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남의 생각⓲ 전문자격사 시험
변호사, 회계사, 관세사 등
전문자격사 시험 개방 필요
대학교육 연계로 문턱 낮춰
전문자격사 대거 양산하고
소비자 선택권 확대해 가야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등은 일종의 자격을 따는 시험이다. 공무원 임용고시와 달리 이들을 ‘자격시험’이라 부르는 이유다. 말 그대로 자격을 주는 시험이기 때문에 문턱을 높일 필요가 없다. 되레 많은 전문자격사를 양산해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도록 하는 게 시장경제에 더 어울린다. 그러면 전문자격사의 독점 논란도 사라질 수 있다. 전문자격사 시험, 이제 청년에게 대폭 개방하면 어떨까.

전문자격을 딴 이후에도 경쟁하는 시장은 만드는 게 소비자에게도 좋다.[사진=뉴시스]
전문자격을 딴 이후에도 경쟁하는 시장은 만드는 게 소비자에게도 좋다.[사진=뉴시스]

의사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변리사관세사공인중개사공인노무사….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문자격사다. 국가가 전문자격사 제도를 운영하는 주된 목적은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으로 인한 시장 실패를 막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면, 소송법률 전문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를 위해 전문자격사 변호사에게 법률서비스 제공을 허락하는 방식이다.

전문자격사 중 변호사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의사는 의과대학(또는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해야 한다. 공인회계사는 회계학
세무학 관련 과목 12학점 등을 이수해야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사실상 시장 진입 규제 조항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변리사ㆍ세무사ㆍ관세사 등은 자격을 규제하는 요건이 거의 없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출제하는 시험에서 합격하면 자격증이 나오고, 능력에 따라 상당한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청년층이 몰려든다. 

하지만 이들 시험을 통과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합격하면 공무원의 길을 밟는 임용고시가 아니라 자격고시인데도 문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낙방을 유도하기 위한 ‘킬러 문제’가 지나치게 많다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청년세대가 좌절한다. 합격하면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겠다는데 굳이 정부가 나서서 이를 막을 필요가 있는가. 

생명을 다루는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는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모두 합격시키되 그들의 경쟁력은 소비자가 시장에서 판별하도록 하는 게 시장경제 취지에 부합한다. 정부가 청년세대의 혼인ㆍ출산율 저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과목별 합격제도를 만들어 전체 시험에선 합격하지 못해도 합격선을 넘은 과목은 다음 시험에서 면제해줄 필요가 있다.

미국 공인회계사는 이런 방식으로 선발한다. 변리사ㆍ세무사ㆍ관세사 등을 둘러싼 문제는 또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양질의 전문적인 서비스를 적정한 가격으로 제공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검토할 것이다. 

전문자격사 시험 문턱을 낮추면 청년실업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사진=
전문자격사 시험 문턱을 낮추면 청년실업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세무사ㆍ변리사 등의 권한이 너무 좁다. 법적ㆍ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변호사의 직무를 규정한 변호사법 제3조를 보자.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 사무를 하는 것을 직무로 한다.” 

이 규정은 세무사나 변리사 등의 소송 대리 가능성을 좁혀놓는다. 가령, 세무 전문가인 세무사들에게 조세소송을 맡기기 위해 ‘세무사법’을 개정하려 해도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런 행위가 ‘국회법’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란 지적은 수없이 제기됐다. 

반면, 같은 전문자격사이지만 변호사의 권한은 지나치게 넓다.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법률가와 비법률가 또는 유사 전문자격사 간의 동업이나 제휴(association)를 허용하고 플랫폼을 이용한 일괄 서비스(one-stop service)를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전문자격자 제도 개편  필요

인공지능(AI) 시대에 법조문이나 판례의 단순 암기 실력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변호사 등 전문자격사의 성격을 독점적 업무를 보장하는 ‘면허(license)’에서 자격증 소지자의 품질만 인정해주는 ‘인증(certificate)’으로 전환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문자격사 취득과 대학교육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 사건에 왜(why)라는 물음을 던지고, 여기에 걸맞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대안을 찾는 방법을 훈련하는 곳이다. 

반면 사설학원은 법조문이나 판례 등 무엇(what)을 외우고 숙달하는 곳이다. 교육의 기본은 대학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문자격사 자격증의 취득을 위한 사설학원이 붐비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도한 이익 추구로 시시때때로 논란을 빚는 전문자격사의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대학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각 전문자격사의 특성에 맞게 특정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 언급했듯 한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학점이수제를 도입한 건 그래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평생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는 전문자격사는 청년세대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구나 이들 분야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실업률을 제고하고, 소득의 분배를 개선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청년세대가 전문자격사 시장에 비교적 쉽게 진입하도록 문턱을 낮추고, 진입한 뒤 맘껏 경쟁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게 국가나 소비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청년세대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 더스쿠프
acnanp@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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