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2편
5월 수출 휘발유값 크게 하락
반면 내수 휘발유값 하락폭 적어
국내 소비자 호갱으로 본 걸까

# 국제유가를 국내유가에 반영할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공식이 있다. ‘국제가격이 오를 땐 빠르게, 내릴 때는 천천히’ 반영한다는 거다.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공식이다.

# 그런데 여기 다른 공식이 하나 더 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땐 수출가격보다 내수가격을 더 많이 올리고, 내릴 땐 수출가격보다 덜 떨어뜨린다’는 거다. 이는 통계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제2편이다. 

국제유가 상승기에 휘발유 내수가격은 수출가격이나 국제유가, 국제 휘발유 가격보다 더 크게 올랐다.[사진=뉴시스]
국제유가 상승기에 휘발유 내수가격은 수출가격이나 국제유가, 국제 휘발유 가격보다 더 크게 올랐다.[사진=뉴시스]

우리는 ‘기름값의 또다른 비밀’ 제1편에서 올해 1~7월 월별 국제유가와 국제 휘발유 가격, 휘발유 수출가격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봤다. 이제 같은 시기 주유소에서 판매된 월별 석유제품 가격과 정유사의 세전 공급가격을 살펴볼 차례다. 쉽게 말해, 수출가격과 내수가격을 비교해보려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내 소비자들은 정유업계와 주유업계의 ‘호갱’이나 다름없었다. 

■ 분석➋ 5월 국내 휘발유 가격의 비밀 = 그럼 국내 휘발유 가격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주유소 평균 가격으로 살펴보면 1~4월 휘발유 가격은 크게 올랐다가 5월을 기점으로 하락, 7월에 다시 반등세를 보였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국제 원유 가격이나 국제 휘발유 가격보다는 상승세가 가파르고, 하락세는 완만했다는 점이다(표➍). 특히 5월의 국제 원유 가격이나 국제 휘발유 가격은 예외 없이 1월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형성돼 있다. 하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3월 가격 수준에 머물렀다. 

정유사의 휘발유 공급가격(세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유소 평균 가격과 달리 5월 평균 공급가격은 1월보다는 낮았다. 국제 휘발유 가격과 비슷하게 움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하락률이 그리 높지 않다.

1월 정유사의 평균 휘발유 공급가는 L당 795.45원인데, 5월 평균 공급가는 789.33원으로 고작 6.12원(0.8%) 낮았을 뿐이다(표➎). 같은 시기(1월 대비 5월) 휘발유 수출가격이 싱가포르는 14.1%, 일본은 8.7%, 필리핀은 5.4% 떨어졌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유사는 수출용 휘발유에 국제유가 변동치를 철저히 반영했지만, 내수용엔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정유사는 수출용 휘발유에 국제유가 변동치를 철저히 반영했지만, 내수용엔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 분석➌ 경유 가격 비교 = 반면 경유 가격 추이는 휘발유와는 다르게 나타났다. 경유(HS코드 2710193000)의 수출가격은 1월부터 5월까지 하락세를 보이다가 6~7월에 약간 반등하는 모양새를 나타냈다(표➏). 정유사들이 경유를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호주와 베트남, 싱가포르인데, 이들 국가에 수출하는 가격도 비슷한 추이를 나타냈다.

정유사의 국내 경유 공급가격 역시 추세는 비슷했다(표➐). 다만 1월 대비 5월의 평균 가격이 국내의 경우 17.9% 하락했지만, 국제 경유 가격 하락폭은 23.2%였다. 경유 수출가격의 경우 호주는 22.9%, 베트남은 21.6%, 싱가포르는 26.7% 하락폭을 나타낸 것과 비교된다. 

■ 분석➍ 휘발유 가격 격차의 함의 = 이들 그래프를 종합적으로 볼 때 알 수 있는 건 두가지다. 첫째는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나 수출가격과 비교해도 ‘오를 때는 더 크게 내릴 때는 더 낮게’라는 공식이 다시 한번 입증된다는 거다. 특히 정유사의 휘발유 공급가격과 주유소 평균 가격을 비교하면 정유업계든 주유업계든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둘째는 국제가격과의 격차가 경유보다 휘발유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경유보다 휘발유에서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그건 바로 정유사와 주유소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가격 정책을 통해 더 큰 이윤을 남겼다는 얘기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총 휘발유 사용량은 140억4168만L, 총 경유 사용량은 260억526만L다. 휘발유의 98.4%(138억1747)가 수송용(도로)으로 사용됐고, 수송용의 93.8%가 비사업용 승용차에 사용됐다(표➑).[※참고: 수송용의 쓰임새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주행거리 통계’를 적용해 분석했다.] 

반면 경유는 81.3%(211억2862만L)가 수송용으로 쓰였다. 나머지는 해운업(4.3%), 농림수산업(4.0%), 건설업(2.5%), 공공(2.5 %) 용도로 사용됐다. 수송용에서는 비사업용으로 81.0%, 사업용으로는 19.0%가 사용됐다. 비사업용에서 승용차에 쓰인 건 51.2%, 비사업용 화물차엔 25.5%, 비사업용 승합차엔 4.0%가 쓰였다. 

이를테면 휘발유는 일반 국민이 승용차에 이용하는 에너지이고, 경유는 기업과 자영업자 등에서 폭넓게 사용하는(이해관계자가 많은) 에너지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휘발유가 경유보다 국제가격과의 격차가 더 크다면 일반 국민이 그만큼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정유업계와 주유업계의 가격 정책은 정말 국제가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걸까. “내수가 아닌 수출을 통해 이윤을 낸다”는 정유업계의 주장은 맞는 걸까. 물론 정유업계와 주유업계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 당국이 “기름값이 묘하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허투루 들어선 안 되는 까닭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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