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근로자 대표제 취지, 勞 교섭력 강화
정부 개편안 취지 살릴 수 있을까
국힘은 왜 대표제 내세웠을까
자칫 어용 노조 활개 칠 수도
하청ㆍ비정규직 보호 장치 없어

정부와 여당(국민의힘)이 ‘근로자 대표제’를 손볼 예정이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6월 15일 열린 6차 회의에서 근로자 대표의 활동을 법으로 보장하고, 이 과정에서 사용자의 개입이나 방해를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자 대표제 개선 방안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얼핏 보면 근로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근로자 대표제 개선 방안을 두고, 일부에선 우려를 내놓는다. 왜일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근로자 대표제 개편을 들고 나왔지만 실효성이 없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근로자 대표제 개편을 들고 나왔지만 실효성이 없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근로자 대표제’가 노동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노동계와 대립관계를 형성해온 정부와 여당이 갑자기 친노동 정책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근로자 대표제 개선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왜 그런 걸까. 답을 찾기 전에 근로자 대표제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근로자 대표제란 근로자들이 그들의 대표를 통해 사용자와 대등한 조건에서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가 탄생한 배경은 일반적인 노사관계에서 사용자가 개별 근로자보다 우위에 있어서다. 예컨대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사용자는 개별 근로자보다 정보가 많다. 이 경우 사용자와 개별 근로자가 근로조건을 정하면 사용자에게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보건법, 근로자참여법 등 일명 ‘노동법’으로 불리는 다양한 법률은 근로자들이 그들의 대표를 선출해 사용자와 함께 근로조건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들이 단합해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를 가진 후에 협의를 꾀하라는 거다. 이게 바로 근로자 대표제의 취지다. 

중요한 건 이런 법 규정과 원칙이 존재함에도 근로자 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각 노동법에는 사용자가 근로자들이 선출한 대표와 협의를 해야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근로자 대표를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지는 따로 규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 입장에선 근로자 대표만 잘 설득하면 자신이 원하는 근로조건을 만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사용자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어용 노조나 노사협의회, 자신이 임명한 근로자 대표를 두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일례로 2020년 삼성화재 자회사인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은 적법한 방법으로 선출되지 않은 근로자위원(근로자 대표)을 노사협의회에 앉힌 후, 임금조정 절차를 진행해 논란을 빚었다. 이 사건은 고용노동부가 해당 근로자위원의 지위를 박탈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고, 이 과정에 사용자가 개입할 수 없도록 하며, 근로자 대표의 권한을 보장하는 장치를 만들겠다고 하니 근로자 입장에선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근로자들이 민주적으로 자신들의 대표를 뽑고, 이렇게 선출된 대표가 사용자와 적극적으로 협의하면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당정은 ‘근로자의 과반수로 구성된 노조가 있으면 과반수 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 참여를 통해 선출된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이, 둘 다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가 직접 참여해 직접ㆍ비밀ㆍ무기명 투표를 통해 선출된 이가 근로자 대표가 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노조가 없는 기업에 노조를 만들 수 있을 법한 제도적 장치다. 


문제는 실효성이 있느냐다. 언급한 것처럼 근로자 대표제의 핵심 과제는 사용자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근로자들의 교섭력을 맞춰주는 건데, 이걸 정부와 여당의 근로자 대표제 개선 방안이 해결할 수 있냐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 문제➊ 사용자 개입 여부 = 첫째, 사용자 개입을 막을 장치가 없다. 정부와 여당의 근로자 대표제 개선 방안에 따르면,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이 근로자 대표가 된다. 물론 근로자위원은 근로자 과반의 투표로 선출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자의 개입을 막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과 같은 사례를 방지할 수 있느냐는 거다. 

사용자 개입 시 사용자를 형사 처벌하는 내용을 넣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그런다고 바뀔 건 별로 없다. 현행 노조법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조 활동을 방해하면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 형사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부당노동행위는 버젓이 일어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부당노동행위 신고 건수는 2019년 1000건을 넘어선 이후 크게 줄지 않고 있다. 반면 부당노동행위 사건의 권리구제율(전부 혹은 일부 인정과 화해를 포함, 기각ㆍ각하ㆍ취하 제외)은 2021년 기준 20.9%로 2018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다. 이를테면 노조 설립이나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로자 대표 선출에 개입하려는 사용자를 막을 수 있겠냐는 거다. 

■ 문제➋ 하청ㆍ비정규직 사각지대 = 둘째, 정부와 여당의 근로자 대표제 개선 방안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노사 문제로 꼽히는 하청ㆍ비정규 근로자들의 교섭력 개선 방안이 담기지 않았다.

사실 이들의 근로조건 개선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풀겠다고 강조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핵심을 건드리지 않은 거다. 하청ㆍ비정규 근로자들이 제아무리 민주적으로 근로자 대표를 뽑는다 한들 ‘진짜 사장’을 찾지 못하면 이들의 교섭력은 제로나 마찬가지다. 

■ 문제➌ ‘과반수’에 매몰 = 셋째, ‘근로자 과반수가 참여해 선출하는 근로자 대표’라는 원칙에 매몰돼 교섭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반수의 지지를 얻는 근로자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교섭 내용이 오락가락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과반수에 매몰된 원칙은 “사업장 내 고용형태나 근로형태, 근로방식이 다른 소수직종이나 청년세대를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이를 의식한 듯 국민의힘 측은 ‘부분 근로자 대표제’를 대안으로 내놨다. 부서별로 근로자 대표를 뽑자는 거다. 하지만 이는 지위가 낮은 개별 근로자들의 힘을 모아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를 만든 다음에 협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근로자 대표제의 대원칙에 위배된다. 그래서 일부에선 근로자들의 지지율에 따라 ‘비례 대표성’을 부여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식 방안이다. 

국민의힘이 근로자 대표제를 개편하는 이유는 ‘주 69시간 근무제’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다.[사진=뉴시스]
국민의힘이 근로자 대표제를 개편하는 이유는 ‘주 69시간 근무제’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다.[사진=뉴시스]

이런 세가지 문제를 종합하면, 정부와 여당이 왜 근로자 대표제를 개선하겠다며 나섰는지 의문이 생긴다. 임이자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6월 15일에 했던 주장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근로시간 결정에 있어 근로자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 소수직종이나 청년세대를 실질적으로 대표하기 위해 근로자 대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공감했다….” 정부가 추진하다가 반발에 부딪혔던 ‘주 69시간 근무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사용자만을 위한 게 아니다’는 걸 뒷받침하려 근로자 대표제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성희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근로자의 교섭력을 높이려 했다면 산별노조를 장려해 이들이 맺은 교섭이 산업별 근로자에게 적용되도록 하는 효력확장제도를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현 정부의 근로자 대표제 개편이 의심스러운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와 여당의 근로자 대표제 개선 방안은 ‘노사 간 자율적 근로시간 조정’을 위해 등장한 것”이라면서 “그럼 근로자 대표제 개선의 실효성보단 탄력근무제의 실효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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