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제조업 視리즈 3편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청계천서 출발한 흩어짐의 역사
작은 공장들이 다시 정착한
문래동에 불어온 개발 바람
흩어짐의 반복 막으려면…

문래동은 이제 서울 속 작은 공장의 마지막 보루다. 2000년대 중반 청계천ㆍ을지로에 불어닥친 개발 바람에 밀려난 작은 공장이 모여든 곳이어서다. 하지만 여기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질문이 있다. 왜 이들은 청계천ㆍ을지로란 터전을 떠나 문래동으로 옮겨왔느냐는 거다. 문래동마저 이전해야 할지 모르는 지금,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찾아봐야 한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등 청계천·을지로에서 개발이 시작되면서 작은 공장은 흩어졌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등 청계천·을지로에서 개발이 시작되면서 작은 공장은 흩어졌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작은 부품이라면 세상에 없던 것도 3~4일 만에 생산해내는 곳이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문래동이다. 작은 공장 1279 개가 모여 있는 이곳은 서울에 남아 있는 최대 규모의 작은 공장 집적지다. 원래는 세운상가를 비롯해 청계천ㆍ을지로 일대에도 작은 공장이 모여 있었지만 도심 개발이 시작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일부가 둥지를 튼 곳이 바로 문래동이다. 

문제는 문래동도 청계천ㆍ을지로처럼 개발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작은 공장은 또다시 ‘흩어져야 할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건데, 이젠 서울 안에서 이전할 곳도 거의 없다. 우리가 청계천ㆍ을지로를 떠난 작은 공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때 그 ‘흩어짐’의 이유와 문제를 알아야 제2 청계천ㆍ을지로 같은 일을 예방할 수 있어서다. 인터뷰에 응해준 작은 공장 사장의 요청으로 ‘실명’은 싣지 않는다. 사장 A씨는 “대체 부지를 찾는 과정에서 혹여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 언제쯤 문래동으로 공장을 이전하셨나요.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5년 전입니다. 원래는 세운상가 근처(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공장을 운영했어요. 여기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부품이 보이시나요? 한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부품입니다. 전 이렇게 작은 부품을 만듭니다.”
 
✚ 5년 전에 오셨다면 2018년이네요. 이전 지역으로 문래동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근처에 갈 만한 곳이 있긴 했어요. 그런데 공장을 만들기엔 좀 좁았어요. 33㎡(약 10평) 이상 되는 곳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공장을 서울 밖으로 옮긴 이들도 있었지만, 전 문래동으로 왔습니다. 일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요.”

✚ 서울시가 대체사업장으로 마련한 송파구 가든파이브가 있지 않았나요.
“처음에는 고려할 만한 대안이었어요. 청계천 개발로 공장을 이전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서울시가 강조한 가든파이브를 철석같이 믿기도 했죠.”

✚ 그런데 왜 가든파이브로 가지 않으셨나요.
“가든파이브란 말이 처음 나왔던 2004년쯤에는 부동산 가격이 비교적 저렴했어요. 그때만 해도 ‘그 정도 가격이면 갈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막상 이전을 계획할 때 보니 그때 가격보다 3배나 올랐더라고요.” 

2009년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고지한 가든파이브 툴(TOOL)동의 공구판매시설 분양가는 최저 1억8000만원이었다. 가든파이브는 청계천ㆍ을지로 개발의 대체 사업지로 개발됐지만 지금까지도 공실이 존재한다. 작은 공장을 옮기려던 시도가 실패했다는 방증인데, 거기엔 높은 임대료가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높은 부동산 가격만 걸림돌이었나요?
“그럴 리가요? 환경 자체도 작은 공장이 들어서기엔 적절하지 않았어요. 작은 공장은 ‘협업’이 가능해야 해요. 한개의 부품을 만들 때 ‘금형’ ‘주조’ ‘용접’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전문업체가 각각 따로 있거든요. 작은 공장 사람들이 이주를 해야 한다면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죠. 그런데 가든파이브엔 모든 업종의 공장이 들어갈 수 없었어요. 어떤 곳은 기계 자체를 넣을 수 없었죠.”

실제로 청계천ㆍ을지로 공구상가 및 공장이 이전하기로 했던 가든파이브 툴관 내 공구판매시설의 평균 면적은 18㎡(약 5.4평ㆍ전용면적 기준)였다. 문래동 공장의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33㎡(약 10평)란 점을 감안하면 협소했던 게 사실이다. 

✚ 그럼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선 문래동처럼 다 같이 대체 부지를 찾아 이동하자는 말이 전혀 안 나왔던 건가요.
“그때는 서로 사정이 달랐어요. 같은 3구역이어도 3-1구역, 3-2구역, 3-3구역으로 다 갈라져 있는 겁니다.”

✚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개발 시기가 달라져요. 예를 들어 3-1구역이 올해 이주를 하면 3-2구역은 그다음 해에 이주해야 하는 식이죠. 그러면 이주 날짜가 달라져 한곳으로 한번에 이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죠. 그래서 함께 옮기지 못했던 겁니다.” 

이렇게 청계천ㆍ을지로 일대에 있던 작은 공장은 뿔뿔이 흩어졌고, 대체부지로 거론됐던 가든파이브도 사실상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 과정에서 작은 공장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이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창구를 찾지 못했다. 청계천ㆍ을지로 일대의 개발을 주도했던 지자체와 사업주의 실책이다. 이런 측면에서 몇몇 작은 공장이 문래동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문래동 작은 공장도 이제 ‘떠나야 할’ 운명에 처했다. 문래동에 불어닥친 개발 바람에 이곳 작은 공장들은 또다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제2의 청계천ㆍ을지로를 막기 위해선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작은 공장 사람들, 이를테면 현장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 문래동 작은 공장들도 이전할 가능성이 높은 듯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이전 후보지를 결정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에 산업단지가 없는 게 아닙니다. 수도권 밖으로 나가면 숱하죠. 그런데 다 비어 있잖아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 그게 뭔가요.
“거래처가 없으면 공장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일감이 없으니까 수도권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 문래동에선 일감 구하기가 괜찮은가요?
“사실 문래동도 아주 좋다고 할 순 없어요. 그래도 가산디지털단지가 옆에 있고 서울에 기업이 꽤 많으니까 나쁘다고 볼 순 없죠. 무엇보다 문래동엔 작은 공장들이 몰려 있어 일감이 있으면 서로 나누는 경우도 있고요. 작은 공장들이 살아남으려면 ‘함께 모여 있어야 하는’ 이유예요.” 

작은 공장 사람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은 또 문래동에서 짐을 싸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함께 이전할 수 있는 ‘대체부지’를 원하지만 세상에 그걸 알릴 방안이 그리 마땅치 않다. 청계천ㆍ을지로에서도 그렇게 힘없이 밀려났다. 

개발 정책에 등 떠밀려 둥지를 옮겨야 하는 사람들이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지만, 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작은 공장 사람들은 ‘문래동의 가치’ ‘도심 속 공장이 필요한 이유’ 등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산다. 

그럼 문래동 작은 공장엔 어떤 장점이 숨어 있는 걸까.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4편에서 문래동의 작은 공장을 직접 들여다볼 계획이다. 문래동 작은 공장의 가치가 결국 제조업의 미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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