나섰다. 국채를 발행하거나 증세를 추진하는 등 재원 마련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들 국가 역시 재정 부담이 만만찮았을 텐데 그랬던 건 민생 피해 지원이 그만큼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르는 걸 지금 막겠다는 취지였다.”

✚ 그래도 법제화 덕분에 어느 정도의 피해는 보상받을 수 있지 않았나.
김진철 : “업종별로 영업이익률, 원가율, 비용, 기대 수익이 전부 다른데 이를 하나의 계산식에 대입했다. 정부의 자영업 이해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다. 사각지대도 상당했다. 여행업처럼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 업종도 있었고, 매출 통계에 미처 담지 못한 피해도 상당했다.”

✚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자영업자 지원’은 뜨거운 이슈였다. 주요 후보들은 수십조원이 훌쩍 넘는 돈을 투입해 자영업계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는데.
김진철 : “웃기는 일이었다. 자영업자가 요구한 적도 없는 금액을 자기들끼리 경쟁하듯 불렀다. 지금 와선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자영업자만 돈 달라고 떼쓰는 집단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호준 : “정치권의 ‘일단 뱉고 보자’는 식의 공약 남발이 우리를 더 괴롭게 했다. 일부 자영업자는 이들의 공약을 가뭄에 내린 단비처럼 받아들이지 않았겠나. 그래 놓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각종 핑계를 대면서 공약을 ‘없던 일’로 치부하고 있다. ‘과연 매일 선거가 있었어도 이렇게 했을까’란 회한이 든다.”

✚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1호 공약 역시 ‘온전한 손실보상’이었다. 그만큼 자영업계를 신경 쓰겠다는 의지였다. 새 정부의 6개월, 실제로 그랬는지 궁금하다.
이호준 : “최소 600만원, 최대 1000만원씩 손실보전금을 줬다. 이제 할 도리 다했으니 각자도생하라는 식이다. ‘온전한 손실보상’의 애초 의미는 과거 정부의 방역 조치에서 기인한 피해를 소급해서 지원한다는 것 아니었나. 매일 소독약 뿌리고 닦고 이른 저녁에 문을 닫고 테이블도 뺐고 임대료도 꼬박꼬박 냈는데, 1000만원으로 보상이 되겠나.”

김진철 : “보상도 문제지만, 자영업 정책이 실종된 게 더 큰 문제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유통업계 운동장이 대기업 쪽으로 기울었는데, 오히려 이 기울기를 더 가파르게 하는 정책만 펼치고 있다.”

✚ 어떤 정책이 그런가.
이호준 : “대표적인 게 플랫폼 규제다. 팬데믹을 계기로 몸집을 키운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을 규제하는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은 이번 정부 들어 사실상 폐기처분됐다. 대신 ‘민간 자율규제’를 새 원칙으로 내걸었다. 그동안 혁신이란 미명 아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던 플랫폼의 일탈을 자율규제로 막기는 역부족이다. 결과적으론 논의가 중단됐지만,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국민제안 투표에 올린 일도 황당했다. 자영업자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어떻게 인기투표하듯 처리하나.”

김진철 : “정부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정책의 무용론을 제기했다.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었다. 적합업종 제도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중소기업, 소상공인이 뿌리를 내린 업종에 대기업이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는 거다. 이마저 무력화하면 우리의 설자리는 더 좁아진다.”

✚ 최근엔 지역화폐 내년 국비 지원 예산이 삭감된 게 문제가 됐다.
김진철 : “자영업자에게 지역화폐의 존재를 비유하면 이렇다. ‘목이 말라 죽기 직전인데, 감사하게도 물 몇방울을 마시게 하는 것.’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통해 확산하기 시작한 지역화폐는 참 신기한 정책이었다. 전통시장은 특성상 찾는 이들만 주로 오기 때문에 단골이 많은데, 지역화폐가 등장한 뒤 낯선 얼굴들이 늘어났다. 지역화폐는 언택트 소비패턴을 일부 골목으로 되돌린 중요한 자영업자 지원 정책이었다.”

이호준 :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역화폐의 경제효과를 의심하더라. 이는 대기업 논리다. 한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해 봤더니, 올해 10월까지 결제된 지역화폐가 1조5000억원이나 됐다. 이런 규모의 돈을 백화점, 대형마트에선 쓸 수 없다니 그들 입장에선 얼마나 안타깝겠나.”

✚ 묘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호준 : “당장 마땅한 출구전략은 없다. 그간 우리 자영업자는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하고 매출 절벽을 버텨왔다. 이때 대출이 버팀목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족쇄가 됐다. 쌓인 빚을 생각하면 가게를 접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지금까지 받았던 각종 대출을 생각하면 폐점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장님들이 적지 않다.”

✚ 정부 정책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김진철 : “단순히 보호와 지원 대상이 아닌 산업적인 측면에서 고려했으면 좋겠다. 경제의 밑단인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그 피해가 어디까지 전이될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호준 : “이대로 흘러가면 5년 안에 큰일이 벌어질 거다. 자영업 생태계가 아예 무너질지도 모른다.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 자영업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것 같다.
이호준 : “얼마 전엔 폐업한 청년 자영업자를 만나러 갔다. 주변 가게 사장님들이 위로 차원에서 각자 만든 요리를 갖고 모였더니 식탁이 너무 풍성해지더라. 덕분에 폐업을 결정한 청년의 미래 행보를 밝은 분위기로 응원할 수 있었다. 우리 자영업자도 서로 도우며 사는 ‘두레 정신’이 필요해 보였다. 처한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을과 을의 갈등으로 불거지는 비극은 없었으면 좋겠다.”

김진철 : “맞다. 전통시장만 해도 유통 대기업이 내미는 상생지원책을 두고 누가 더 많이 갖느냐며 갈등을 벌인다. 모든 자영업자가 고통 속에 있는 건 아니지만, 절대다수가 힘든 게 사실이다. 서로 유기적으로 밀어주고 끌어줘야 한다. 이제 뭉쳐서 한목소리로 대응해야 할 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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