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콜센터 불편한 민낯➋
콜센터 상담사 거리로 나온 까닭
콜센터 현실 들춰낸 코로나19
열악한 상담사 처우 알려졌지만
그후 3년 7개월 뭐가 변했나
상담사 소득, 최저임금 수준
실시간 감시와 실적 압박 여전
성과급 잔치 벌인 원청 금융회사
자회사 콜센터도 차별 대우
상담사 노동 재평가 이뤄져야…

“상담사는 OO은행의 가족입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들려오는 안내 멘트다. 하지만 정작 상담사들은 “OO은행은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객과 최전선에서 일하고, 기업의 중요 업무를 다루지만 처우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 콜센터 상담원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콜센터엔 한국경제의 고질병이 들어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콜센터엔 한국경제의 고질병이 들어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위기가 닥치면 늘 ‘약한 고리’에서 먼저 탈이 난다. 코로나19 공포가 덮친 2020년 3월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사태가 발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좁은 공간에서 수백명의 상담사가 붙어 앉아 ‘콜’을 받는 콜센터는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구로구 코리아빌딩 4개층에선 600~700명의 상담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확진자가 속출한 11층에서 근무한 인원은 200여명에 달했고, 이중 9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고객에게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착용할 수 없었다. 밀려드는 콜 탓에 점심시간이 부족해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 때웠다. 환기시설도, 소독용품도 부족했으니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 게 되레 요행이었다. 

코로나19는 콜센터의 초라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추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그제야 “콜센터 내 밀집도를 낮추고, 상담사(책상) 간 거리를 2m(최소 1m) 이상 넓히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당연히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3년 7개월이 흐른 지금 콜센터 상담사들이 겪는 열악한 처우와 노동환경은 달려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5년차 콜센터 상담사 A씨는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상담사 간 가림막을 높인 게 전부였다”면서 “상담사 간 좁은 간격, 짧은 휴게시간, 낮은 급여, 실적 압박은 모두 그대로다”고 꼬집었다. 최근 콜센터 상담사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지난 4일 금융권 콜센터 상담사 1500여명이 국회 앞에 모였다. 이들은 KB국민은행·하나은행·현대해상의 하청업체(현대해상은 자회사) 소속 콜센터 상담사들로, 콜센터 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을 벌였다. 거리에 나온 상담사들은 “최저임금(기본급) 수준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달라”면서 “원청인 금융 대기업이 나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고강도·저임금 노동을 견뎌온 상담사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온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금융회사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일 때 상담사들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임직원에게 지급한 성과급은 1조3000억원에 달했다. 

거리에 나선 상담사들의 원청기업 역시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KB국민은행(KB금융 기준)과 하나은행(하나금융지주 기준)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50.8%(58조9176억원→88조8959억원), 69.9%(41조6778억원→70조8438억원) 증가했다. 수익성도 좋았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의 영업이익은 소폭 감소했지만, 5조원대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나은행은 1.2% 늘어난 4조690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현대해상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8.1%(18조8422억원→20조3844억원), 26.3%(6393억원→8080억원) 늘었다. 

금리 상승기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결과였다. 그런데도 상담사들은 왜 성과급은커녕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만을 받으면서 화장실조차 맘대로 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던 걸까. 그 원인을 하나씩 살펴보자. 

■ 문제점➊ 원·하청 구조 =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콜센터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원·하청’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공공기관은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계약기간이 1년 안팎으로 짧은 데다, 원청이 비용 절감을 위해 최저가 업체와 계약을 맺는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콜센터 상담사들의 급여는 늘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고 노동환경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총의 ‘2023년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사의 평균 월소득은 220만6000원에 그쳤다. 최저임금(시급 9620원 기준·월 201만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언급했듯 도급계약 기간이 1년 안팎에 불과한 탓에 상담사들은 아무리 오래 일해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도급계약기간이 끝나면 대부분의 상담사는 새 하청업체로 고용이 승계되지만 경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당연히 10년을 일하든 20년을 일하든 급여도 제자리걸음이다. 

이같은 경력의 단절은 대출 심사, 내집 마련 등 상담사들의 경제 활동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콜센터 상담사들은 “하청업체 뒤에 숨은 ‘진짜 사장(원청)’ 나오라”고 외치지만, 원청은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만큼 상담사들의 처우는 하청업체의 책임”이란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고 하청업체가 아닌 자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콜센터의 상황이 좀 더 괜찮은 것도 아니다. 현대해상 콜센터를 운영하는 현대씨앤알(자회사) 소속 상담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대해상 자회사에 속해 있지만 하루 30분의 휴게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점심시간에 한번 화장실에 다녀오고 하루 종일 앉아 일하는 상담사도 적지 않다. 모기업인 현대해상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고도, 콜센터 상담사와 청소노동자만 제외한 채 성과급을 지급했다. 원청(모회사)이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면, 하청업체든 자회사든 상담사들의 처우는 별반 다를 게 없다.” 

금융권 콜센터 노조가 지난 4일 역대 최대 규모의 총파업에 돌입했다.[사진=뉴시스]
금융권 콜센터 노조가 지난 4일 역대 최대 규모의 총파업에 돌입했다.[사진=뉴시스]

■ 문제점➋ 낮은 인식 = 이처럼 원청은 콜센터 상담사를 그저 ‘비용’과 ‘효율’로 판단하고 있다. 콜센터 상담사의 업무를 폄훼하는 인식이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하는 또 다른 원인이라는 거다.

이런 비뚤어진 인식과 달리 콜센터 상담사의 업무는 어렵고 복잡하다. 민원처리부터 신용관리, 금융심사, 분실접수, 보험가입, 계약변경, 사고접수, 주문처리까지 모두 상담사가 처리해야 할 업무다.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현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지부장은 “민감한 고객의 개인 정보를 다루는 등 상담사의 업무가 갈수록 업무가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는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금융권 콜센터 상담사의 경우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금융상품과 조건들을 숙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충분한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인지 민주노총 설문조사에서 “교육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률은 77.9%(부족하다 44.2%+매우 부족하다 33.7%·2023년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달했다. 

콜센터 상담사 B씨는 이렇게 지적했다. “새로운 금융상품이 나오면 강사로부터 받은 프린트물을 잠깐 확인하고 상담에 들어간다. 충분히 내용을 숙지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상담사로선 안내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행여 실수라도 하면 상담사가 손해액을 현금으로 배상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문제점➌ 실적 압박과 통제 =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 갈 땐 깃발을 가져다 자리에 꽂아 놓고 가야 했다. 누군가가 깃발을 사용하고 있으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불과 1~2년 전 한 대기업 금융회사 하청업체 콜센터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지금은 ‘깃발 제도’가 없어졌지만 화장실에 가려는 상담사는 관리자에게 ‘이석離席 체크’를 해야 한다. 관리자가 상담사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어서다. 

콜센터는 이같은 전자감시를 통해 확보한 업무평점을 상담사의 급여에 반영한다. 콜 처리 건수(통화시간), 상담품질평가(QA) 등을 통해 인센티브를 책정하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120~150콜을 받아야 최고 등급으로 인정받고, 40만원 안팎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1~2명의 상담사에게만 주어진다. 1콜당 평균 고객 응대시간이 5분을 훌쩍 넘고 길게는 1시간 넘게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목표임에 분명하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화장실조차 제대로 가지 못한 채 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상담사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콜센터 상담사 C씨는 “상담품질평가라는 미명하에 원·하청이 상담사들의 통화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감시한다”면서 “고객 기침 소리와 상담사의 말소리가 겹쳤다며 감점을 받고, 고객의 요구에 의해 통화를 영업점(은행)으로 연결을 해줘도 감점을 받다 보니 늘 긴장 상태로 압박감을 느낄 수박에 없다”고 말했다. 

2020년 구로구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면서 상담사의 열악한 처우가 드러났다.[사진=뉴시스]
2020년 구로구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면서 상담사의 열악한 처우가 드러났다.[사진=뉴시스]

■ 문제점➍ 노조 막는 원청 =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콜센터 상담사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엔 노조도 한몫했다. 그동안 콜센터 상담사들은 이직률이 높고, 30~40대 여성이 많다 보니 한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콜센터 상담사의 노조 가입률이 0.1%대에 불과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금융권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노조 가입률이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상담사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콜센터 상담사 수가 50만~2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노조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상담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많은 콜센터에선 상담사들이 출근해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순번대로 화장실에 가며 일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콜센터 상담사 문제. 그 꼬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콜센터 ‘원·하청’ 구조에 직면한다. 하청 뒤에 숨는 원청과 원청 탓만 하는 하청…. 이 고리를 끊어내고 콜센터 상담사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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