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마켓분석
깊은 침체에 빠진 내수경기
저성장·고물가에 곡소리 울려
전세 거래량도 4월부터 감소세
중고시장엔 손님 발길 뚝 끊겨

내수경기가 활황이면 삶의 현장 곳곳이 시끌시끌하다. 반대로 내수경기가 깊은 침체에 빠지면 어디를 가든 적막이 흐른다. 사람들의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후자다. 소득이 줄자 허리띠를 졸라맸고, 그 결과 내수경기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과연, 다시 빛을 찾을 수 있을까. 조용한 가을 이사철을 통해 한국경제의 민낯을 그려봤다.

평일 한낮 황학동 가구거리엔 인적이 드물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평일 한낮 황학동 가구거리엔 인적이 드물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드르륵’ ‘쿵’…. 이른 아침부터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주말 늦잠을 방해받은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이런 소리는 이사철인 봄과 가을에 더 자주 들린다. 요즘엔 사시사철 이사를 다녀서 ‘이사철’이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무덥고, 추운 계절보다는 봄과 가을의 이사를 선호하는 이들이 아직까진 더 많다.

최근 그런 이사 소음이 예전만큼 들리지 않는다. 주택가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던 이삿짐 트럭, 무거운 가전ㆍ가구를 높은 곳으로 운반하는 사다리차를 만나는 빈도도 크게 줄었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깊어진 경기 침체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 경제는 0.6%(전분기 대비) 성장하는 데 그쳤다. 1분기(0.3%)에 이어 0%대 성장률을 보였다. 민간소비는 0.1%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0.5% 줄었던 민간소비가 올해 1분기 0.6% 증가하며 반등하는 듯했지만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거다. 한국은행은 “소비가 완만하게 회복할 것”라는 전망을 내놨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곡소리는 예사롭지 않다.

서울 중구 황학동 가구거리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는 김종근씨는 요즘 기로에 서 있다. ‘몸이 닳을 때까지 일하겠다’는 굳은 의지는 수년 전에 꺾였다. 40년째 가구 장사를 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폐업을 고민하는 날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다. 좁은 가게 안에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 끝엔 “이젠 그만둬야 하나”라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이곳은 부동산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아요. 부동산 경기가 좋아야 이사 다니는 사람이 많고, 그래야 가구도 많이 보러 오잖아요. 그런데 사람 구경하기가 영 힘듭니다. 경기가 나빠도 너무 나빠요. 그러니 가게에 나와 있어도 재미가 없어요.”

그마나 팔리던 중고가구도 요즘엔 시원찮다. “저소득층은 새 가구 장만하기가 부담스러우니까 중고가구를 사러 오기도 하는데, 이젠 아예 지갑을 닫아버려서 중고가구를 찾는 손님도 없습니다.” 

김씨의 말처럼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이진석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이전소득이 사라지면서 기저효과가 컸고, 고물가 영향이 더해지면서 소득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참고: 이전소득은 생산활동에 참가해 얻은 소득이 아니라 정부 또는 기업으로부터 받는 수입을 말한다. 기저효과는 기준시점과 비교시점의 상대적인 수치에 따라 결과가 실제보다 왜곡돼 보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진석 과장의 말을 쉽게 풀어보면, 정부의 각종 지원금 등이 사라지면서 가계소득이 더 감소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나타났고, 여기에 소비자물가까지 치솟아 실질소득이 줄었다는 뜻이다.]

가구당 월평균 처분가능소득도 감소했다. 2분기 기준 383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2.8% 줄었다. 이 역시 2006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다. 당장 생계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지출을 줄이는 거다. 지난 2분기 가계소비지출 중 보건(-6.5%) 항목을 제외하고 가정용품ㆍ가사서비스 지출이 가장 많이 감소한 건 이를 잘 보여준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가정용품ㆍ가사서비스에 11만7000원을 썼다.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했는데, 특히 가구 및 조명(-21.9%) 지출이 크게 줄었다. 소득 1분위(최하위 20%)의 증감률(-21.2%)이 다른 분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김씨가 중고가구 손님도 구경하기 어렵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슷한 이유로 송진규(가명)씨는 중고가구 거래를 중단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중고거래도 원활하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황학동 가구거리에서 업소용 의자ㆍ소파를 전문적으로 주문제작 판매한다. 동시에 중고 의자류를 매입해 팔기도 했지만, 최근엔 손을 뗐다. “경기가 그나마 괜찮을 땐 중고가구 거래도 쏠쏠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경기가 좋을 때 얘기죠. 손님이 없으면 중고물품 사들이는 것도 부담일 수밖에 없어요.” 무슨 말일까. 

새 가구는 공장에서 물건을 들여와 창고에 보관해뒀다가 팔면 그만이다. 하지만 중고가구는 싼값에 들여오는 대신 일일이 손을 봐야 한다. 이물질은 깨끗하게 닦고, 흠집이 난 곳은 보수해 새것처럼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일손이 필요한데, 요즘 같은 불경기엔 비싼 인건비를 들여 사람을 쓸 만한 여력이 안 된다. 고민 끝에 송씨는 일하던 직원을 내보내고 중고가구 재고도 창고 깊숙한 곳으로 밀어버렸다.

가을 이사철이지만 내수경기 부진으로 부동산 시장에 적막이 감돈다.[사진=연합뉴스]
가을 이사철이지만 내수경기 부진으로 부동산 시장에 적막이 감돈다.[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부동산 시장은 점점 더 침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던 수도권 아파트 전세 가격은 8월 반등했다. 전월 대비 0.02% 오른 거다. 서울은 0.07%, 인천은 0.06%, 경기지역은 0.01% 상승했다. 그러자 거래량이 꺾였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 거래량을 보면, 지난 2~3월 급증하다가 4월부터 감소하고 있다. 3월에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 4만3938건 거래됐지만, 8월에는 2만4389건(추정치) 거래되는 것에 그쳤다. 1년 전(2022년 8월ㆍ3만3479건)과 비교하면 거래량은 27.2% 감소했다. 이사 통계를 가늠하는 인구이동률도 5월 11.4%에서 7월 11.1%로 하락했다. 계절적 영향도 있겠지만, 경기가 그만큼 침체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화 중 손님을 기다리듯 한번씩 가게 밖으로 시선을 돌리던 김종근씨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알면서도 속는 거죠. 내일은 나아질 거란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있어야 오늘 하루 버티지 않겠어요?” 그의 희망이 9월의 한낮 땡볕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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