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자화상➋ 속 곪는 K-팝
호실적 속 엔터주 랠리
K-팝 위상 높은 건 사실이지만
기업문화 문제로 근속연수 짧아
폐쇄적인 지배구조 드러나기도
소속 아티스트와 분쟁도 잦아
탄탄한 산업 기반 마련해야

2023년 K-팝 산업은 영광을 누리는 동시에 한계도 절감했다. 세계 시장에서 K-팝의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제작 시스템의 전근대적인 구조가 세상에 드러나 몸살을 앓기도 했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곪아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가 근사하게만 보이는 K-팝 산업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K-팝 문화의 위상은 눈부시게 달라졌다.[사진=연합뉴스]
K-팝 문화의 위상은 눈부시게 달라졌다.[사진=연합뉴스]

지금은 ‘K-팝 전성시대’다. 한류韓流의 발원지로 꼽히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ㆍ유럽시장을 강타하면서 세계 음악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채비를 마쳤다. 이런 K-팝의 저력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차트로 평가받는 ‘빌보드’에서 잘 드러난다.

다수의 한국 아티스트가 이름을 올리면서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차트에서도 ‘BTS’나 ‘블랙핑크’ ‘뉴진스’ 같은 인기 아이돌의 이름을 종종 볼 수 있다. 

K-팝이 호황을 누리면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음반 수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반 수출액은 2억3311만 달러(약 2895억원)로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음반 수출액은 2017년 처음으로 4000만 달러를 넘긴 이후 매년 성장을 거듭해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1억 달러와 2억 달러를 돌파했다. 

관련 기업의 실적도 덩달아 뛰어올랐다. ‘엔터사 빅4’로 분류되는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SM엔터), JYP엔터테인먼트(JYP엔터), 와이지엔터테인먼트(와이지엔터)의 올해 1분기 합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900억원, 1492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1월부터 5월 31일까지 이들 4개사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73.8%를 기록했다. 기업가치를 따져보면 웬만한 대기업에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빅4 모두 코스피ㆍ코스닥 시총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기대하는 기업가치는 20조원이다. LG전자의 시가총액이 20조원 안팎이라는 걸 고려하면 금값이 된 엔터사의 몸값을 짐작할 수 있다. 

엔터 산업의 근속연수는 길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엔터 산업의 근속연수는 길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 못 버티는 직원들 = 그렇다면 K-팝 산업의 앞날엔 꽃길만 놓인 걸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그럴듯한 업적을 뽐내는 것과 달리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직 체질이 허약하다. 

지난 3월 말 기준 빅4 엔터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3.7년이었다. 2020년 말 기준 3.5년보다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이 기간 K-팝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극적인 변화는 아니다. 

회사별로 보면 대장주로 꼽히는 하이브의 근속연수가 2.3년으로 가장 짧았고, JYP엔터가 4.3년으로 가장 길었다. 와이지엔터는 3.9년, SM엔터는 4.2년으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잡코리아가 조사한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 근속연수 11.4년(2020년 기준)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쳤고, 통계청이 조사한 전체 임금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7.2년ㆍ2021년 기준)보다도 짧았다. [※참고: 다만 하이브의 근속연수가 유독 짧은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이브는 최근 3년간 빅4 중 새 직원을 가장 많이 늘렸는데, 이런 신규 채용이 근속연수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 기업의 근로여건이 나빴다고 보긴 어렵다. 지난해 빅4의 평균 급여액은 7570만원으로 국세청 국세통계의 임금근로자 평균 급여(4024만원)보다 훨씬 높았다. 통계청이 조사한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소득(6756만원)에 견줘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근속연수가 짧을까. 빅4 출신의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엔터테인먼트 기업 직원의 과거 업무는 주로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2ㆍ3차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하는 인재가 필요해지면서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연봉을 인상하고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긴 했다. 그런데도 근속연수가 짧다는 건 기업문화가 성숙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특히 최근 몇년간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실적에 집중하고 속도를 중시다. 겉으론 꿈의 직장, 수평적 조직문화를 내세우지만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 분위기가 만연하다. 이사회가 있는데도 오너나 일부 경영진의 입김에 의해 회사 경영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았고 전근대적인 제작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우수한 인력은 곧 산업의 자산이자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엔터산업의 낮은 근속연수는 큰 리스크다. 

■ 불투명한 경영 시스템 = K-팝 산업의 폐쇄적인 지배구조 역시 고질적 문제다. 올해 초 한국 증시를 뜨겁게 달궜던 SM엔터 경영권 분쟁은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PD)를 둘러싼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에서 기인했다. 회사명부터 이수만 전 PD의 이름을 딴 SM엔터는 창업주의 영향력이 상당히 컸다.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과정에서도 그의 입김이 셌다. 

문제는 이 영향력이 지나쳤다는 점이다. SM엔터는 1990년대 후반부터 ‘라이크기획’이란 회사와 프로듀싱 용역계약을 맺고 매출의 일부를 떼어주고 있었는데, 라이크기획은 이 전 PD의 개인회사였다. 

그런 라이크기획은 20년 넘게 SM엔터 연간 매출의 6%, 영업이익 기준 30~40%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을 수취했다. 이 문제를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공론화하면서 경영진들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경영권 다툼이 한창이던 지난 2월 17일 SM엔터테인먼트 평직원 협의체가 발표한 성명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이수만 전 PD가 자신의 불법, 탈세 행위가 드러날 위기에 놓이자 본인이 폄훼하던 경쟁사에 보유 주식을 매각하고 도망치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 SM엔터 구성원은 이 전 PD의 사익 편취와 탈세 등의 불법 행위에 철저히 이용돼 왔다.”

비단 SM엔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불투명한 기업 시스템은 K-팝 산업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왔다. 엔터사가 걸핏하면 소속 아티스트와 소송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말 불거진 ‘이승기 노예계약 사건’은 대표적 사례다. 이승기씨의 소속사였던 후크엔터테인먼트는 데뷔 이래 18년 동안 음원 수익을 한 푼도 나눠주지 않았다. 이 회사는 회계 조작을 통해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엔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의 일부 멤버가 자신들을 발굴한 SM엔터를 상대로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SM엔터 측이 정산 세부 자료 제공 등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는 “노조 불모지로 꼽히던 IT 산업에도 노조가 생기는 요즘 시대에 K-팝 산업을 대표하는 빅4에 노조가 없는 건 조직문화를 잘 드러내는 일”이라면서 “특정 개인이나 아티스트에 휘둘리는 회사, 건강한 노조가 없는 회사란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문제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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