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천태만상 [세태+]
코로나19 신조어 경제학➊
청년일자리 대변한 취업 신조어
2020년 청년 투자시장 뛰어들며
영끌족, 빚투족 등 대거 등장
상대적 빈곤 나타내는 벼락거지

# 2019년
플렉스, 이생망, 청년실신


# 2020년
집콕족, 영끌족, 벼락거지


# 2021년
N차 신상, 럭비남


# 2022년
짠테크, 앱테크

# 2023년
무지출 챌린지, 갓생


# 해학과 풍자가 담긴 재치 넘치는 신조어를 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 더스쿠프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부터 유행했던 신조어부터 엔데믹(endemicㆍ풍토병)으로 전환한 2023년 현재의 신조어까지 파헤쳐봤다. 신조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코로나19 신조어 시리즈 1편에서 2019년부터 2020년까지의 시대상과 신조어부터 살펴보자.

코로나19 국면에서 현실을 아프게 풍자한 ‘신조어’가 유독 많이 등장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국면에서 현실을 아프게 풍자한 ‘신조어’가 유독 많이 등장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변했고, 고작 한치 앞은 장담할 수 없는 미래로 돌변했다. 기댈 만한 울타리를 갖고 있는 이들에겐 충격이 덜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일상을 뒤흔들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현실을 아프게 풍자한 ‘신조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 건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 신조어를 하나씩 살펴보자. 

■ 플렉스 vs 청년실신 = ‘플렉스(flex)’는 사전적으로 ‘구부리다’ ‘몸을 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힙합 문화에선 이를 약간 꼬아서 부富를 과시하는 용어(플렉스했다)로 쓴다. 2019년 유행처럼 번진 플렉스의 의미도 후자 쪽이다. 

그해를 기점으로 인스타그램 등 개인 SN S에 플렉스하는 게시물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30~40대가 주를 이루던 명품시장에 10~20대가 뛰어들어 플렉스 문화를 키웠고, 그 덕에 백화점의 해외 유명 브랜드의 매출은 76.2%나 증가했다. 

물론 모든 청년이 ‘플렉스’에 빠져든 건 아니다. 또다른 한편에선 ‘청년실신’ ‘무전무업無錢無業’ ‘이생망’이란 신조어가 고개를 들었다. ‘청년실신’은 취업준비생 세계에서 유행한 신조어다. ‘청년’에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앞자를 딴 단어다. 일자리가 없어 돈을 빌려놓고 갚지 못하는 20대가 늘고 있는 현실을 빗댄 조어다. 

‘무전무업’도 당시 청년들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신조어 중 하나였다. 좁은 문을 뚫고 취업에 성공하려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따고, 어학 실력을 키우는 거다. 소위 ‘스펙’을 쌓는 건데, 문제는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취준생들의 처지를 표현한 게 ‘돈 없이는 취업도 어렵다’는 무전무업이다. 나아가 청년실신과 무전무업이 더해지면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의미의 ‘이생망’이 되는 거다. 

이런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엔 201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저성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17년 3.2%로 잠깐 3%대로 올라서긴 했지만 2015년부터 2%대 성장률이 이어졌고, 2019년 2.2%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거셌던 2009년에 0.8%를 기록한 이후 최저 성장률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여러 악재가 겹친 탓”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실제로 당시 대외적인 환경은 아주 좋지 않았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 규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ㆍBrexit) 등 글로벌 무역에 나쁜 영향을 주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이런 변수는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해 수출 실적은 2009년 이후 10년 만에 두 자릿수 감소세(10.3%)를 기록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기업들은 당연히 고용문을 닫았고, 좁아진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한 청년들이 ‘이번 생은 망했다(이생망)’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를 지나오며 등장한 신조어에서 청년들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를 지나오며 등장한 신조어에서 청년들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 벼락부자 vs 벼락거지 = 안타깝게도 상황은 점점 더 악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인 2020년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국내에선 1월 20일 첫 감염자가 발생했다. 

폭발적인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3월 22일 처음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됐다. 대부분의 학교에선 수업을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전환했다. 대학 신입생은 20학번 대신 ‘코로나 학번’으로 불렸고, 2년제 대학에 다닌 학생들은 제대로 대면 한번 하지 못하고 졸업해야만 했다. 

자유로운 외부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집과 관련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집안에서 주로 생활하는 ‘집콕족’을 시작으로 ‘홈코노미(홈+이코노미)’ ‘홈트(홈+트레이닝)’ 등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다녀도 될 만큼 편의시설이 주변에 다 있는 생활권)’ ‘편세권(편의점이 가까운 거주 지역)’ 등도 2020년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신조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집의 의미가 커졌기 때문일까. 가뜩이나 널뛰던 부동산 시장이 2020년 활활 타올랐다. 금리가 0%대까지 떨어지고,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더해진 상황에서 부동산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면서 부동산 시장에 투자하는 이들이 급증했다. 

2020년 주택 매매거래량(127만9305건ㆍ국토교통부)은 전년 동기(80만5272건) 대비 58.9% 급증했고, 5년 평균 매매거래량(97만1071건)과 비교하면 31.7% 늘어났다. 아파트 거래량(93만4078건)은 71.4% 폭증했다.

청년들이 대거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면서 ‘영끌족’ ‘빚투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사진=연합뉴스]
청년들이 대거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면서 ‘영끌족’ ‘빚투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사진=연합뉴스]

거래에 뛰어든 이들 중엔 청년들도 많았다.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빚까지 내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청년들이 대거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면서 ‘영끌족’ ‘빚투족’이라는 용어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집값은 당연히 폭등했다. 정부가 이를 잡기 위해 2개월에 한번꼴로 대책을 내놨지만 고삐 풀린 집값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가운데 청약을 포기하는 ‘청포족’도 등장했다.

부동산과 관련해 생긴 신조어가 또 하나 있는데 ‘벼락거지’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집을 보유한 이들은 집값 폭등으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됐다. 반면, 재테크를 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벼락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벼락거지는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산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처지를 일컫는 신조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한 걸 벼락거지란 신조어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코로나19와 신조어 2편에서는 2021년부터 현재까지의 신조어를 들여다보자. <다음호에 계속>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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