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우윳값에 숨은 불편한 요인
밀크플레이션 진짜 원인
낙농가 생산비 끌어올리는 건
지속적으로 오르는 사료가격
국제곡물 오를 땐 가격 인상
하향ㆍ안정세엔 환율 핑계

우유 가격이 곧 오를 전망이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유업계가 그걸 반영해 가격을 인상하기 때문이다. 유업계는 “낙농가가 사룟값 인상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어서 원유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 “흰우유는 마진이 적어 인상분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낙농가는 왜 사룟값 때문에 고통받고 있을까. 국제곡물가격은 하락했는데도 말이다.

국제곡물가격이 하락해도 사룟값은 떨어지지 않았다.[사진=뉴시스]
국제곡물가격이 하락해도 사룟값은 떨어지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우윳값 인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배합사료 제조업계와 유가공업계를 연이어 불러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우유 가격 인상을 신호탄으로 식품업계 곳곳에서 가격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우유+밀크플레이션)’을 우려해서다.

그동안의 수순을 보자. 낙농가가 원유 가격을 올리면 유업계는 흰우유를 비롯해 제품 가격을 인상해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원유 가격은 지난해 1L당 947원에서 올해 996원으로 49원(5.2%) 인상됐다.

반면 업계 상위 3개 업체(서울우유ㆍ남양유업ㆍ매일유업)는 10.2~ 16.2% 가격을 올렸다. 그 결과 지난해 흰우유 1L 소비자 가격은 2800원대로 올라섰다. 여기서 또 한 차례 원유 가격 인상을 결정한 만큼 3000원을 넘기는 건 시간문제다. 

이런 수순이 반복될 때마다 낙농가는 “생산비가 올라 원유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유업계는 “흰우유는 마진이 거의 없어 원유 가격이 오르면 제품 가격에 인상분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주장은 맞는 말일까. 원유 가격을 끌어올리는 생산비를 들여다보자. 

통계에 따르면 우유 생산비는 해마다 오름세다. 우유 1L당 생산비는 2021년 842.95원에서 2022년 958.71원으로 13.7% 상승했다. 생산비의 57.9%를 차지하는 사료비(사룟값)은 489.15원에서 570.34원으로 16.6% 올랐다. 그렇다면 생산비가 올라 원유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낙농가의 주장은 들어맞는다. 

여기서 짚어볼 게 있다. 사룟값이다. 사료의 원재료는 옥수수ㆍ대두박(콩) 등 곡물인데, 대부분 수입해서 쓴다. 국제곡물가격의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2020년 하반기부터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서 국제곡물가격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엔 더 폭등했다. 2022년 1월 140.60이던 곡물가격지수는 넉달 만인 같은 해 5월 173.40까지 치솟았다(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ㆍFAO). 그 영향으로 사료용 곡물의 수입단가도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료용 곡물가격은 지난해 5월부터 빠르게 올랐다. 옥수수부터 보자. 지난해 4월 톤(t)당 328달러였던 사료용 옥수수 가격은 5월 356달러, 6월 377달러, 7월 404달러까지 올랐다. 

대두박은 어떨까. 4월엔 474달러였는데 옥수수와 마찬가지로 매달 가격이 뛰어 5월 507달러, 6월 569달러, 7월 623달러를 찍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사료용 곡물가격은 차츰 하향세로 돌아섰고, 지난해 12월부터는 사료용 옥수수는 330달러대, 대두박은 54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곡물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면, 사룟값도 떨어지는 게 맞다. 낙농가도 지속적으로 사룟값을 인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축산생산자단체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그동안 사료업체들은 사룟값을 인상할 때마다 ‘향후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하면 반영하겠다’고 밝혀왔지만 국제곡물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환율 상승을 이유로 사룟값 인하를 차일피일 미뤘다”면서 “11월부터 환율도 떨어지고 있는 만큼 사룟값을 즉각 인하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목소리에 응답한 건 배합사료업계의 2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1위 업체 농협사료뿐이다. 농협사료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두차례 가격을 내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환율 변동성 등으로 사룟값 인상요인이 지속됐지만 국제곡물가격과 환율 안정세에 따라 가격인하를 단행한다.” 

하지만 나머지 업체들은 현재까지 요지부동이다. 되레 가격을 올린 곳도 있다. 사료업계 2위 업체인 팜스코를 보자. 공시에 따르면, 팜스코의 축우사료 주요 제품 가격은 지난해 1분기 t당 49만9553원에서 국제곡물가격이 최고치를 찍었던 3분기 53만8375원으로 인상됐다.

올해 1분기엔 거기서 다시 57만9553원으로 뛰어올랐다. 국제곡물가격 그래프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사룟값이 오른 거다. 그 결과, 팜스코의 사료 매출은 2021년 1조392억원에서 지난해 1조3544억원으로 증가했다.    

업체들은 ‘시차’를 이유로 내세울지도 모른다. 국제곡물가격이 국내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다는 거다. 물론 시차는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사료업체들은 국제곡물가격이 오를 땐 시차를 적용하지 않는다. 국제가격이 오르면 시차를 무시한 채 선제 반영한다. 반면 국제곡물가격이 하락하면 갖가지 이유를 대며 그 시점을 미루거나 귀를 닫아버린다.

사룟값뿐만 아니라 우윳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은 숱하다.[사진=뉴시스]
사룟값뿐만 아니라 우윳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은 숱하다.[사진=뉴시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료용 곡물은 전년 동기 대비 18.6%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했다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지난해만큼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사료업체들은 이제 어떤 명분으로 빠져나갈까. 

물론 원유 가격이 인상되는 배경엔 사룟값의 비밀만 있는 건 아니다. 원유가 소비자에게 이를 때까지 유통단계마다 붙은 갖가지 ‘마진’ 때문에 900원짜리 원유가 3000원짜리 우유로 돌변하는 거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미국ㆍ일본의 우유 유통마진은 10~ 20%인 반면 우리나라는 38.0%(2019년 기준)”라면서 “우윳값 오르는 걸 낙농가의 원유 가격 문제로만 치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윳값에 불편한 비밀이 가득하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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