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고금리 세상: 서민의 눈물
취약차주 벼랑 끝에 몰려
최대 실적 기록한 시중은행
1조원대 성과급 잔치도 열어
은행에 횡재세 매기는 각국
우리나라에선 공론화 안 돼
은행 탐욕 막는 대책도 전무

논쟁은 혁신의 과정이고, 갈등은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주장과 반론, 반론에 재반론이 불가능한 곳은 전체주의 사회나 다름없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논쟁은 혁신의 과정이고, 갈등은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주장과 반론, 반론에 재반론이 불가능한 곳은 전체주의 사회나 다름없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고금리 세상의 단면은 두개다. 한면에선 고통스런 비명이, 다른 한면에선 즐거운 비명이 흘러나온다. 전자는 은행에서 돈을 빌린 취약차주借主들의 몫이다. 이들은 고금리 탓에 필연적으로 불어난 원리금에 짓눌리고 있다.

# 돈을 빌려준 은행의 상황은 다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받을 돈’이 더 생기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올 상반기 5대 시중은행이 역대 최대 이자이익(20조4906억원)을 거둬들이고, 1조원이 넘는 성과급 잔치를 벌인 건 ‘고금리 바람’에 거저 날아온 혜택 덕분이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를 법도 하다.  

# 이 때문인지 세계 각국에선 ‘은행에 횡재세(windfall tax)를 부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체코·리투아니아·스페인 등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이미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고, 이탈리아에서도 ‘횡재세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작은 ‘공론의 장場’도 열리지 않았다. 몇몇 야당 의원이 발의한 ‘은행 횡재세’ 법안은 집권여당의 반대에 막혀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고, 정부는 은행의 탐욕을 막을 만한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더스쿠프 ‘고금리 세상: 서민의 눈물’ 마지막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이다. 

지난 8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내각이 불러일으켰던 ‘은행 횡재세’ 논란은 곱씹어볼 이슈가 적지 않다. [사진=뉴시스]
지난 8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내각이 불러일으켰던 ‘은행 횡재세’ 논란은 곱씹어볼 이슈가 적지 않다. [사진=뉴시스]

# 파격 조치 

지난 8월 7일(현지시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내각이 파격적인 조치를 내렸다. 시중은행에 횡재세(windfall tax)를 도입하는 특별법을 승인한 거다. 에너지기업에 적용하던 횡재세의 범위를 은행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특별법의 취지였는데, 뼈대와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펄펄 끓어오른 물가를 잡기 위한 유럽중앙은행(ECB)의 가파른 금리인상 덕분에 은행들은 앉은자리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런 은행에 40% 세율의 세금을 물리겠다. 은행 횡재세로 거둬들인 돈은 주택담보대출 보유자들의 이자를 대신 내주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멜로니 내각은 횡재세의 대상을 2022년과 2023년 순이자수익(NII·Net Interest Income)이 전년 대비 각각 3%, 6% 초과하는 은행으로 규정했다. 순이자수익은 이자수익에서 이자비용을 뺀 값으로,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다.

멜로니 내각이 NII를 겨냥한 건 ‘고금리 바람에 거저 들어온’ 은행의 이익을 거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은행업계가 혼돈의 늪에 빠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right things

멜로니 내각의 급작스러운 조치에 은행주가 곤두박질쳤다. 곳곳에선 “명백한 이중과세” “전형적인 반시장적 조치”란 비판이 터져나왔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8월 14일 그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휴가지에서 자국 일간지 3사와 인터뷰를 갖고 작심 발언을 내뱉었다. 

“…(은행 횡재세는) 중요한 문제다. 이 결정은 온전히 내 책임이다. 난 (횡재세를 다시) 밀어붙일 거다.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It’s a sensitive issue and I take full responsibility for it. I would do it again. Because I believe that the right things must be done).”

[※참고: 이 인터뷰는 은행주의 주가가 급락하자 이탈리아 내각이 ‘은행 횡재세에 상한선을 두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직후에 진행됐다. 이때 멜로니 총리는 휴가 중이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다시(again)’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다.]

# 저항과 철회 

그로부터 두달이 흐른 지금, 멜로니 내각의 파격은 커다란 물결을 일으켰을까. 아니다. 멜로니 내각은 ‘은행 횡재세 특별법’을 사실상 철회했다. 외신들이 보도한 멜로니 내각의 수정안을 한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은행이 납부해야 할 세금의 2.5배를 준비금으로 쌓은 곳은 ‘세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다….” 초과 NII로 배를 불린 은행에 40% 세율의 횡재세를 매기겠다는 원안에서 멀찌감치 후퇴한 건데, 이탈리아 내부에서 일어난 반발 여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저항의 물결은 실제로 거셌다. 멜로니 내각(이탈리아 형제들)과 ‘연정聯政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정당 ‘전진이탈리아(FI)’는 횡재세 법안을 무력화하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편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온 거다.

고금리 국면에서 은행은 최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금리 국면에서 은행은 최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FI를 이끌었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장녀이자 메디올라눔 은행의 지분 30%를 보유한 핀인베스트 회장인 마리나 베를루스코니도 횡재세 법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지난 9월 15일 이탈리아 비즈니스 로비단체 ‘콘핀두스트리아(Confindustria)’의 모임이 끝난 직후 기자들에게 “이윤이 언제 추가되고 언제 정상인지 누가 결정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멜로니 총리를 정면으로 꼬집었다. “멜로니의 결정은 여러 의심과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조치다.” 이탈리아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집단과 경제인이 멜로니 내각의 파격 행보를 멈춰세운 셈이었다. 

# 혁신과 갈등  

그렇다면 멜로니 총리의 물러섬을 실패로 규정해야 할까. ‘섣부른 정책적 결단이 시장의 화를 불렀다’는 지적이 많긴 하지만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논쟁은 혁신의 과정이고, 갈등은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주장과 반론, 반론에 재반론이 불가능한 곳은 전체주의 사회나 다름없다. 

이런 측면에서 멜로니 총리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논쟁은 함의가 적지 않다. 횡재세를 은행 전반에 적용하진 못했지만, 멜로니 총리는 적어도 ‘은행의 과도한 수익’ 문제를 공론의 장에 올려놓는 덴 성공했다. 멜로니의 물러섬과 무관하게 체코·리투아니아·스페인 등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도 우리가 눈여겨볼 점이다.

# 역대급 돈잔치 

자! 이쯤에서 관점을 우리나라로 돌려보자. 유럽과 마찬가지로 국내 금융회사들도 연일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올 상반기 5대 금융그룹(KB금융그룹·신한금융지주·우리금융그룹·하나금융그룹·NH농협금융지주)이 거둬들인 순이익 10조8882억원과 5대 은행(KB·신한·우리·하나은행·NH농협은행)이 올린 이자이익 20조4906억원은 역대 최고치다. 

이익만이 아니다. 지난해 5대 은행은 직원들에게 1조4000억원에 가까운 성과급을 지급하며 돈잔치를 벌였다. 그러는 사이 취약계층은 이자의 늪에 맥없이 빠져들었지만 이들은 ‘즐거운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 민생과 정치 성향 

사회 곳곳에서 금융권의 모럴해저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금융권의 배를 불려주는 대출금리 산정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더 올리거나 우대금리는 내리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끌어올렸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돈잔치로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횡재세를 매겨 주담대 차주의 원리금을 갚는 데 사용하겠다”는 멜로니식 구상까진 아니더라도, 모럴해저드를 제어할 만한 방법론을 논의하지 않은 건 아쉬운 지점이다. 

혹자는 “은행의 이익 논란은 자유시장에 맡길 문제이고, 그게 보수정부가 할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오류다. 은행의 횡재세를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 멜로니 총리는 극우 성향의 지도자다. 민생은 보수와 진보가 따로 논쟁을 벌일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참고: “은행에 횡재세를 도입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삼은 용혜인 의원안(기본소득당·2022년 9월 1일 제출), 이성만 의원안(더불어민주당·2023년 1월 17일)은 국회 소관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폐기 수순이다.] 

# 나쁜 징후들  

미국 소비자물가가 다시 치솟았다. 미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7% 상승했다. 한동안 하락세를 타던 국제 유가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확산 가능성에 활활 타오르고 있다.

지난 6일 배럴당 85.88달러였던 두바이유는 이-팔 전쟁 이후 상승하기 시작해 20일 90.66달러로 5.56% 치솟았다. 같은 기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82.79달러에서 88.08달러로 6.43% 상승했다. 고금리 국면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나쁜 징후다.

금융회사들이야 또다시 축제를 준비할지 몰라도, 살얼음판 같은 민생이 걱정이다. 가계부채 뇌관은 언제 터질지 모르고, 취약계층은 하루를 버티기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취약계층이 기댈 만한 언덕이 필요한데, 정부가 그들을 위한 세심한 정책을 내놓을지는 의문이다. 우리 정부는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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